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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13 14:17:09
  • 수정 2018-04-14 12: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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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바둑강자들의 모임 일석회는 41년째 오롯이 '바생바사'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40년 묵은 마구(마귀)들 아입니꺼?"

 

바둑과 우정을 따로 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면 기우회가 된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인고로 바둑모임 결성은 손 쉽고 대신 해체도 빈번한 까닭에, 수 십 년 전통적인 기우회는 찾기 힘들어졌다. 여기 바둑에 죽고 못 사는 부산싸나이의 사랑과 우정으로 똘똘 뭉친 부산바둑의 자부심 일석회(회장 김종률)를 소개한다.

 

80년대 아마바둑의 간판타자였던 설레는 이름 김종준, 일석회 창립멤버이며 부산바둑의 터줏대감 김철중, 소년 양재호의 초창기 스승이었던 최상기, 회장 10년 총무 10년의 훈장을 단 정성재, 내기바둑의 강자였던 '천안김' 김용국, 기력에 걸맞지 않게 부산시민바둑대회 8강까지 진출한 ‘김8강’ 김기배, 80년대 여자아마최강 노상희 씨의 신랑으로 더 유명한 S대 출신 김도형, 경남초등바둑연맹회장 이남일, 부산이붕장학회 내셔널선수 하형수 등등 부산바둑을 거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 나온다.

 

김종준 프로에게 정선으로 버티는 짱짱한 아마6단급 고수들이 즐비한 최고(最高)기우회요 41년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는 최고(最古) 기우회가 바로 일석회다.

 

▲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 푸른기원에서 월례모임을 가진 일석회.

 

일석회는 바둑열기가 피어오르던 1975년에 일시적으로 결성되었다가 중도에 해체된 이후, 1978년 당시 부산의 강1급이었던 김동길 김경한 정일범 김철중 김용준 윤명운 등 6명이 재결성하여 본격적인 역사를 쌓기 시작한다. 따라서 1978년을 일석회 결성 연도로 친다.

 

이들은 바둑에 죽고 못 사는 ‘바생바사’ 체질이라 순수하게 바둑을 연마하자는 뜻으로 이심전심으로 모였다. 창립 직후 정성재 최상기가 합류했고 80년에 김종준도 가입하며 본격적인 ‘마귀 군단’을 형성해갔다.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11명의 역대 대통령을 거쳐갔던 41년 세월동안 ‘부산이 없어지지 않으면 일석회는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바둑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4월 첫째 일요일. 일석회 월례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작부터 방문을 하려 했지만 기회가 닫지 않았다. 그들은 서면의 푸른기원(원장 최행태)과 사직동의 한국기원(원장 김철중) 구서동의 세진기원(원장 김용국)을 돌아가면서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일석회 회원이기도 하다.

 

이번 달은 부산의 번화가 서면 한 복판에 위치한 푸른기원. 그가 부산바둑인이라면 '푸른기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이 번져올 것이다. “여기 자주 와 봤지?” 푸른기원 최원장의 말에, 다들 두던 바둑을 멈추고 부산 후배인 기자를 반겨준다. 역시 고향은 고향이다.

 

▲ 김도형-김종준.

 

리그전을 한창 벌이고 있다.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해 미리 시켜 둔 초밥 김밥으로 요기를 한 후 곧장 리그전을 속개한다. 그들은 김밥 초밥을 알아서 각자 가져가는 모습에서 오래된 습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상금이나 상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들은 프로들보다 더 진지하게 리그전에 임한다. 어쩌면 41년전 이들이 모인 이유도 바둑을 정말이지 열심히 두어보자는 의미였으니 당연한 광경이리라.

 

일석회는 매월 첫째 일요일 천재지변이 있어도 모인다. 한번을 빠지면 그리운 친구들을 두 달 후에야 만나게 되니 그들 모임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처럼 각별하다. 추석 당일 설날 당일도 나와야 한다. 회원의 집안 행사가 있으면 모두 결혼식장이나 상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리그전을 벌일 정도로 극성이다. 오늘도 경찰간부인 회원 한 명이 비상근무중이라 오지 못한 것 빼고는 모두 올 출석이다.

 

▲ 김종률 일석회 회장-김철중 창설 멤버.

 

일석회가 모이는 날은 국경일이니 집안에서도 무조건 비워놓는단다. '바둑에 미친' 사람들이니 그들이 즐거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내와 가족들은 일석회를 싫어하지 않을까? 터줏대감 김철중 씨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가 아내들에게는 잘 합니더. 가족들도 일석회 모임에 동반 참석하기도 하고, 야외 바둑나들이도 같이 가고, 또 집사람 맘에 들도록 멸치 화장품 등 선물 공세도 퍼붓곤 하지. 하하”

 

80년대는 다들 어려웠다. 쓸데없이 술 마시는데 비싼 돈을 들일 게 아니고 상금으로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서 주는 게 일석회의 전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김철중 씨의 부인이 바둑일보 밴드에 쓴 댓글이 기억난다. “지금은 장성한 큰 아들은 일석회리그전 상품으로 탄 분유로 키웠어요.”

 

“일석회 리그전 우승은 프로타이틀 따는 것보다 더 어렵심더.” 일석회 초기인 80~90년대에는 강자들을 위주로 돌아갔지만 요즘엔 하수님들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최고수인 김종준 프로는 불만(?)이 많다. 기력에 따라 ABC조로 나뉘어 예선을 거치는데 동률이 나오면 무조건 하수가 본선이다. 또한 판을 비기면 백 승이 아니라 흑 승이다.

