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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09:51:17
  • 수정 2017-10-30 10: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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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4년 3월 17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전주장을 복원했던 그 느낌을 그대로를 얘기하고 있는 소병진 명장.

그의 고향은 소(蘇)씨 집성촌이자 목수마을로 유명한 전북 완주군 용진면 녹동마을이다. 부친이 직장을 잃으면서 가세가 기울자 결국 낙향하게 되었고, 넷째인 그는 학업을 중단해야할 처지였다. 가난은 일찍 철을 들게 만든다고, 중2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가구공방에 다니는 8촌형을 따라 모 가구회사 목공부 소목반에 들어갔다.

가구공방은 철저히 도제식(徒弟式)이어서 과거 '기다니 도장'의 연구생처럼 잔심부름과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는 남보다 빨리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8km 거리를 아끼기 위해 작업대에서 잠을 청하면서, 10년은 되어야 겨우 깨친다는 기술을 2년 반 만에 무사통과했다.

1971년 전주에서 기능올림픽이 열렸고 가구제작 부문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억울하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학력차별의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날 이후 최고가 되어보자는 결의를 더욱 다지게 되었고, 20여년을 더욱 매진한 끝에 1992년 가구제작 부문 명장(明匠) 1호가 되었다. 마흔을 갓 넘긴 최연소 명장이었다.

1991년 어느 날. 소병진(63)은 인사동에 들렀다 한 골동품 쇼윈도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느티나무로 만든 아담하고 예쁜 장(欌)에 눈길이 꽂혔는데, 그 장의 꼬리표엔 '전주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응, 전주?' 무릎을 치며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황홀경에 빠진 그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고향에서 120년 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주장'은 18세기부터 전주인근에서 쓰던 안방가구이자 예술품이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제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는 말을 듣고서 그는 평생을 전주장 복원에 투신하게 된다. 전주장에 매료돼 제작기법을 연구하길 20여년,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선한식가구 전주장의 완벽한 복원에 성공한다. 그 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전주장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12년 무형문화재 소목장에 지정됐다.

명인(名人)과 명장(明匠)-. 기예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명인과 기술이 뛰어난 장인을 일컫는 명장. 이창호 이세돌 같은 이가 명인이며 명반(名盤)을 만드는 이가 명장이리라. 굳이 바둑판이라 고집하지 않더라도 나무를 타는 데 있어 천하의 명장이라 일컫는 한 분을 만났다. 명인과의 대화는 언제나 기다려진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무장한, 무형문화재 소병진에게서는 진한 명장의 향내가 났다.

▲ 좌측-느티(龍目) 전주 버선장.(2004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작). 우측-전주 느티 태극이층장.

평생을 나무와 함께 가구를 만들어 온 명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자는 전주장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전주장을 만드는 과정도 바둑판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고 들었는데?
죽은 나무(고사목)를 전주장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천년을 살게 한다는 점이 명반을 만드는 과정과도 닮았지요. 바둑판이든 전주장이든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합니다. 고사목이 있다고 치면 15년을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둡니다. 비를 맞고 따가운 햇빛아래 견디며, 눈보라 속에서도 그대로 방치해두죠. 건조된 나무는 선별해서 3년을 또 자연 건조를 시킨 다음, 원목을 장으로 제작합니다. 보통 장 하나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리는 셈이죠. 명반도 그 정도 세월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전주장과 바둑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억지가 아닙니다. 생명력을 느끼는 나무를 다루는 점에서는 동일하죠. 또 바둑을 조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남녀가 꽉 껴안듯 서로 다른 재질의 목재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것을 음양(陰陽) 화합이라고 하죠. 바둑도 흑백 조합의 결정체니까요.

왜 일개 지명인 전주장을 복원한 것이 그리 대단한 업적인가?
호남지방은 예부터 소목 제작기술이 발달하여 목가구가 유명했는데 그중 최고는 전주였어요.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며 왕조 500년 동안 성역으로 생각한 곳입니다. 따라서 양반과 부호들이 대거 모여서 살았으며, 안방 사랑방을 장식하는 목가구 문화가 발달했지요. 전주장은 한 지역의 장이 아니라 조선 한식가구의 백미라 할 수 있죠. 전주장은 왕실에서 쓰는 귀족가구라고 보면 됩니다. 더욱이 지금은 고려장 조선장 등이 모두 사라진 다음이라 의미가 있죠.

