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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24 02:04:49
  • 수정 2018-04-30 19: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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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과 막걸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고택의 마루 끝에 걸터앉은 채 듣는 노래소리는 절로 상념에 젖게 만든다. 장사익은 같은 노래도 이렇게 흐드러지게 불러 제치는 용한 재주가 있다. 제법 굵은 가랑비는 경술국치에 통분하여 순국했던 홍범식 선생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그의 부친 홍범식의 고가(충북 민속문화제 제14호)는 여느 고택에서 보는 위엄과 화려함보다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을 법한 사람내 나는 우리네 옛집이었다. 2018 아바사 괴산바둑나들이가 22일 오후 한나절 그 옛집에서 전국 100여명의 바둑 마니아들이 모인 가운데 질펀하게 벌어졌다.

 

▲ 괴산 홍범식 고가에는 괴산바둑나들이를 알리는 대형 걸개그림이 나붙었다.

 

비가 내려 운치 있어 좋았던 지난 주말. 약속시각 1시가 다가오자 서울에서 경주에서 익산 청주 옥산 파주 등지에서 바둑파락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서로 처음 본 친구들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양 스스럼없이 짝을 짓는다. 그리고는 안채 사랑채 할 것 없이 들어서며 준비된 바둑판앞에 앉으면서 괴산나들이는 개시된다.

 

영웅을 가리는 바둑대회라기보다는 평소 박수만 치던 우리네 동호인을 위하여, 그들이 바둑동네의 주인임을 피차 격려하는 그러한 소박한 잔치였다. 누군가는 재야바둑인의 자급자족잔치라고 했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고, 이기면 더 좋고 지면 더 좋은 잔치가 바로 이런 것이다.

 

2015년 괴산에서 선국암바둑대회를 열어 괴산에 바둑 붐을 조성하고 괴산을 바둑도시로 변모시킨 이는 청산 정순오 선생이다. 또 그 때 그 감흥을 잊지 못했던 청산의 오랜 친구가 A7 홍시범 대표. 이 둘이 합심하여 ‘사고’를 친 작품이 바로 괴산나들이다.

 

▲ 전국에서 삼삼오오 바둑친구들이 모여든다.

 

육 척을 훌쩍 넘기는 높이에 언제나 한복차림에 긴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괴산 명필’ 정순오. 안빈낙도를 실천하는 그는 해마다 괴산을 찾아오는 바둑꾼들을 위해 올해도 정성껏 잔치를 준비했다. 그는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돈이 아니라 마음이 있으면 된다고.

 

청산의 정성이 하도 지극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직접 잔치에 참석한 나용찬 괴산군수가 “제발 내년부터는 군에서 지원해드릴 수 있게 연락 좀 하시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초대하지도 않았던 군수님이 바둑잔치에 납신다는 자체가 이미 괴산나들이가 군에서는 연례행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기부천사 아마바둑사랑회(아바사)는 매년 여섯 차례의 자선 바둑잔치를 벌이는데, 1)신년회, 2)활인검, 3)맑은샘배 어린이대회, 4)서귀포칠십리바둑축제, 5)괴산바둑나들이, 6)원봉투게더가 그것. 따라서 이번 괴산바둑나들이가 올 시즌 마지막 바둑잔치인지라 ‘빨간 티 천사’들이 유난히 바삐 뛰어 다녔다.

 

▲ 일찍 행사장에 나온 동호인들은 홍범식 고가를 둘러보며 역사탐방.

 

역시 100여명이 모여도 바둑판만 깔아주면 조용해진다. 페어바둑을 두 판씩 두게 했고 매판 전후반구분을 했다. 아바사 특유의 '작전타임'도 이젠 소문을 들어서인지 다들 익숙하다. 착점순서가 간혹 틀리기도 한다. 알았어도 그만이요 몰랐어도 그만이다. 다들 이해하고 다들 위해주고...

 

2승자도 있고 1승1패자도 있고 2패자도 있었다. 참가금도 한푼 내지도 않았는데 뭔 이리 선물을 많이도 주는가. 매번 같은 얘기지만, 박수갈채를 아니 보낼 수 없는 멘트로 끝을 맺는다.

 

“바둑과 문화가 접목되어야 가치를 더합니다.”(청산 정순오)
“열심히 일해서 바둑잔치를 여는 것이 행복입니다.”(클럽 A7 홍시범)

 

시작 때 모인 그 인원이 헤어질 때까지 한명도 빠짐없다. 서로 악수와 격려의 말을 나누며 다음 바둑대회에서 만나자는 약조를 한 후에야 비로소 석별의 정을 나눈다. 모두들 돌아가는 길에 된장 표고버섯 유정란 메추리알 기념타올 괴산막걸리 식용류선물세트 등등 선물 꾸러미와 함박웃음이 들려있었다.

 

사진으로 흥겨운 괴산바둑나들이를 돌아보자.

 

▲ 개막식전 행사로 소리꾼 박진숙의 흥보가 한 소절. 고수 서동율. 

 

▲ 청산 정순오, 조기식 충북바둑협회장. 나용찬 괴산군수.

 

▲ 8년간 재임했던 괴산군바둑협회 백학송 회장의 퇴임식이 행사에 앞서 거행되었다. 백회장은 신선의 꿈을 꾸며 허공의 춤을 춘 사람으로 소개되었다. 신재록 괴산바둑협회 부회장, 백학송 회장. 나용찬 괴산군수. 조기식 충북바둑협회장.

 

 

 

 

 

▲ 고스톱 토너먼트.

 

▲ '시아버님과 며느리의 고스톱?' 그런데 칩 대용 바둑알은 시아버님이 거의...

 

▲ '달마당과 청산' 이들 부부은 본명보다는 아호로 서로 호칭한다. 바둑 7단인 청산은 어린이를 지도하고 있고 달바당은 탁구선수출신이며 지금도 탁구레슨을 하고 있다고.

 

▲ 여기는 고무신 컬링. 과녁에 정확히 넣어야 한다.

 

▲ 여기는 주막촌. 괴산바둑협회 여성회원들과 청산에게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의 어머님, 그리고 탁구동호회원 등 모두들 십시일반 고생했다.

 

국수와 막걸리와 파전과 과일이 있는 푸드코트.

 

개막공연에서 고수였던 서동율 선생이 폐막공연에서는 흥보가 사랑가 등 익숙한 우리 판소리를 흥겹게 풀어주었다. 객석에서는 한 소절마다 ‘얼쑤!’ ‘옳거니!’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 등 분위기는 완전 굿. 

 

▲ A7 홍시범 대표. 이 분이 나서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 시상식이 열리고 상품이 돌아오니까.

 

▲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청산의 부인에게 먼저 푸짐한 상품. 

 

▲ 고스톱만 잘쳐도 생활에 도움이 된다. 고스톱 입상자들. 

 

▲ 내셔널바둑리그 김만수 충북감독이 선물을 한아름씩이나.

 

▲ '담배 좀 끊으세요! ' 박성균 심우섭 두 심사위원이 담배를 선물로 받았다. 아마 본인들도 부끄러워 하는 걸 보면 이 담배가 마지막 일 듯.

 

▲ 저 한아름 선물을 보라. 모두가 승자!

 

▲ 행운권 추첨 중 A7 빨간티 도우미가 셀프당첨되자 익살스런 포즈.

 

▲ 고무신만 잘 차도 가계에 도움이 된다.

 

▲ 괴산나들이의 두 주역 청산 정순오 선생과 A7 홍시범 대표.

 

▲ '4월엔 괴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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