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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19 19:06:05
  • 수정 2024-02-19 21: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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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미추홀리그가 인천바둑발전연구회에서 18일 전국 52명의 1급이 모인 가운데 일제히 개시되었다. 


철학자 칸트는 늘 같은 시각 동네를 산책했고 그런 그를 보면서 동네사람들은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인간의 두뇌는 산책할 때 비로소 가장 활발해진다고 칸트는 보았는데, 아마도 그건 칸트가 바둑을 몰랐었기에 했던 말이 아닐까. 우리는 바둑에 임할 때, 아니 바둑을 상상할 때부터, 두뇌가 활발하다 못해 폭발하는 경험을 매번 하곤 하니까. 미추홀 시계는 칸트의 산책보다도 더 정확하게 돌아간다.


곰 뱀 다람쥐 개구리 고슴도치들은 겨울잠을 자지만 고라니들은 잠도 없다. 먹이도 별로 없는 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늘 한결같은 사람들과 정성껏 바둑 수(繡)를 놓는 미추홀이 있었기 때문이다.


'1급의 자존심' 미추홀리그 제92회 대회가 18일 오후1시부터 인천 모래내시장 인근 인천바둑발전연구회(김종화 치과 내)에서 초(超)1급, 강(强)1급, 물(水)1급 52명이 모여 뜨거운 열전을 벌였다.


게 중엔 프로도 있고 프로 못지않은 주니어들도 있고 '왕년의 한칼' 시니어들도 수두룩하고 얼라들도 있고 여장부들도 있다. 그들은 다른 어떤 이름보다 1급으로 불리길 원할 테다. 


▲김종화치과 간판 옆에 인천바둑발전연구회(빨간 화살표)간판도 보인다.


인천의 자존심 ‘손오공’ 서능욱은 오전10시부터 출근부 도장을 콱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아직 이불 속이었던 많은 물(水)1급들이 깼을 테다. 


최근 우승 맛을 잊었다는 ‘거목 혹은 고목’ 나종훈, 프로가 된 수많은 고수들도 그에게 지도기 한번 안 받아본 적이 없는 ‘속사포’ 정대상. 그리고 새로이 인천에 똬리를 튼 미추홀 실력최강 최홍윤이 초(超)1급으로 나섰다.


이들 초(超)1급과 전혀 꿀리지 않는, 다만 호봉이 좀 낮을 뿐인 김도협 최준민 박지웅 등 주니어 강자. 그들이 또 두려워할 백결 안상범 박상준 등 '바둑고 삼총사'들이 방학인고로 단체로 미추홀에 나타나 위압감을 과시한다. 


게다가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초딩 박한필 임사무엘이 있다. 초딩이라고 우습게 보면 크지 않은 코 다친다. 이들은 모두 1레벨씩이나 된다. 다들 도장에서 수련 중.


김동섭 박휘재 안재성 서부길 이철주 곽웅구 황이근 등 강(强)1급들을 뒤늦게 소개할 만큼 미추홀은 강하다.  


호랭이 사자만 소개해서는 또 표범이 화를 낸다. 이재철 한세형 임연식 소재경 김승민 남경석 김재원 장혁구 등도 호시탐탐 몸집을 키우고 있다.


드넓은 초원은 역시 고라니 임팔라가 많은 곡창지대. 그들도 다들 동네 1급들이지만 일일이 거명 못 함을 용서해주시라.


▲참 좋은 분 김종화 미추홀대회장과 최병덕 미추홀기우회장. 


미추홀에서는 프로와 주니어를 0레벨로 두고, 시니어는 1레벨, 그리고 물1급들은 3레벨이며, 표범 하이에나류는 2레벨이다. 한 레벨에 한 치수씩 격차를 인정한다. 따라서 정선, 두 점, 석 점… 이렇게 치수제로 진행된다.


다만 이번 달부터 달라지는 게 있다. 참고로 아래 전적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덤’이라고 표기된 부분에 –1,-2, 1, 2, 3…,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이는 지난 1월부터의 성적이 가미된 것인데, 만약 우승(+3) 준우승(+2) 혹은 3승(+1)으로 입상을 하게 되면 덤을 추가로 상대방에게 제공하기로 되어있다. 같은 의미로 4패자(-2) 3패자(-1)는 추가로 덤을 받게 된다. 


