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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09:48:09
  • 수정 2017-10-30 10: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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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4년 1월 15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중국 유학생 경제원 씨(26)은 타이젬 9단의 열혈 바둑광팬이다.

지난해 11월, LG배 4강전이 벌어진 인천 파라다이스호텔에 마련된 검토실에 바둑팬 한 명이 불쑥 찾아왔다. 하긴 일류들이 대국하는 곳에 팬들이 찾아오는 일은 10년 전 만해도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 팬이 공개해설회도 하지 않는데 직접 찾아온 것에 기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한국선수도 다 떨어져서 낙도 없는데 무슨 직관이람?' 혼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 '타이젬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고 한다. 아니, 타이젬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이고! 어딜 가나 타이젬 팬밖에 없구먼!' 기자는 일부러 큰 소리로 주변을 환기시키며 타이젬 식구라는 대목을 강조했다. 검토실엔 프로와 대회관계자 그리고 수명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주변을 의식한 과도한 액션이었다.

그의 말투는 다소 어눌했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현재 인하대학교 정보공학과 대학원에 2년 째 재학 중인 타이젬 왕팬 경제원 씨(26)였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젊은 청년이 타이젬 9단을 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즉시 확인 작업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잉? 타이젬 9단?' 때 마침 검토실에 진을 치고 있던 멤버들은 다들 타이젬 7~8단 수준이기에 그 청년에게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고는, 의협심 많은 월간바둑 편집장이 대표로 앉았다. 그러나 곧 편집장은 100여수 만에 돌을 거두며 그가 확실히 타이젬 9단임을 공인했다.


▲ 지난 11월 인천에서 타이젬 9단의 실력을 보여준 경제원(왼쪽)과 월간바둑 편집장의 대국.


그로부터 두 달 여가 지나서 그를 다시 찾았다. 생각해보면 그도 타이젬의 왕팬이다. 유학생인 경제원 씨가 한국에 온 지 어느덧 2년6개월. 한국은 여전히 경제원 씨에게 낯설다. 그러나 바둑을 두는 순간만은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잊어버린다고 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다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오히려 말이나 글이 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한국말을 잘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논문만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다보니 오히려 약해졌어요. 그래도 타이젬에서 도움 받는 것도 있어요. 타이젬 유저들은 격이 없이 농담도 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저 같은 경우는 많이 배우죠. 한글 타자가 많이 늘었죠. 하하."

이렇게 고향이 그리울 때면 바둑은 경제원 씨에게 언제고 벗이 되어준다. "중국타이젬 혁성에 접속해 바둑을 두며 머릿속을 비우곤 했어요. 그런데 한국 컴퓨터는 자판도 다르고, 혁성대국실에 들어가기 까지 많은 수고가 들더군요. 한국어가 많이 익숙해진 지금은 타이젬에서 바둑을 둡니다."

'타이젬 ID를 가르쳐 줄 수 있나?' 당연하단다. 타이젬 ID는 '미친돌이'.

이세돌의 팬인 그는 이세돌의 별명을 따서 ID로 만들고 싶었단다. "이세돌이 한 때 누구든지 붙기만 하면 쓰러뜨렸잖아요.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이세돌은 '쎈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것이 중국에서는 '그를 막을 수 없다', '미치다'는 뜻의 중국어 '미친돌'로 불려요. crazy라는 뜻이죠. 그런데 '미친돌' 이란 ID가 이미 타이젬에 있데요. 그래서 '미친돌이'라고 만들었어요."

'미친돌이'라는 ID를 만들고 뿌듯해 하던 그였지만, 한국 유저들은 그에게 이세돌을 감히 상스럽게 표현한 ID라고 오해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하루는 제가 타이젬에서 대국을 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뜬금없이 ID가 이상하다며 핀잔을 주더군요. 저는 소심해져서 대기실 대화창에서 여러 명에게 제 ID가 정말 이상하냐고 물었죠. 그런데 도리어 멋지다는 분도 있었어요. 저는 제 ID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중국 ID는 JackyC인데, 뭐 특별한 뜻은 없어요."


▲ 인하대 학생회관에서 타이젬에 접속한 '미친돌이' 경제원씨.



혁성과 타이젬을 모두 접한 그에게 한국과 중국이 문화가 다소 다른 것처럼 온라인 역시 문화가 다른지 물었다. "이상하게 똑같아요. 혁성과 타이젬의 기력차이도 전혀 없는 것 같고요. 유저들의 성향도 비슷해요. 혁성유저도 타이젬유저 만큼 T포인트를 좋아합니다. 하하."

경제원 씨는 초등학교 때 바둑을 배웠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만 되면 게임만 하자 부모님이 뭘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러데 아빠가 장기고수여서 장기를 배우려고 했는데, 장기반에 인원이 꽉 차서 바둑반에 가게 되었어요. 우연히 배운 셈이죠."

