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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24 18:25:21
  • 수정 2018-03-26 08: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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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콘같은 열성파 조은진(25).

 

바둑을 전공하는 학생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장형성이 더딘 점은 바둑계의 아쉬운 민낯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활기차게 자기역량을 키우고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시도로 무장한 미생(未生)들이 많다. 여기 수많은 미생들에게 귀감이 될 유별난 특종 조은진(25)을 소개한다.

 

어릴 적부터 20세가 될 때까지 바둑을 전공했지만 입단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고민하던 청춘은 ‘제2의 길’을 찾기 위해 명지대 바둑학과를 입학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미생들과 엇비슷한 행보. 그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학 4년 동안 낯선 그 무엇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좌충우돌, 많은 경험들을 간직한 명랑소녀의 분투기가 시작된다.

 

물론 바둑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스무 번에 달하는 외국탐방, 학생회 간부로서 리더십 발휘, 그 외 다양한 취미활동 사회활동 등 ‘닥치는 대로’ 부딪쳤다. 그런 활동성을 인정받았음인지, 지난 달 명지대 졸업식에서 총장으로부터 공로상 금상 이사장상을 수상하여 대학 4년을 성공적으로 보냈음을 증명했다.

 

바둑학과 학생으로서는 드물게 전교에서 큰 상을 수상함에도 부득불 졸업식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작년 대학패왕전을 우승하여 한국대표로 일본 세계대학생왕좌전에 출전했던 것. 남녀 대학생들이 어울려 벌인 그 대회에서 6년 만에 여학생이 3위에 입상했다고 일본에서는 떠들썩했다.

 

▲ 지난 2월말 일본에서 벌어진 세계대학생왕좌전에서 미국의 Bill Lin선수와 겨루는 오른쪽 조은진.

 

언제부터인가 조은진(25)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노랑머리를 찰랑이며 카페에 들어선다. 기자가 알기론 4~5년은 된 것 같다. “고2때부터 염색을 하고 다녔어요. 외모에 눈뜰 나이기도 하고 평범한 게 싫었어요.” 자기주장이 분명한 그녀는 바둑동네 젊은이답지 않다.

 

톡톡 튀는 팝콘 조은진과 인터뷰를 한 것이 이달 초였으나 그 동안 기사를 올리지 못했던 건 조은진이 BnBK배 여자아마연승최강전에서 연승을 달리고 있기에 그랬다. 조은진은 지난 21일 제1회 BnBK배에서 이미 프로가 된 이단비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연승행진이 ‘7’에서 스톱되었다. http://badukilbo.com/news/view.php?idx=628&mcode=m11gy55 조은진 BnBK배 7연승 기사 바로가기

 

7연승이 어딘가. BnBK배 7연승 얘기부터 꺼낸다. “사실 바둑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는 왠지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그래서 이번 입단대회도 자신은 있었어요(웃음).”

 

당초 조은진은 졸업하면 해외보급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녀를 주춤거리게 만든 건 뜻밖에 알파고 때문이었다. “알파고 포석이랄까, 최신 트랜드에 대해서 제가 자신이 없는 거예요. 외국 분들이 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나갔다간 자칫 나라 망신이겠다 싶었죠.”

 

그래서 최신 트렌드라도 익혀서 현지인들을 만날 요량으로 조은진은 작년 하반기에 바둑도장 문을 다시 두드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타이트한 공부를 하다 보니 입단대회도 나갔고 BnBK배에서도 7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BnBK배 여자아마연승전에서 조은진은 무려 7연승을 기록하며 결승에 선착해있다.

 

지금은 어엿한 프로가 된 송혜령 오유진 김다영 권주리 등이 연구생 1조였을 때 나란히 활약했던 조은진은 연구생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이 속속 입단에 성공하는 대신 자신은 번번이 실패하다 보니 ‘젤 잘하는’ 바둑에서도 두려움이 앞서게 되었다.

 

스무 살이 넘어가니까 학교생활도 해보고 싶어서 별 준비과정 없이 영어공부만 석 달을 한 뒤 대학을 들어갔다. 대학을 들어간다는 것은 오랜 꿈이었던 입단과는 멀어짐과 동시에 또 다른 역량을 키우고자 함이었다.

 

바둑을 전공한 학생들이 대개는 차분하고 소극적인데 반해 조은진은 꽤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가씨였다. “4년 동안 누구보다 알차게 생활했다고 자부해요. 공부와 놀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게다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나름 리더십도 발견했죠.”

 

▲ 명지대 재학 중 학생회 간부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도 갖추게 된 조은진. 사진 앞줄 왼쪽.