머리가 나쁜 사람을 위해서 재차 설명하면, 0레벨+1과 2레벨이 만나면 원래 치수 두 점에다 추가로 사석 1알을 먼저 주고 경기를 벌인다는 것이다. +1은 누계 성적이 그만큼 좋다는 뜻. 


이 방식은 진행 측에서는 좀 골치 아프겠지만, 보다 더 선수들 간 치수를 정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하여 +10이나 –10이 되면 강제 레벨 승강이 실시되기도 한다는 게 요체. 따라서 보다 하루 4판의 바둑이 박진감 넘치게 된다. 


또 하나, 4패 자는 1만원의 기부금을 내기로 했다. 이도 역시 좀 더 ‘빡시게’ 경기를 해보자는 뜻.


▲동호인 최강 이재철-KGF리거 박지웅(승).


자, 오늘도 고라니는 꿈을 꾸며 출발한다. 꿈은 첫 판 결과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이변이 없기로 유명한 1라운드에서 살짝 눈길이 가는 매치는 더러 있었다. 먼저 바둑고 3년생이며 어린 시절 인천 연구생이었고 미추홀에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런 안상범이 최강프로 최홍윤을 호선으로 이겼다. 


물론 호선이라고 해도 최홍윤은 추가로 5점의 덤을 제공하기 때문에 살짝 부담되는 치수였긴 했다. 안상범은 덜 유명하겠지만, 2년 전 입단 문턱까지 갔던 고수다.


KBF리거 박지웅도 동호인 최강 이재철을 힘겹게 따돌렸고, 꼬마 임사무엘이 강원최고수 황이근을 돌려세웠고, 2레벨 최고의 매치에선 권영기가 하이에나 소재경을 꺾어 아는 사람은 아는 이변을 연출했다.


고라니 양 사슴과 중에서는 시니어 여성 최강 곽계순이 빛났다. 발톱이 여전한 왕년고수 윤명철에게 두 점으로 들어매치기 한판승. 


▲곽계순-나종훈(승).


거목 나중훈이 모처럼 기분 좋게 출발한 곽계순을 여지없이 깨부수며 2승을 올렸고 바둑과 브리지를 동시에 구사하는 와중에서도 손오공도 비교적 여유 있는 대진으로 역시 2승. 


그러나 정대상은 충암 후배 '끝장승부' 안재성에게 패해 낙마했다. 


인하대 OB 선수 장혁구는 고라니 자격으로 미추홀 우승을 차지하며 1레벨로 승격한 노력파 한세형을 눌러 이겼다. 


그 외 박휘재 서부길 이철주 임연식 박상준 한경남 정제민 안상범 최준민 등 강자들이 예정대로 착착 올라오고 있었다.


▲아샨게임 금메달리스트 임연식이 시니어 최강 이철주를 뉘었다.


이제 본격적인 서바이벌이 진행되는 3라운드. 


일단 프로의 선전을 축하해야겠다. 발톱이 무뎌지고 근력도 빠지지만 그래도 프로를 프로였다. 나종훈이 박휘재를 꺾고 실로 오랜만에 결승에 선착했고, 서능욱이 만만찮은 안재성에게 신승을 거두며 동반 결승진출. 


주니어 쪽에선 프로급 안상범이 정제민에게 두 점을 거뜬히 접어냈고, '딸바보' 주니어 최준민이 어려웠던 바둑고 박성준에게 승리하며 역시 결승행. 

 

"아이고 졌어요~." 

지난 달에도 우승했고 퐁당퐁당으로 우승을 차지하곤 하던 주니어급 시니어 최강 이철주가 볼멘 소리를 하며 일어선다. 장애인아샨게임 금메달 획득 후 바둑이 정교해졌다는 평을 듣는 임연식이 거함 이철주를 꺾은 건 이변이라 해야 한다.


"어 1집이네?" 

