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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03 15: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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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바둑 사상 최대 이변으로 기록된 제2회 비씨카드배 이창호(오른쪽) 대 한태희전(2010년). 17세 연구생 한태희는 당시 랭킹 1위 이창호를 96수 만에 눌렀다.(사진출처=한국기원)

 

러시아월드컵 축구서 세계 57위 대한민국이 1위 독일을 꺾자 "역시 공은 둥글다"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둥글기로 말하면 바둑돌도 축구공 못지않다. 최근 흑백 세계에서도 믿기 힘든 이변이 발생했다. 11세 1개월의 아마추어 김은지양이 여자 리그 주장 출신 박태희 등 프로 2명을 잠재우고 여자국수전 본선에 상륙한 것. 바둑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이변사(史)를 정리해 봤다.

 

가장 쇼킹한 사건은 랭킹 1위 이창호가 17세 고교생 한태희에게 무너진 대국이었다. 2010년 열린 제2회 비씨카드배 본선 1회전서 연구생 한태희는 이창호를 단 96수 만에 백 불계로 제압, 바둑계를 경악시켰다. 한태희는 그 사건 9개월 뒤 입단, 현재 프로 6단으로 활동 중이다.

 

'바둑 황제' 조훈현도 같은 해 '무명 괴청년'에게 습격당한 경험이 있다. 38기 명인전 예선서 온승훈(당시 26세)의 일격을 맞고 탈락한 것. 당시 조훈현은 57세의 고령이긴 해도 랭킹 25위로 여전히 정상권이었다. 온승훈은 그러나 20여 번의 도전에도 프로행에 실패, 34세인 올해도 입단을 위해 대구에서 '열공' 중이다.

 

천하의 이세돌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2011년 7월 39기 명인전 예선 3회전이 치욕의 현장이었다. 당시 랭킹 1위 이세돌을 쏜 저격범(?)의 신원은 한국기원 연구생 5위 황재연(당시 16세)으로 밝혀졌다. 황재연은 이 '거사' 다음 달 입단해 현재 프로 4단이다.

 

'송아지 3총사' 멤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철한과 박영훈 역시 전성기 때 아마추어에 한 칼씩 맞은 경험이 있다. 최철한은 2010년 명인전 예선서 박영롱(현 프로 4단)에게, 박영훈은 2012년 올레배 본선서 유병용(현 5단)에게 각각 무릎을 꿇었다. 당시 최철한·박영훈의 랭킹은 3·4위였다.

 

외국의 유명 장수들을 단칼에 벤 무명 소년병들의 무용담도 전해져 온다. 2015년 LG배 본선 1회전서 18세의 연구생 안정기가 중국 톱스타 천야오예를 낙마시켜 화제가 됐다. 이지현이 17세 연구생 시절 제1회 비씨카드배 전투에서 중국 최고수 스웨를 격침한 사건(2009년)도 종종 회자된다.

 

361개 미로에서 천변만화가 이뤄지는 바둑은 운이 개입할 소지가 적은 게임으로 꼽힌다. 이변 발생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면 승부다 보니 심리적 변수가 종종 힘을 발휘한다. 모 9단은 "상위 랭커나 고단자 쪽은 이겨야 본전이란 생각에 다소 부담감을 안고 출발한다"고 했다.

 

여자국수전 본선 진입 후 김은지의 소감은 "최정 언니와 겨루고 싶다"였다. 세계 여성 최강자에게 11세 아마추어가 겁없는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녀는 선배 셋을 더 제쳐야 최정과 마주 앉을 수 있지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숱한 유망주들이 또 다른 반상 거사를 꿈꾸고 있다.

 

▲ 영재 김은지(11).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선일보 7월3일자 이홍렬 기자가 쓴 <<<[화요바둑] 한국 바둑계 '이변의 늪'>>>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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