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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01:11
  • 수정 2017-10-30 10: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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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4년 7월 18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10년 넘게 음악방을 계속해온 <늘그대맘속>. 그녀는 타이젬에 푹 빠진 사연 많은 50대였다.

유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유쾌하다. 어떤 분일까? 글로만 대하고 상념으로만 대하던 그 이미지 그대로일까? 마치 선보러 나가는 총각마냥 설렌다. 10년 넘는 세월동안 음악방을 매일 만들어서 뭇 유저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늘그대맘속>님을 뵈러 울산으로 갔다. 혹시 누군지 모르신다면, 그의 멀티 ID인 <팜므파탈>(치명적인 여자, 악녀), <므네모쉬네>(기억의 여신)를 얘기하면 떠오를는지.

수년째 ID로만 인사을 나누었던 기자는 남편 우량직장을 잘 다니고 자식 다키우고 평안히 살림만 하는 여유 있는 마나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늘 유저들과 수다떨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는 그녀는 참 행복한 사람일 것이니까. 그런데 카페에서 제일 먼저 나눈 한마디가 그러한 상상이 부질없었음을 알려주었다.

"아들을 찾았어요!"
누구에겐가 몹시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웬 아들타령? 그리고 찾다니?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통에 기자는 몹시 당황했다.

<늘그대맘속>은 50대 평범한 '누님'이었다. 그리고 그 ID속에 애절한 사연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어딘가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면…'처럼 감상적인 제목으로 음악방을 운영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얘기하기 전에 그의 기구했던 가족사부터 얘기해야 한다.

▲ 그녀의 음방엔 늘 하트가 그려져 있다.

아들을 작년에 만났다니 무슨 얘기일까. 기다렸다는 듯이 20여 년 응어리를 풀어헤친다. "올해 56입니다. 혼자 된 지 23년 되었고요. 자궁암이 걸려서 애를 못 키워서… 애 아빠가 아들을 데리고 갔죠."

잠깐만. 이 무슨 말인가. 31세 때 결혼하여 부부는 채 1년도 못 살았다. 남편의 심한 의처증 증세로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어 간난 애를 데리고 친정 부산으로 피신했단다. 그로부터 무남독녀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그녀에겐 견딜 수 없는 역경의 나날이 시작된다.

한번은 애가 아파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이미 주민등록상으로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헤어진 남편이 아들을 자신의 아이로 만들어 놓은 뒤였다. 하는 수 없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가 있는 부여로 만나러 가곤했다. 시어머니가 남편 몰래 허락해주셨는데, 그러한 즐거움도 몇 달 가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고부간의 비밀을 안 남편은 아이를 더더욱 꼭꼭 숨겨버린 것.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에게 남은 피붙이는 연락 끊긴 아들이 유일했다. 그 유일한 희망마저 잃어버리자, 그때부터 그녀는 세상사를 잊기 위해 술을 가까이 하게 되고 급기야 '폐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희망이 사라진 지 어언 20년. 인연이란 참으로 묘했다. 두 세 다리를 건너서 애 아빠와 연락이 닿은 것이 작년이란다. 그래서 꿈에서나 그려보던 아들이 청년이 되어서야 다시 재회하게 된다. 아무리 피붙이라도 20년의 세월의 간극을 금세 이을 수가 있을까.

지금은 경찰대학에 다니는 장성한 아들에게서 어느 날 밤 엄마를 이해한다는 전화 한통이 온다. 그때 그녀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아들과 엄마는 20년 동안 끊어졌던 인연을 단 하루 밤 통화에 압축하여 맘을 전한 것. "아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엄마! 사랑해요."
▲ 타이젬은 미워할 수 없는 공간이죠.

바둑을 거의 모르시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타이젬과 인연을 맺었나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된 삶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죠. 어느 날 친정 부모님과 아들이 보고 싶을 때 음악에 빠져들었죠. 엄마 아빠가 흥얼거리시던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죠. 그래서 자연스레 올드팝을 즐겨듣게 되었어요. 모 인터넷 음악방송에서 개인방송을 하면서 낙을 삼고 있었는데, 동료 한 분이 타이젬을 소개하셨어요. 아무나 음방을 개설할 수도 있고 참여자수도 많아서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라고요. 처음엔 <블루로즈>라는 ID로 활동했죠.

그래도 바둑을 모르시면 타이젬에서 활동하기는 힘들었을 텐데?
일단 저는 음악이 좋았고, 타이젬 유저들은 40대 이후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올드팝 팬들이 몰려들었죠. 활동 초기 2002년 월드컵시즌이었는데 타이젬 대국실에 가서 바둑을 구경하는데, 왜, 대국실 우상귀 쪽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거예요. 그때 맘이 뭉클해져서 '아, 이곳에서 정을 붙여보자' 했던 게 지금까지 왔네요. 이젠 바둑도 배워야지요. 가르쳐 주실 단골회원은 있어요. 17급이 목표입니다.