또 한번 이변이 일어난다. 늘 엄살이 생활화 되어있는 인천간판 서부길의 목소리였는데, 상대가 장혁구란다. 찐기자도 만만히 보는 장혁구에게 AI바둑의 전도사 서부길이 자빠졌단다고?


알고 보니 1집 차이인데, 원래 치수 정선에다 이번 달에 처음으로 도입된 추가 덤 1집을 장혁구가 받은 덕분에 바로 그 1집으로 승리한 것. 


물론 1집이라고 해서 운으로 치부해서는 아니 된다. 전국구 서부길에게 많은 고라니들에게 꿈을 심어준 장혁구는 이미 이번 대회 최고의 히어로가 되고 있었다. 


▲'고라니의 꿈' 장혁구가 전국구 서부길에게 1집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제 장혁구 판이 가장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아까 언급한 한세형이 2년 전에 근육질의 고라니였던 2레벨로서 우승한 이래 다시 한번 미증유의 역사를 창조할 것인가. 소 발이 쥐를 잡는 것보다 어려운 확률, 고라니의 뒷발차기로 사자의 심장을 과연 저격할 것인가. 


무엇보다 추첨이 중요하다. 좀 약한 상대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토끼 다람쥐 고라니 임팔라들의 바람이었다.  


추첨 결과 안상범-나종훈, 서능욱-임연식, 최준민-장혁구 대결로 압축되었다. 


누가 우승할지 대충 나온다. 찐기자가 예상하지 않더라고, 안상범 서능욱 최준민의 우승이 유력할 터.


▲결승1 나종훈-안상범(승).


'1번 다이' 나종훈의 지정 좌석에서 만난 안상범과 나중훈. 초반 정석에서 생떼같은 귀가 떨어져 나감으로 해서 시종 밀린 바둑이었고, 끝까지 격차를 좁히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초반 실점을 만회하긴 어려웠다. 역시 공부량이 많은 입단 1순위 안상범이 거뜬히 승리했다. 


인천의 바둑보급에 열중하는 나종훈도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함을 표시하는 안상범의 성장이 흐뭇했을 게다.


장혁구 최준민 전은 두점바둑으로 출발한 장혁구가 초반에 밀리지 않고 빡빡하게 버티면서 시중 최준민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실리 차이가 좀 났지만, 경기 중반까지 팽팽하여 시간도 최준민이 더 많이 쓰는 등 어려운 한판이었다. 


최준민은 직장인이면서 최근 바둑공부를 재개하면서 입단대회에서도 본선 32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더 이상 휴가를 내지 못해 기권 패를 당했을 만큼 물이 올라 있다. 


반면 질 줄은 알았지만, 그런 최준민에게 이를 앙 다물고 잘 버티는 장혁구는 못 고라니들에게 귀감이 되고 남음이 있었다. 


▲결승2. 임연식-서능욱(승).


아시안페러게임 금메달리스트 임연식은 원래 아마강자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휠체어를 타야 했고 한동안 전성 시절 바둑 실력을 회복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미 이철주를 이긴 것으로도 성이 안 차는 지 서능욱과의 한판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 준우승과 우승을 차이가 크다. 


지난 달에도 서능욱에게 중앙 대마가 쫓기면서 바둑을 패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잘 둔 한판이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대마에 가일수를 하는 바람에 실리로 큰 손해를 보며 모자라는 바둑이 되었다. 끝나고도 임연식은 아까운 바둑이었다는 듯 몇 번이고 혼자서 복기를 하며 아쉬움을 곱씹기도.




도합 100판 정도가 벌어졌던 미추홀 2월 대회는 한판 한판이 아름다움 자체였다. 역시 최선을 다한 한판이었기에 그럴수록 아쉬움과 회한이 남았다.


간단한 시상식을 마치고 인근 은갈비 동태어장에서 모두를 회포를 풀고 못 다한 복기가 밤 늦도록 이어졌다.  

평생 바둑을 두었고 앞으로도 두어갈 것이지만, 이렇게 남녀노소 모두가 같이 바둑을 시작했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 담달에 보게나'하고 정겹게 돌아서는 뒷모습들이 이렇게 다정스러울 수가 있으랴.  