 

조은진은 똑순이요 또순이다. 2학년 때부터 학과 수석을 독차지하며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했고,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게 되니 또 별도의 장학금이 나왔다. 학교를 용돈까지 받으며 다녔다. “단과대 부학생회장을 했고 3학년 때는 총여학생회 사무국장을 했어요. 여기 저기 안 끼는 데가 없고 까불고 다니니까…(웃음) 그때부터 세상 살아가는 데 은근히 자신감이 생겼어요.”

 

스무 살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대학생활 4년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는 얘기다. 특히 대학에서 기억에 남는 공부는 무엇일까. “바둑심리학 수업이 인상적이었어요. 바둑승부를 해 봤고 앞으로도 승부와 관계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지금도 심리학서적을 끼고 살만큼 도움이 되었어요. 이번 입단대회를 통해 더욱 실감했죠. 초반 3연승 후 2연패를 당해 탈락한 것도 아직 심리학에 정통하지 못해서죠.(웃음)”

 

다시 승부에 관한 얘기를 해봤다. 도은교(33) 박지영(28) 등 언니들이 늦깎이 입단에 성공했는데 자신도 입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까. “바둑의 열망은 식지는 않았지만, 제2의 코스로 접어들었으니 제 길을 찾아야죠. 꼭 입단이 능사는 아니니까요. 욕심은 없어요.”

 

▲ 조은진의 찍힌 사진을 보면 가만히 있는 부동자세가 거의 없다. 취미도 활동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사진은 풋볼 경기모습. 왼쪽에서 세번째 마스크를 착용한 이가 조은진.

 

'별난' 이 아가씨는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취미가 많다. 조은진의 활동성은 그녀의 별난 취미를 소개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도장생활을 해온 그녀는 남자들과 축구를 같이 자주 했기 때문인지, 요즘 미니 실내축구 풋살에 푹 빠져있다. “어릴 땐 여자라고 봐주고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힘껏 뛰어보고 싶은데, 날아오는 공을 그냥 걷어내는 동작밖에 할 수 없잖아요.” 힘껏 뛰어보고 싶어서 그녀는 모 여대 졸업생들이 만든 여자풋살팀에 작년 9월 입단했단다.

 

그 밖에 낙하산을 떠오르게 하여 스릴을 즐기는 페러세일링. 미니 암벽타기인 실내 크라이밍, 그리고 인터넷쇼핑몰 피팅모델 등등. 취미의 이름도 일반인은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던 것 들 뿐이다. 게다가 또 난데없이 동영상편집 기술까지 배우고 있단다.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근데 불굴의 투지는 좀 약해요(웃음). 딴 분들은 잘 한다고 하시는데 사실 수박 겉핥기죠.”

 

▲ 다양한 조은진의 취미활동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활동적인지 알게 된다. 페러세일링, 피팅모델, 스키, 크라이밍.

 

조은진의 대학생활에서 빼 놓으면 꽤 섭섭한 것이 해외여행이다. 부친인 충암바둑도장 조국환 원장의 귀띔에 따르면, 한 학기 동안 다섯 차례를 들락날락거린 적도 있단다. “유럽 미주 동남아 등 다양한 국가로 한 스무 번쯤? 여행도 다니고 바둑대회도 다니면서 제 꿈이 만들어졌어요, 한국에만 있기엔 세상이 너무 넓다는 걸 실감했죠.”

 

스무 번이면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상당한 돈이 들 텐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았단다. 직접 알바를 하거나 아마대회 상금으로 충당하는 또순이요 똑순이가 조은진이다.

 

조은진의 당면한 꿈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향해 있다. 유럽콩그레스에서 만난 헝가리 선수들과 많은 교분이 쌓아왔고, 일단 그곳 바둑클럽에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졸업도 했는데 왜 나가지 않는 지 살짝 궁금했다.

 

“바빠서 출발을 못했어요.(웃음) 이번 BnBK배 연승전 때문에 봄에 가려고 한 계획이 차질을 빚었죠. 연승은 끊어졌지만 또 결승전이 남아있어요. 또 5월초에 아버님의 환갑이어서 식구들과 밥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고…. 조금 계획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어요,”

 

▲ 다양한 경험을 한 해외여행 중 찍은 사진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국 런던 빅벤, 스페인 축구팀 레알마드리드 경기 관람.

 

“다르게, 재밌게 살 거야!”

조은진의 sns간판엔 이런 문구가 씌어있다.

 

하루에 몇 번씩 ‘자유인’이 되는 상상을 하다가도, 현실에 뒤처지면 어떡하나 고민을 되풀이하는 청춘들. 궁상맞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쩌면 저 대열에 낄 자신이 없을 것 같은 미생들.그들에게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열의와 호기심은 완생으로 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미래를 위한 초석다지기였다면 이제는 소중한 경험의 빛이 잉태될 시기. 모쪼록 활기차게 명랑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바둑인 조은진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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