 

따라서 4명이 조별리그를 벌이면 최고수인 김종준 사범은 꼭 3승을 해야만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고 볼멘소리. 그러자 “누가 바둑 잘 뚜라고 했나?” 김철중 씨가 농을 던진다. 여기서 하점자라고 해봐야 김사범에겐 석 점이니, 시중 급수로 아마5단은 족히 된다.

 

▲ 김기배-주영현.

 

하수가 즐거워야 모임이 정겹다는 것을 40년 세월동안 터득했고, 나아가서 일석회 리그전에서 하수가 우승하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다. 이번 달 리그전 우승 역시 가장 하수급이며 일석회 최장 총무에 도전하는 ‘김8강’ 김기배 씨가 차지했다. 김씨는 “리그전을 꾸준히 참가하니까 이런 가문의 영광도 있네요.”하며 활짝 웃는다. 역시 생기는 것 없어도 우승을 기쁜 것.

 

“아무리 그래 싸도 회장 10년에 총무 10년을 해본 사람은 전무후무 할끼야!” 부산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는 정성재 씨는 일석회에서 보기 드문 흡입력으로 부산시장보다 힘든 일석회 임원을 20년동안 장기집권했다고 은근히 자랑. 그는 회장이 자신을 총무로 지명했는데, (보골이 나서) 다음에 자신이 회장이 되자 그 전임회장을 총무로 임명한 사실도 있다며 너스레.

 

아무래도 총무는 모임을 위해 노력봉사 해야 하고 궂은일을 담당하는 고로 대부분 맡길 꺼리기 마련. 따라서 혹시 총무를 맡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분이 있다. 김철중 김해수 최상기 등 일석회 노장 3인방의 고민도 여기에 있단다.

 

히말라야를 두 번이나 다녀온 건강체 최상기 씨는 “나를 총무 시키면 죽는다. 그래도 시킨다면 일석회를 떠날 끼다.”며 후배들에게 위협성 멘트를 날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철중 씨는 “나갈지 죽을지(총무를) 한번 시켜보자”고 제의해 한바탕 또 웃음꽃이 핀다.

 

▲ 최상기-정성재.

 

40년 동안 웃지 못 할 일석회 최고의 에피소드 한 가지. 수년전에 한 번도 대국을 하지 않고 리그전 우승을 차지한 코미디 같은 일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회원A는 조별예선에서 3명 조였는데 부전을 뽑았다. 그래서 한 판만 이기면 예선통과. 그런데 상대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통에 엉겁결에 본선에 진출한 것.

 

8강에서는 '마귀' 정성재 씨와 두게 되었는데, 두는 도중 갑자기 급한 전화로 정성재 씨가 자리를 비우는 통에 그만 기권처리 되었다. 또 4강에서는 상대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을 가는 통에 부전승. 이런 식으로 한판도 안두고 우승을 차지했던 일이 있었단다.

 

아무래도 회원A를 우승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지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기자에게 “그 정도만 알고 있는 게 좋겠심더.”하며 그 주인공을 밝히지 않은 채 얘기를 주워 담는다. 주인공은 그 때 이후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는 사실만 힌트가 될 뿐이다.

 

일석회는 회원가입에 남녀구별은 없다. 과거 김영순 문춘림 등 부산의 여자강자들이 회원인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여자회원 한 명도 없지만 일석회는 부산여자바둑에 대해서도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김종률 일석회 회장은 “지난해 11월 일석회 40주년을 맞아 부산여자바둑대회를 개최했다. 올해도 더 규모를 키워서 풍성한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

 

▲ "사진 촬영을 하니 돈을 치워야하지 않을까요?" "머 어때요? 셀프상금인데요." 최행태-도필락.

 

“특정한 한명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이 가장 크죠. 특정 한명에게 의존하게 되면 당장은 모임이 화려하고 잘 되는 것 같아도 회원 간 자생력이 사라집니다. 수수하게 간다. 무리하지 않게 간다는 것이 일석회의 신조입니다.” 김종률 회장의 말처럼 십시일반으로 쌓은 탑은 쓰러지지 않는다.

 

어느덧 일석회 주력회원들의 나이가 60대가 되었다. 아직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나이지만 좀 더 젊은 일석회를 만들고자 문호도 지속적으로 개방하고 있단다. 신입회원들은 당연히 기존 회원들의 추천에 의해 가입이 허락된다. 그냥 바둑이 좋아서 한번 와 보는 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 죽도록 바둑을 사랑하고 회원 간 우애를 죽어서도 유지할 자신이 있다면 받아준다.

 

언제나 부산바둑 발전을 생각하며 늠름하게 40년을 이어온 부산바둑의 뿌리 일석회. 바둑이 존재하는 한, 부산이 있는 한, 부산 별종들의 뜨거운 ‘으리’ 일석회는 계속 될 것이다.

 

40년 묵은 마귀 18인의 명단이다(무순).

정성재 김종률 김해수 최상기 양희민 김도형 김종준 손영만 김기배 도필락 최행태 주영현 하형수 옥민호 이남일 송육등 김철중 김용국.

 

김기배 총무가 꼼꼼히 성적표를 기록하고 있다. 뒷편 김해수-최상기. 서서 관전하는 이는 김종준 프로.

 

▲ 일석회는 작년 11월 일석회 40주년 기념 부산여성바둑최강전을 개최했다.

 

▲ 뒷줄 왼쪽부터 도필락 최행태 주영현 김기배 손영만 김종률 김도형. 앞줄 최상기 김종준 김철중 김해수 정성재.

 

▲ 일석회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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