그런데 바둑이나 장기나 역시 소질을 타고 나는 법이었을까? 경씨는 기재가 출중하여 바둑에서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기재가 출중한 그에게 아버지와 바둑사범님은 오히려 기대가 컸다. 경제원 씨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버거워 곧 바둑을 그만 두게 되었다고. 그만 둘 당시 기력은 아마2~3단. 공부로 돌아선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는데,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모두 마친 뒤 그는 귀소본능처럼 바둑을 다시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어렸을 때 시합에서 졌을 때, 자괴감과 괴로움으로 힘들었어요. 그렇게 패배감을 맛보던 중에 저는 아버지, 사범님 등 어른들께도 무척 혼이 나야 했어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바둑의 즐거움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심심하던 어느 날, 중국 타이젬 혁성에 접속해 바둑을 뒀어요.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바둑을 접하니,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군요. 그 때 다시 홀로 바둑을 공부했죠. 지금은 타이젬 9단 입니다."


▲ 매우 추운 날 인하대의 상징 비룡탑에서 한컷!



아무런 바둑학습을 하지 않았는데도 타이젬 9단까지 올랐다고 한다. 아무래도 믿기 어려웠다. 그에 대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공부 때문에 바둑 끊었어요. 근데 이후에 크고 나서 스트레스 없이 책도 보고 타이젬 바둑두면서 9단까지 늘었어요. 오히려 스트레스 없이 배울 때가 더 많이 늘었어요. 계산능력은 어릴 때가 더 좋죠. 그런데 대세관은 나이 들고 나서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타이젬 9단이라면 바둑으로 밥을 먹을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지금 중국의 바둑열기가 무척 달아올라있어 바둑일을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대학 때 9단 실력이 돼서 바둑 사범 아르바이트를 했죠. 한국 바둑교실도 가본 적 있어요. 전주 인천 등지에서 가끔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실은 바둑교실 원장님이나 사범님들이 바둑이 세잖아요. 그들과 대국해보려고 바둑교실을 방문하곤 했어요. 중국에 바둑 배우려는 아이들은 굉장히 많죠. 그러나 바둑학원은 나중에 중년에 접어들면 하고 싶어요. 지금은 전공이 있으니까…."

경제원 씨도 한국을 한류를 통해 알게 되었을까? "연예인은 관심 없어요. 다만 바둑을 좋아해서 한국에 관한 좋은 인상은 있었어요. 그것이 한류라면 한류죠. 이창호는 저 뿐만 아니라 중국 바둑팬에겐 신이었어요. 간쑤성 란저우교통대학을 나와 인하대 정보통신 대학원을 왔어요. 어학을 1년 동안 배웠어요. 전주대에서 6개월, 그리고 인하대에서 6개월. 아버님의 친구 분이 유학원을 경영하시는데 권유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중국의 바둑문화도 한국과 비슷할까? 순수 아마바둑인이 전하는 중국바둑문화론을 들어보자. "중국에서는 장기가 쉬우니까 대중화되어 있어요. 바둑은 대신 엘리트게임으로 여겨지죠. 컴퓨터가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게임이 바둑이잖아요. 엘리트게임 바둑에 대한 이미지 덕분인지 어린이들도 교양과목으로 바둑을 많이 배워요. 최근엔 프로를 목표로 한 어린이들도 많지만, 사고력 등 개인소양을 기르기 위해 배우는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제가 바둑을 배우게 된 계기가 그랬던 것처럼."

전액 장학금으로 인하대학교에서 정보공학을 연구하는 경제원 씨의 꿈은 바둑과 관련된 정보통신학이다. 어떤 꿈이 있을까? "같이 공부하는 한국 친구들은 교수의 꿈도 품고 있지만, 저는 아니에요. 정보통신학도 중에서 아마 저는 까마득한 밑이겠지만, 정보통신학도 중 바둑인을 뽑으면 아마 제가 정상급 아닐까요? 하하.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바둑에 제가 배운 기술을 접목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 LG배 결승진출자 중국의 퉈자시와 기념촬영.


오랜만에 젊은 순수 바둑인을 만나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오랜만에 대학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우연히 경제원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있는 글이 띄었다. 물어보니, '오호!' 송대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한 구절이란다.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후회해도 소용 없음을 알았고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앞으로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실미도기미원)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으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사 지금의 생각이 맞고 과거의 행동이 틀린 것임을 알았다.

"아직은 어려요. 과거엔 바둑이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진장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은 정보통신학이 어렵지만 또 언젠간 너무 좋아질 때가 있을 거예요. 바둑이 골프처럼 포장을 잘해서 예쁘게 고급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저렴하게 취급받는 것 같아요.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타이젬 유저들도 '미친돌이'를 보시면 대국 신청해주세요!"

바둑 즐기는 팬들의 생각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똑같다. 그러고 보니, 사진이 잘 찍히면 보내달라고 적어준 e메일 주소에도 바둑을 뜻하는 go가 들어있었다.




*나는유저다'는 유저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는 코너입니다. 유저여러분의 친구를 추천하거나, 타이젬 절친과 같이 출연해도 좋습니다. 동호회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 등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리겠습니다. 해외나 지방에 계신 분도 관계없습니다. 댓글로 ID 추천을 해주시거나, 타이젬으로 연락하시면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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