17급이 목표? 그런데 9단 ID도 있던데, 유저들이 놀리곤 하지 않나요?
초창기에 18급 ID로 방장을 하고 있는데, 왜 자격지심이라고 있잖아요. 어느 유저분이 대화를 하시면서 '급들이 뭘 안다고 그래. 급들은 나가!' 그러더라고요. 괜히 찔리는 것 있죠. 그래서 '타이젬 음방하려면 단수가 높아야 하나보다’하고 음방 단골 사범님에게 부탁해서 초특급 승단했어요. 남들에게는 '9단세일할 때 산 것입니다.' 말하곤 하는데, 지금 제가 바둑을 잘 못 둔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다 아세요.

음방장 10년이라면 웬만한 사범님들이나 여러 기우들도 아는 분이 많을 텐데, 가끔 오프에서 만나기도 하시나요?
타이젬 스타 joonki 사범님과 김일환 사범님(ID는 모름^^)은 직접 뵙기도 했고, 올카 국제신사 푸른진달래 이송도 롯데 유수부쟁선 등등 초창기부터 단골인 분입니다. ID 거명이 안 되신 분들이 기분 나빠 하실까봐 조금 불안합니다^^. 그리고 늘사랑동호회(시삽 늘사랑해요) 활동도 해요. 지난 6월 모임에는 못 갔으니 8월 원주 모임에는 꼭 가야죠. 울산에는 처용동호회가 유명한데 주변에 사시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야설 용수 유랑자3 사범님도 울산에 사실 때 자주 뵈었죠.

요즘은 대화창에도 자주 등장하던데, 아들 또래 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아무래도 남성들이 많은 사이트니까 여성분으로서는 듣기 난감한 얘기도 간혹 있을 텐데요. 타이젬 터줏대감으로써 어떤 느낌을 받나요?
모든 이들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겠지요.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또 대화가 섞이기도 하고 하다보면, 쉽게 오해하고 쉽게 믿어버리고 쉽게 실망하기도 하죠. 그러나 다들 4~50대들이 잖아요. 사이버 세상에서 익명의 ID로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간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저 같은 사람에겐 착한 사람을 더욱 착하게 만드는 좋은 친구들이 훨씬 많아요. 타이젬은 미워할 수 없는 공간이죠.

최근에는 <늘그대맘속>이라는 ID만 고집하더군요. 이유라도?
ID를 만들 때 정해진 글자 수에 맞춰서 나름대로 자신의 분신 아바타처럼 대개들 만들죠. 저도 제 인생의 기구함과 간절함이 들어있어요. <늘그대맘속>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간절함에 아들 주민번호로 만든 ID예요. 그리고 과거 <므네모쉬네>는 제가 맘이 약해졌을 때 아들에 대한 기억을 늘 하게 해달라는 맘을 담았지요. 당연히 아들을 찾은 지금 <늘그대맘속>만 써야 하겠지요. 전 그 ID 때문에 아들을 만났다고 믿습니다.


▲ 인생 후반부를 맞아 다시 찾은 웃음.

그녀는 울산대학교 앞에서 최근까지 기거했단다. 아들이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으니 혹시 이곳에서 아들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이사를 온 지 수년째. 그러나 이제 아들과 같이 지내려면 공간이 좁다고 느꼈던지 이사준비로 한창 바빴다. 기자는 잠깐의 시간도 빼앗는 것이 미안하여, 울산부근으로 내려오면 꼭 다시 들리겠다는 인사를 하고서야 간신히 헤어졌다.

인생은 망각의 상징 레테의 샘물과 기억의 상징 므네모쉬네의 샘물이 한데 합쳐진 것인가 보다. 사람의 기억은 때론 너무 잔인하다. 슬프거나 힘들었거나 괴롭거나 상처받았던 일은 시간이 흘러도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나고, 급기야 잊을 수 없는 일로 커 버리기도 한다.

그녀 인생은 아들을 잃어버린 시간과 아들을 찾은 시간으로 나뉜다. 젊은 시절이 불행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즐거운 시절만 남았을 것이다. 한때 출가를 생각했을 정도로 꼬이기 시작한 인생이 이제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슬슬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타이젬은 가족이고 PC는 남편이고 기우들은 애인입니다. 이제 아들까지 찾았으니 더 부러운 것이 있겠습니까. 힘든 세월동안 타이젬은 나를 지탱해준 언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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