미추홀 우승은 쉽다. 4승만 하면 된다. 4승은 1/16의 확률. 뭐, 그게 어렵다면 준우승을 하면 된다. 3승을 거둔 후에 결승에서 패하면 되니까 1/8이다. 그것도 어렵다면 공동3위랄 수 있는 3승1패도 1/4.


과녁이 꽤 넓고 치수제이니 참으로 만만하다. 또 한 달에 한 번 씩 대회가 있으니 이거 1년 지나면 미추홀 입상 한 두 번 안 할 도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면 진짜 오산이다. 


아무리 근육질의 고라니라도, 두세 마리가 합동으로 덤빈대도, 표범 코브라 하이에나 사자를 꺾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담달엔 또 살찌워서 붙어볼 요량이지만 말이다. 한잔 한 김에 허공에 대고 포효해본다.


“고라니의 꿈은 이루어진다!”


 





▲개시 전부터 일찍 나와서 몸을 풀고 있는 한세형 임춘기. 이 둘은 공교롭게 1라운드부터 격돌하게 된다.


▲임사무엘 박한필 두 무서운 초딩들도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 '바둑고 삼총사' 안상범 백결(검은 옷) 그리고 박상준(흰 옷)도 방학 마지막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


▲브리지로 몸을 풀고 있는 서능욱은 브리지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대국 시간이 오후1시여서 식사를 놓친 분이 있을까 싶어 간식거리를 참 준비 많이 했다.


▲처음 온 손님 안정웅는 과거 대전에서 바둑교실을 꽤 오래 운영했던 바둑인이며 현재는 고양에 거주하고 있다. 


▲나종훈(승)-양완규. 팔순의 양완규 대선배는 완력을 뽐내며 대마를 잡았으나 더 큰 대마를 잡혀버리며 아쉽게 패배.


▲경희대 이상윤-명지대 졸업생 이호용(승). 


▲박휘재(승)-최병덕.


▲안재성-이재철.


▲최준민(승)-이호용.


▲곽웅구-서부길(승).


▲일산기우회 멤버 정문섭(승)-임춘기.


▲곽계순(승)-김동섭. 김동섭이 대마를 잡혀 돌 던지기 일보 직전. 


▲'이 맛에 바둑 둡니다!' 마침내 큰 산 김동섭을 넘자 곽계순이 환하게 웃고 있다. 


▲최홍윤(승)-한경남.


▲오랜만에 김종화도 힘을 썼다. 2승2패.


▲김종화(승)-김성중.


▲'둘이 합쳐 4승입니다!' 김종화 곽계순 부부.


▲정탁준-정제민(승).


▲윤천준-황이근(승). 


▲이변의 현장. 장혁구가 1집 승으로 서부길을 뉘고 결승에 올랐다.


▲장혁구가 왼쪽 한세형에게 무용담을 말하고 있다. '오늘은 그대의 날입니다!'


▲결승진출자들의 추첨. 안상범 최준민 나종훈 장혁구 임연식 현명덕(진행).


▲안상범은 고교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서능욱.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임연식의 복기가 30분 동안 지속되었다. 


▲'스웨터 늘어나요~' 최준민-장혁구 결승 긴장된 장면. 


▲두번 째 우승 최준민.


▲'딸과 나'. 과거 이창호배(전주)에서 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최준민. 그는 직장인이면서 틈틈이 바둑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맨이다. 


▲3승 최병덕 한경남 황이근 박지웅 이철주 정대상 안재성 소재경 윤명철 김종화 최홍윤 정탁준.


▲준우승 최병덕 장혁구 임연식 나종훈 김종화. 장혁구는 준우승 상금 10만원을 미추홀에 기부. 


▲우승 시상. 장두화 최병덕 서능욱 안상범 최준민 곽계순 김종화.


▲행운상. 최병덕 남경석(와인) 박한필 곽웅구(이상 조미료 세트) 김종화.


▲행운상(2만원). 최병덕 정탁준 현명덕 안재성 김종화.


▲행운차상(3만원)과 대상(5만원).최병덕 정충의 윤천준 곽계순 김종화. 윤천준은 지난달에 이어 행운대상 2연패를 차지했고 행운상 5만원을 미추홀에 기부.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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