명장의 바둑실력과 바둑과의 인연을 말한다면?
축은 알아서 축 몰이만 재미를 느끼는 수준이라…, 내가 (축에) 몰릴 땐 재미없고. 하하.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잊고 살았으니 앞으로 (바둑을) 좀 하려고 합니다. 사실 '쟁이'모임에서 바둑을 사랑하는 분이 많아요. '쟁이'는 외롭고 돈 없는 사람이죠. '쟁이와 쟁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얼마 전 서예가 김창동 선생(아마5단)도 들어오셨어요. 1년에 두 번 만나고 회원들 간의 길흉사 있으면 늘 함께 합니다.

▲ '쟁이'모임의 면면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노영하 사범, 예술단 황미영 단장. 돌씨앗배 후원자 문종철 사장.

맘이 통하면 어울리고 각 분야에 일인자가 아니라도 평생 업으로 하는 분들이 함께 어울린 모임 '쟁이'? 그랬다. 과거 '돌씨앗배'라는 시니어 기전이 있었는데, 그 기전을 후원한 회사의 사장이 소명장과는 막역한 친우였다. 때 마침 미안마에서 건축자제 사업을 하는 문종철 사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주에 사는 소명장은 한번 서울에 들르면 서울에 있는 친우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오늘은 '쟁이'를 대표해서 문사장이 나온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현재 타이젬에서 절찬 연재중인 『좋은사람 좋은생각』 의 작가 최승렬 씨가 저자사인회를 가졌을 때 각계각층의 '쟁이'들이 모여서 축하해주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있다.

"'쟁이'자랑하고 있었습니까?" 문사장은 오자마자 또 '쟁이' 자랑부터 할 참이다. 인디밴드 밴드죠, 쟁이예술단 향사 황미영, 그리고 소병진 명장, 노영하 사범이 대표적인 멤버지요. 저는 코디네이터 생활만 20년째입니다. 하하.”

그가 소명장을 보러온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우리 소명장이 또 나무의 대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미안마에서 가져온 나무입니다. 이 나무 좀 봐주세요." 대뜸 주섬주섬 조그만 바둑판을 꺼낸다.

"좋은 나무네요. 중국 황실가구에서 많이 쓰는 나무인데 수입목 중에서 최고인 자단나무네요. 이 나무는 비중이 커 엶은 종이도 물에 가라앉는 특성이 있어요. 바둑판은 돌과 나무가 부딪히니 쿠션이 있어야 하죠. 실제 사용하는 바둑판으로는 좋지 않지만, 이것처럼 장식용 기념품 용도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죠." 명장은 문득 생각난 듯 '바둑쟁이들' 앞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 "1400여 년 된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라고 아시죠? 그게 본체는 백제 소나무, 반상표면은 스리랑카 자단나무, 여러 장식은 남국의 상아로 만들어진 바둑판이랍디다. 그 바둑판 표면이 바로 이 나무입니다."

▲ 즉석에서 모형 바둑판을 감정하는(?) 소명장. 그도 한때 명반제작을 한 적이 있단다.


기력에 비해(?) 바둑을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혹시 바둑판도 과거에 제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 나무가 생명인데 안 해봤겠습니까? (모형바둑판을 가리키며) 나이테가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을 심재, 바깥쪽으로 들어간 것은 변재라 합니다. 심재는 해를 보려고 자꾸 올라가는 습성이 있어요. 따라서 반상 쪽으로 심재가 들어가야 합니다. 이 양반도 주워들은 얘기는 있어 가지고 장식용이지만 잘 만들었네요. 다만 다리는 자단, 통은 흑자단, 바둑판은 금색이나 흰색이 좋을 듯싶습니다. 표면이 좀 붉으니까.

모처럼 서울행이라 시간을 쪼개어 써야 하니, 기자는 끝으로 약간 어려운 질문을 던지자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 답변이 날아왔다.

"바둑과 전주장의 공통점은 무엇?"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이라, 옛 것을 알고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면 능히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면 답변이 될까요?"

가끔은 바둑이 아닌 세상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 아니한가.

긍재 소병진 가구제작 명장1호 이력
대한민국 명장(名匠) 가구제작 1호 (1992)
대한민국 대통령표창 4회 (1992, 2001, 2004, 2007)
전북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小木匠) (2012)
대한민국 정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2004)
대만민국 신지식인 중소기업분야 제190호 (2002)
조선한식가구 전주장(全州欌) 30여종 복원.
우석대학교, 한국전통문화교육원 겸임교수.

▲ 소병진 명장과 그리운 친구 문종철 사장.

▲ 전주 작업장에는 수십 년 된 원목이 기나긴 건조과정을 인내하고 있다. 마치 바둑판 공장에서 많이 보았던 광경과 흡사하다. 이제 소명장의 손을 거치면 전주장으로 바뀌게 된다.

▲ 소병진 명장의 전주장 작업 홍보 동영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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