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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09 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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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대의 전설' 박윤서(65)가 돌아왔다.

 

지지옥션배 아마 선발전이 벌어진 지난 7일 한국기원. 대뜸 박성균-박윤서가 마주 앉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30년 전 쯤 벌어졌음직한 아마국수전의 한 광경이 연상되던 기자는 카메라를 퍼뜩 들이밀었다. 하긴 두 맹장 모두 아마국수전을 쟁패했고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아마바둑선수권에서 뛰었던 ‘박국수’들이다. 

 

박성균은 잘 아는데 박윤서는 긴가 민가 하는 분이 있겠다. 대학고수가 아마고수이던 70년 말 80년 초. 당시 한국외대를 지금의 충암고, 명지대만큼이나 대학 바둑명문으로 각인시킨 인물이 박윤서(65)다. 

 

80년 아마국수전, 83년 롯데배, 90년 KBS바둑대잔치 등 당대 굵직한 아마기전을 우승한 바 있는 박윤서가 전국대회에서 종적을 감춘 것은 얼추 30년이 되어간다. 아니, 왜 떼려야 뗄 수 없는 바둑을  그간 담을 쌓고 살았을까. “바둑을 떠난 적은 없어요. 다만 지난 30년 동안 대국장보다는 경마장에 출근을 했더랬죠.” 주말에 벌어지는 바둑대회엔 참가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경마? 30년 동안 경마를 했다면 그야말로 순수하게 즐기기가 쉬웠겠는가. 밝고 맑은 상상은 안 된다. ‘저러다가 인생을 망치는 것 아닐까’하고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았을 터. 그래서일까.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흑역사이긴 했지만 아들 딸 잘 컸고 가정도 잘 지키고 있다”며 '안심'부터 시킨다. 

 

▲ 박성균-박윤서. 박국수끼리 맞붙은 지지옥션배 시니어선발전 장면.

 

어린 시절 박윤서도 바둑에 푹 빠져있었다. 73년 고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은 79년에야 들어간다. 당시 명문 경동중-경동고를 다녔으니 주변의 기대는 세칭 sky대학에 닿아있었다. 그러나 막상 고교를 졸업 때 바둑광 박윤서를 반기는 대학은 없었다. 인격수양을 위해 바둑을 접하라고 했던 부친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바둑에만 탐닉했던 자신을 그때서야 돌아보게 되었다. 절치부심,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도전한 끝에 그는 외대 79학번을 달았다. 

 

조치훈이 일본 명인을 따고 고국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박윤서는 아마국수의 자격으로 조치훈과 기념대국의 영광도 누렸다. 83년 롯데배에서 우승하며 성가를 드높인 그는 이듬해 바둑실업팀 석탄공사에 5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바둑인으로서 호사할 것은 거의 다 해봤다.  

 

▲ 1월 서울 압구정기원에서 내셔널리그 시범경기 중 서울압구정 박윤서(오른쪽)가 원봉루헨스 류승희와 겨루고 있다.

 

대학시절의 강자로만 기억 속에 존재하던 박윤서를 ‘압구정리그’에서 직관한 것도 최근이었다. 사실 경마장 출입을 줄이고 대국장 출입을 늘린 건 그의 오랜 기우였던 장시영 원장의 조언이 한몫했다고 귀띔한다.. 

 

“4년 전부터 압구정리그에 참가하라는 얘길 열 번은 했었어요. 하긴 30년 동안 바둑동네엔 나타나질 않으니 별 괴상한 루머가 돌고 하니까, 장원장으로서는 심히 걱정 되었겠죠. 왠지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고마웠죠. 두말없이 다시 바둑돌을 잡았습니다.” 

 

압구정리그는 김희중 조민수 양덕주 최호철 막강한 한국최고의 멤버들이 몰려드는 아마강자들의 훈련장. 그 속에서 왕년의 강자 박윤서는 왕년의 기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압구정에서 참 좋은 분을 또 조우하게 된다. 바로 내셔널바둑리그 서울압구정 한윤용 단장이다. 

 

평소 압구정리그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던 한단장은 ‘박윤서’라는 이름 석 자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바로 자신의 고교선배인줄 뒤늦게 알게 된다. 그 후 ‘말은 그만 보고 바둑을 두시라’며 아예 내셔널리그 서울압구정 팀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한(윤용)단장이 날 위해서 팀까지 만들었는데 어찌제가 바둑을 열심히 안둘 수가 있겠습니까. 요즘 제 말(행마)이 살아난다고 합디다.(웃음)” 

  

 내셔널시범경기에서 서울압구정이 깜짝 우승을 차지하여 강팀으로 급부상했다. 뒷줄 가운데가 박윤서, 맨 오른쪽이 한윤용 단장.

 

개인전이 위주인 바둑에서 박윤서처럼 단체전과 인연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수년째 대학동문전에서는 한이덕 김원태 유종수 등과 한국외대 대표선수로 활동하고 있고, 과거 실업팀 석탄공사에서 유병모 박치문 등과 함께 뛰었고, 그리고 지금은 내셔널바둑리그 서울압구정에서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특히 서울압구정은 30년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윤서에겐 의미가 각별하다. 압구정리그 덕분에 공식 시합에 나오게 되었고, 급기야 지난 연휴에 지지옥션배 시니어대표 선발전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급기야 박윤서는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지지옥션배 시니어대표로 선발되는 자그마한 경사까지 누렸다. 

 

“제가 그래도 세상을 잘못 살지는 않았나 봐요. 가족 친구들에게 반성하고 고마움을 표하는 의미에서라도 열심히 바둑을 둘 겁니다. 또 압니까. 내셔널리그의 전설은 될 수 있을 지. 하하.”

 

앞으로 박윤서가 바둑뉴스에 등장할 일이 많을 것 같다.

 

▲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던가. 압구정기원의 장시영 원장과 오랜 친구 박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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