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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28 22: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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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이 권주리에게 강하게 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준 한 판이다.


한국 여자바둑계 아니, 이제 세계 여자바둑계에서 최정의 위치는 사실상 원톱이다. 얼마 전 센코배에서 중국의 위즈잉에게 패했지만, 그때는 체력 저하로 바둑을 두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을 때이다. 정상 컨디션인 최정의 적수가 될 만한 여자기사는 현재 없다. 그럼 최정은 어디가 강한가? 실력은 승률로, 또 기보로 증명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보는 그 중의 하나이다.


<6라운드 하이라이트>
6라운드 2경기 속기판 2국
○ 최 정 (충남 SG골프 1주전)
● 권주리 (서울 부광약품 2주전)


권주리의 기풍은 ‘강렬함’이다. 느슨한 수가 하나도 없고 돌을 잘 버리지도 않는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조훈현류’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감각적인 강수를 구사하면서 동시에 돌을 잘 버리지 않고 전투를 즐긴다. 다만 조훈현은 ‘전신’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전투에 강했는데, 아직 권주리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즉 기풍적으로는 비슷한데 아직 여물지 못한 것이다.


이 바둑의 초반 흑의 감각은 아주 좋아서 상대 팀 감독인 충남 SG골프의 이용찬 감독이 연신 ‘잘 둔다’며 칭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크게 긴장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최정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장면도


장면도 (흑, 호쾌한 공격)
흑1로 씌워서 백2로 나오게 한 뒤에 흑3,5로 우변과 하변의 양쪽 백 대마를 엮어서 호쾌하게 공격하고 있어서 지금까지의 흐름은 흑이 좋다. 그렇다고 백이 악수를 둔 것은 아니므로 흐름이 그렇다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형세판단일 것이다.


▲ 1도


1도 (실전진행 1)
백1의 젖힘에 흑2는 예정된 수. 그런데 다음 흑4를 보는 순간, 검토실에 묘한 침묵이 흐른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충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흑6까지 그대로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흑의 성공. 그러나 백7로 곧장 반격해오자 흑의 응수가 고약해졌다.


▲ 2도


2도 (흑 우세)
애초 검토실에서 예상하고 있던 진행은 그냥 흑1로 막는 것이었다. 그러면 백은 2로 끊고 4로 흑 한점을 잡는 정도인데, 이때 흑7로 젖혀서 하변의 백 여섯 점을 공격했으면 흑의 우세한 흐름은 지속됐을 것이다.


▲ 3도


3도 (실전진행 2)
 1도에 이어서 흑은 1로 하나 찔러 두고 3,5로 끊어갔다. 여기를 끊지 않고는 바둑이 안된다. 그런데 이때 백6의 끼움이 절묘한 맥점이 되어 흑이 곤란해졌다. 흑7부터는 거의 외길수순의 진행이다.


▲ 4도


4도 (실전진행 3)
백1,3으로 끊었을 때 흑은 4로 단수 치는 한방이 아주 기분 좋다. 그러나 기분 좋은 것은 아주 잠깐이다. 흑6으로 백 두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때 백7,9로 흑돌 한점을 빵 따내며 중앙으로 백이 머리를 내밀자 백의 확연한 우세이다. 종국 후 최정에게 물어본 결과, 이후 백이 계속 유리했다고 말했으므로 사실상 승부가 여기에서 끝인 것이다.



▲ 5도


5도 (자충수 때문에)
애초 흑1로 그냥 막았으면 백2로 반격하는 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흑5까지 된 다음을 보면 흑A, 백B의 교환이 없어서 백C의 끼우는 맥점이 성립하지 않는다. 즉 1도 흑4 (본도 흑A)는 백B와 교환되어 자충수였던 것이다.


최정의 강함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 바둑에서 보여준 것은, 상대가 잘 둘 때는 참고 있다가 한번 실수가 나오자, 그 수를 곧바로 패착으로 만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기회 포착을 잘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전에 참고 있는 것도 사실 어렵다.


성장하는 신예 여자기사들이 최정의 장점을 배울 때는 이 모든 것들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 바둑에서 최정은 이겼지만, 팀 동료 2명이 모두 패했기 때문에 승리는 서울 부광약품이 가져갔다. 3명 단체전에서 원톱의 위력은 엄청나지만, 한편으로는 한명으로 또 안되는 것이 바로 단체전이기도 하다.


 <247수 끝, 백 16집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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