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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01 12:27:09
  • 수정 2018-07-01 13: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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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계곡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즐거운 술 자리를 가지니 여기가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이 아니겠소.

 

해마다 여름 초입이면 하루 날을 잡아 서울 근교 계곡으로 기우들을 초청해 족탁(足濯)의 여흥(餘興)이 이루어진다. 조상들의 유유자적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이해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정신 건강에 퍽 도움이 되리라. 쾌청한 하루이니, 어찌 기우와 더불어 바둑 두며,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쏜가.

 

너무 이른 나이에 하늘소풍을 떠난 이광구 선배는 ‘황스데이(Hwang’s Day)’를 ‘족탁의 여흥’이라 표현했다. 자연을 벗 삼은 흥겨운 낮술과 만나기 힘든 기우와의 바둑 한판이 기다리고 있는 바둑인의 소풍을 기막히게 표현한 글귀가 아닐까 싶다.

 

오후1시에 ‘집결호’가 울려퍼질 예정이었지만, 다들 알아서들 모든 일상을 멈추고 의정부 수락산 모 산장에 속속 들이 집결한다.

 

오전11시부터 한종진 홍민표 박진영 강우혁 프로를 필두로 가까이 있는 충암도장 멤버와 의정부바둑협회 분들이 대거 입산한다. 뒤이어 A7 홍시범과 초미남 심우섭이 찬조품인 막걸리 두어 박스와 각종 기념품을 박스째로 들고 나타난다. 홍대표 역시 퍼주길 좋아하는 체질이다.

 

 ▲ 2004년부터 시작된 '황스데이'는 바둑인들의 벙개요 단합대회. 참고로 아무나 참석해도 된다고. 단, 바둑은 배워와야 한다.

 

채 인사를 나누기도 벅차게 많이도 밀려든다. 한양대 동창인 정수현 교수, 온양의 최중한, 멀리 순천에서 양건프로도 와주었고, 김선옥 강나연 두 여맹회원도 밝게 웃으며 입장한다. 애길 듣자니 정교수와 같이 오던 한철균은 오솔길을 타던 도중 불행히도(?) 접촉사고가 나서 찬조품으로 준비한 그의 역작 단행본만 한 꾸러미만 먼저 도착.(사고 처리가 잘 되었길.)

 

집이 먼 사람이 도서관 자리를 잘 잡는다는 학창시절 속담은 어찌 그리 잘 맞을꼬. 멀리 강원도에서 집결한 우찬용 이상곤 정국정이 대대적인 환대를 받는다. 그들이 지참한 속초에서 곧장 잡아 올린 오징어를 들고 왔다고 환대하진 않았으리라. 대학연맹 안병학 회장과 신병식 전SBS논설위원도 이날의 호스트 황원순과는 오랜 바둑친구였다.

 

K바둑 김홍진 국장과 바둑TV 박장우 부장도 뒤따르고, 괴산에서 박성균, 충주에서 이종익이 또 입장이다. 푸른돌에서 이재철 부단장 오경래도 방문해주었고, 얼마 전 부산시장배 우승자 서문형원도 들렀다. 충암바둑도장 조국환-박순옥 부부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같이 입장한 화사한 도은교와 김동우 김지명 등 어린 프로들도 반갑다. 이런 행사에 어린 친구들이 눈에 띈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황원순의 인간성이 광폭임을 알려주는 대목.

 

멀리 전주에서 양완규, 서산에서 최기남도 와주었고, 이재락 김종민 초등연맹 샘들도 빠짐없이 와주었다. 김종민의 손에는 근사한 중국술이 들려있다(횟감은 안들고 왔나? ㅋ). 맘 좋은 ‘꾀중이형’ 김희중와 친구인 양세모 이정권, 그리고 '연대왕고' 정인규가 ‘1번 다이’에 진을 친다.

