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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09:57:59
  • 수정 2017-10-30 10: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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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4년 6월 22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합천군 수졸기우회가 미래포석열전 개최에 큰 힘이 되었다. 사진은 수담삼매경에 빠진 수졸기우회원들.

10평 남짓 한 허름한 건물의 2층. 내부수리중인지라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10여명의 갑남을녀들은 아랑곳 않고 수담삼매경에 빠져있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한구석에 자장면그릇만 포개져있다면 어릴 적 동네기원과 닮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유분수라, 이들 중에서 타이젬에서 찾는 귀빈을 한눈에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적막을 깨기로 했다.

"안동환 원장님 찾아 왔습니다~."
(1초 후) "아이쿠, 이런 누추한 데를… 제가 안동환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손을 내미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아휴 시골지요. 병원은 10개 정도 있는데, 합천에서는 그래도 가장 오래된 치과죠."
그는 평범한 시골 치과의사였다. 1986년부터 합천에서 개업을 했다하니 2년 후면 30년 연륜을 자랑하게 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이다. 한 눈에 수더분하고 서글서글하며 맘 좋게 보이는 이웃 담배포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바둑동네 직함으로 말하면, 합천군 바둑협회 2대 회장이며 지금은 고문역을 맡고 있는 안동환 원장(56)이다.

바둑을 즐기는 직업군 중에 치과의사는 굉장히 상위권이다. 법조인, 교사, 의사가 3대 직업군이며, 서울의 경우 치과의사회는 의사회보다도 큰 바둑행사를 근 30년간 치러오고 있을 정도로 의사 위에 치과의사가 있다. 따라서 치과의사라는 직업에서 그의 바둑사랑은 이런 선입관으로 채워진다.

그는 군 시절에 바둑을 굉장히 두었다고 한다. '군대바둑?'
"군대바둑은 좀 약한데요?"
"하하. 기원3급쯤 됩니다."

▲ 수졸(守拙)의 마음. 안동환 원장은 합천군을
바둑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경남 합천이라-. 합천하면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떠오르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떠오른다. 바둑인이라면 고 하찬석 국수의 고향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갑자기 타이젬에서 합천으로 그를 찾아간 이유는 합천을 굉장히 사랑하고 못지않게 바둑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분이라는 제보를 받아서다. 작은 기우회에서 출발하여 미래 국수를 키우기 위해 '미래포석열전'이라는 대회를 만든 후원자가 안원장이라고 한다.

"이곳 사무실은 바둑을 두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얼마 전까지 합천군에서 유일하게 경영했던 바둑교실이어요. 합천군바둑협회에서 상징성이 있어서 인수했죠. 좀 낡았죠."

보통 기우회하면 이름을 그럴 듯하게 짓는데, '수졸'이라면 좀 겸손한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 4-5명이 모여 1주일에 2~3차례 바둑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죠. 1991년도 합천기우회로 발족하였다가 수졸(守拙)이라고 변경했습니다. 아직은 변변치 않지만, 프로를 지향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진짜 프로와 같은 맘으로 한 판 한 판 열심히 두어보자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20명 정도 활발히 활동합니다.

합천하면 하찬석 국수와의 인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하찬석 국수와 인연이 닿아서 기우회에서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군대회도 개최하고, 하찬석국수배를 수년째 개최하기도 했지요. 물론 하국수님은 저희들 지도사범이셨죠.

합천군 초청 미래포석열전도 수졸기우회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관계있죠. 하국수님 얘기 조금 더 하죠. 하찬석국수배를 매년 개최해왔는데, 하국수님이 10회째가 되면 하찬석배를 크게 키워보자고 말해놓고선 2010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이후 대회는 중단되었다가 4년 후인 2011년 재개되어 작년 11회 대회까지 개최했죠. 그러다 2012년 하국수님의 유지도 있고, 수졸기우회에서 뭔가 의미 있는 행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당시엔 제가 합천군바둑협회장이었거든요. 기우회 간판이 수졸이기 때문에 뭔가 입단 초년병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해볼까 생각하던 중에 미래포석열전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미래포석열전이 합천군 초청대회인 줄은 알지만, 수졸기우회가 관계되는 지는 잘 몰랐는데요?
하하. 아무려면 어떻습니다. 처음엔 저 혼자 스폰서를 하려고 했는데, 군 차원의 자랑거리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평소 인사하고 지내던 군수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1차면담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어요. 그래서 보름 후에 다시 자리를 만들어서 '정히 안도와주시면 저 혼자 하겠습니다. 딱 절반만 도와주세요.' 해서 설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창환 군수님이 앞장서서 지지하는 대회가 되었습니다.

