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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09 18:25:55
  • 수정 2018-08-09 2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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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혹은 선수' 김종수 프로가 29년만에 입신에 올랐다.

 

1986년 한국기원은 바둑의 백년대계를 위해 일반인의 입단을 막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연구생보다 센 일반인들에게 아예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너무 매몰차다는 여론에 못 이겨, 1988년부터 한시적으로나마 빗장을 푼다. 이에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 맹장들 중 몇몇은 기어코 등용문을 경험한다.

 

당시 막차로 입단한 ‘일반인’ 중에 처음으로 입신(入神)에 오른 이가 있다. 그는 서른 셋 늦깎이로 프로가 된 다음, 41세 때 삼성화재배에서 당당히 본선32강에 진입, 바둑가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세계무대를 자력으로 밟아본 40대 기사는 아마도 ‘조서’ 이외에 또 있을까 싶다. ‘자력’이라 하면 종합예선을 뚫은 일을 말한다.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시니어리그 영암월출산 1지명으로 다승 공동선두(7승1패)를 달리는 선수요, 내셔널리그에서는 종합1위를 달리고 있는 서울압구정의 감독이다.

 

‘가장 아마같은 프로’ 김종수(56)가 입단 29년 만에 입신(入神)에 올랐다.

 

▲ 시니어바둑리그의 한 장면. 백성호-김종수.

 

'선수 김종수’는 당당하다. 시니어프로 중 조훈현 서봉수 조치훈 서능욱 등 쟁쟁한 일류들 다음 순번은 김종수가 손에 꼽힌다. 실제로 시니어리그 감독들도 그를 1지명으로 데려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다. 대국 후 인터뷰에서도 김종수는 “(12경기 중) 10승은 해야 하지 않겠나?” 또는 “다승왕이 탐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평소 과묵한 그 답지 않은 쾌활함은 바로 자신감이다.

 

“바둑 두는 게 재밌잖아요?” 김종수는 바둑을 두는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최강 압구정리그 고정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틈만 나면 바둑과 씨름한다. 50줄임에도 그의 바둑이 꾸준하게 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바둑을 즐겨 두기 때문이다.

 

특히 타이젬에서 ‘joonki’ 서능욱과 ‘번개소문’ 김종수는 양대 인기스타였다. 좀 더 유명한 서능욱이 최고의 다대국자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실상은 김종수가 더 많은 판수를 자랑했다. 번개소문(p)이라는 ID로만 무려 20000여 판을 두었던 것.

 

그 많은 판수는 오로지 중국 프로들과의 대국이었고 그 흔한 지도대국은 한 판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각종 시니어대회에서 서능욱과 김종수가 나란히 성적을 내는 것은 이때 쌓은 판수의 영향이라고 말해야 할 듯 싶다. 한동안 온라인 바둑으로 감각을 유지하다 수 삼년 전부터 압구정리그로 돌아왔다. 아마도 시니어대회가 늘어나면서 부터일 것.

 

▲ 김종수 서울압구정 감독은 선수 개개인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노심초사하는 장면이 늘상 카메라에 잡힌다.

 

‘감독 김종수’는 노련하다. 서울압구정이 신생팀이지만 전혀 초보라는 느낌은 없다. 선수 구성 면에서도 최상은 결코 아니다. 박윤서 배덕한 주치홍 등 3명은 내셔널리그 생초보이며 송예슬 전준학 김동한 등 3명만 기성 선수. 당연히 팀 전체가 초보 티가 날 법한데도 거꾸로 노련미가 철철 넘치는 건 김종수의 능력 덕이다.

 

“아무래도 도장에서 기재들을 지도하다보니 확실하게 전달하는 습관이 배어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의 언변은 다소 어눌하지만 또록또록하다. 조근조근한 그의 말에는 빈말이 없다. 아마같은 프로가 된 이유는 수많은 기재들이 그를 거쳐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강동명인, 구 양천도장, 화랑연구실의 사범이었고, 그 성실함 반듯함을 인정받아 한국기원 연구생 사범을 역임하기도 했다.

 

서울압구정 팀원도 개인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으며 타 팀 선수들도 거의 절반 이상 그의 손을 타던 선수들이다. “(전)준학이는 돌 때부터 봐 왔죠. 준학이 아빠가 제 친구니까요. (배)덕한이는 5~6년쯤 가르쳤죠. (주)치홍이는 후반기에 해줄 겁니다.”

 

▲ 서울압구정의 두 기둥 한윤용 단장과 김종수 감독. 사진은 지난 달 경주투어에서 종합1위를 확정지은 후 한단장과 김감독이 '어색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특히 한단장은 매 경기 직관하며 선수단을 격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몇 판을 지고 나니 우리 팀의 장단점이 뚜렷이 나타났죠. (김)동한이 (주)치홍이보다 시야는 (배)덕한이가 오히려 낫죠. 실력은 제가 겪어봐서 잘 알고 있고...”

 

30년간 한 번도 전국대회에 나서지 않았던 '왕년의 국수' 박윤서(8승3패)가 호성적을 기록하는 것이라든지, 그간 내셔널리그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배덕한(5승2패)을 중용하는 것도 준비된 감독만의 용병술이었다. 개인승수가 4위권인데 반해 팀 성적이 최고인 이유는 이길 때 이겨주는 결정력 덕이다. 물론 이 또한 김종수의 치밀한 분석에 의한 결과.

 

그래서 그런지 팀 분위기 매우 좋다. 그래도 1위까지는 예상을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자신은 예상했다며 껄껄 웃는다. “어쨌든 한 달간 1위잖습니까. 좀 더 즐기고 싶어요.” 

 

▲ 2018 내셔널리그 개막식에 참석한 서울압구정 팀원들. 좌측부터 주치홍, 김동한, 배덕한, 김종수 감독, 한윤용 단장, 박윤서, 송예슬, 전준학.

 

부드러운 눈웃음이 매력인 김종수는, 프로든 아마든 선수로든 감독으로든 현재 꽃길을 걷고 있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무엇인지 묻자 의미심장한 답이 돌아온다.

 

“요즘은 프로와 아마의 경계가 모호해진 면이 있죠. 딴 것 있겠어요? 열심히 바둑을 대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면 그가 프로가 아닐까요.”

가만 생각하니 우문현답이다.

 

“감독이 좋습니까, 선수가 좋습니까?”
“선수가 더 좋긴 좋은데… ”
둘 다 하고 싶다는 얘기로 들린다.

 

자, 이번 주말 김종수 감독의 서울압구정 경기를 눈여겨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다음 주중 김종수 선수의 다승왕 행진이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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