 

기자가 주르륵 돌아보면서 눈이 마주친 분들만 거명했다. 아마도 기사나 나가고 난 후에 이름이 빠진 분들의 원망이 쇄도할 것을 생각하니 후환이 심히 우려된다.

 

▲ 막 퍼주는 남자 황원순. 바둑이 좋고 바둑두는 사람이 좋단다.

 

“뭘 물어보나? 바둑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겠지. 지금은 오히려 여러 군데서 찬조가 너무 들어와서 내가 한턱 쏘려는데 좀 퇴색된 감이 없지 않지. 어쩔 수 없이 저녁에 또 본선멤버 추려서 음주가무 하러가야지. (기자 더러)가지 말고 저녁까지 기다려~!”

 

소탈한 함박웃음만큼이나 넉넉한 '복덕방 아저씨' 황원순. 한양대기우회 OB멤버인 그는 바둑계 마당발이다. 전기안전관리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 일과는 120% 무관한 그저 바둑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란다.

 

잔치의 목적은 오로지 바둑인 얼굴보기, 즉 예약된 ‘번개’다. 그냥 자신이 사는 동네로 모셔서 몸보신이나 하고 가라는 것이다. 하긴 바둑인들에게 음덕을 베푸는데 이유가 있겠는가. 2004년 처음 ‘한 끼 같이 먹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근사한 ‘황스데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전통이 되어버렸다.

 

 ▲ 충암도장 출신들이 가장 먼저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카메라가 오자 너 나 할 것없이 건배 장면으로 들어간다. '역시 프로들이야~!'

 

조촐한 주안상엔 영양탕 닭백숙 파전 도토리묵 풋고추와 된장에 막걸리가 보인다. 포항의 과메기와 흑산도의 홍어에다 경주 법주, 중국의 이름 모를 백주, 그리고 각자 집안에 짱 막혀있던 고급술도 너나 할 것 없이 다 소비하는 날이다. 바둑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 자주 못 만나는 사람들 가릴 것 없이 모두 모여 장마철 복더위에 단 하루라도 족탁의 호사를 누린다.

 

연락도 따로 하지 않는데 전국 각지에서 입소문으로 알고서 방문한단다. 그냥 바둑을 아는 분들이면 아무나 진짜 아무나 오면 된단다. 해마다 참여 숫자가 늘어나 올해엔 200명 가까이 모였다. “한 1000만원 들겠는데요?” 세속적인 기자가 황원순에게 묻자, “몰라. 난 남는다니까. 찬조가 자꾸 들어와서.”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고 또 드러내놓아도 싫지 않은 바둑사랑.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들과 참석하지 못하여 애석함을 토로하는 더 많은 바둑인들은 한결같은 맘일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이들과 동패라는 사실이 이처럼 가슴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 '1번 다이'의 모습. 김희중 사범이 손을 들어 동패를 부르고 있다. 이정권 정인규가 보인다.

 

▲ 왼쪽부터 강우혁 홍민표 그리고 오른쪽엔 한종진 프로가 건배.

 

▲ 태백에서 온 이상곤 정선에서 온 우찬용.

 

▲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도은교 프로.

 

▲ 온양에서 온 최중한(왼쪽)과 황원순과 전주에서 달려온 양완규.

 

▲ 막 퍼주는 게 마냥 즐거운 사람들. 홍시범 황원순 심우섭. 

 

▲ 순천에서 올라온 양건과 언제나 국수 박성균.

 

▲ 한종진 홍민표 프로.

 

충암바둑도장 조국환-박순옥 부부.

 

▲ 내셔널 푸른돌 이재철 부단장과 바둑TV 박장우 부장. 박부장도 푸른돌회원이다.

 

▲ 등 따시고 배부른데 이제 바둑이나 한판 허지. 힘들게 무릉도원을 찾아서 무엇 하리. 내가 바로 신선 아닌가.

 

▲ 역시 바둑인은 바둑없이는 못산다. 기승전바둑이다.

  

▲ '누나랑 같이 셀카찍자.' 김동우 김지명 도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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