▲ 미래포석열전은 합천군에서 힘을 합쳐 만든 미래대회였다. 작년 대회 결승 신민준-신진서 복기를 이세돌이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군수님의 맘을 움직인 중요한 요인이라면?
합천군에서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없다. 합천군의 홍보를 위해서는 하찬석 국수라는 좋은 바둑브랜드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경우인지를 설명했죠. 지금은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도 TV를 켜면 '합천군 초청'이라는 멘트가 나오니 바둑경기를 열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는 취지였습니다. 지역신문에서도 미래포석열전을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을 정도가 되었죠.

그런데 왜 하필 미래포석열전이었습니까?
수졸기우회를 모태로 해서 합천군바둑협회를 만든 지 5년이 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애기가로서 최근 한국이 중국에 추월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죠. 자그마하지만 이런 대회를 통해 뭔가 바둑계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대회에는 한중영재대결로 확대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최연소 프로 신진서를 놓고 부산과 합천이 한판 붙을 태세던데요?
하하. 한판 붙기는요. 미래포석열전에서 성적이 가장 좋았던 신진서는 부산에서 자랐고 부친도 부산사람이라죠. 그런데 신진서의 모친 고향이 이곳 합천입니다. 공식적인 후원회는 아직 아니지만, 신진서가 바둑대회 결승에 올라가기라도 한다면 여기 이 사람들 모두 모여서 서울로 응원갈 것입니다. 신진서를 하찬석 국수 이래로 합천의 자랑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군수님도 신진서와 모친이 합천을 방문하자, 군수님이 직접 모친의 동창생들을 찾아서 동창회도 열어주시곤 했죠. 글쎄요, 그러고 보니, 부산과 합천이 신진서를 놓고 싸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병원 하시면서 바둑관련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요?
억수로 많죠. 다 공개할 수는 없고, 하나만 말하죠. 한번은 합천경찰서 모과장님이 기우회를 찾아오셨어요. 반가운 맘에 대국을 했는데, 오후 1시30분까지 병원 점심시간이었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을 하다 12시에 시작한 바둑이 어느새 오후2시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때 어떤 분이 방 문을 확 열면서, "환자는 안 봐주고 바둑만 보나!"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에요. 알고 보니 계속 기다린 환자였어요. 도끼자루 썩는다는 난가(爛柯)의 고사가 생각나더군요. 그 이후로는 절대 근무시간엔 바둑을 두지 않게 되었죠.

새삼스럽지만 바둑이 좋은 이유를 말하신다면?
유일한 취미가 바둑이고 TV도 바둑TV를 즐겨보죠. 의사로서 하는 말이지만, 바둑을 두면 잡념이 없어져요. 사실 병원의 경우 항상 좋은 고객만 있는 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아요. 바둑 한판이면 스트레스는 싹 사라져요. 지면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고요? 그럼 한판 더 두죠. 하하.

합천바둑협회의 일원으로, 수졸기우회의 일원으로서 향후 목표라면?
지금까지는 수졸기우회를 통해 좋은 맘에 맞는 친구들과 바둑을 즐겨왔다면 앞으로는 군바둑협회를 활성화시켜서 합천군민 전체와 즐기고 싶습니다. 기존의 미래포석열전이나 합천군민 바둑대회를 통해 합천군민들이 바둑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고향 합천을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바둑일이라면 항상 후원할 맘이 있습니다. 합천군에서 최소한 10년은 미래포석열전과 같은 대회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안동환 원장은 합천군바둑협회 일원으로서 수졸기우회 일원으로서 향후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 작년 미래포석열전 본선진출자와 내빈의 기념촬영.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안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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