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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12 20:02:45
  • 수정 2018-03-13 1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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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압구정 한윤용(56) 단장.

 

아마바둑의 제전 내셔널바둑리그 참가팀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전라남도나 화성시처럼 지자체가 후원하는 팀이 있고 대구덕영 서울원봉루헨스처럼 기업이 후원하는 팀이 있다. 그리고 드물지만 서울푸른돌처럼 바둑모임에서 운영하는 부류가 있다. 저마다 다른 형태로 후원을 하지만 크든 작든 후원주체’를 홍보한다는 것은 엇비슷하다.

 

여기 그저 순수하게 바둑이 좋아서 팀을 만든 패트런이 있다. 2018 시즌부터 새로 합류하게 되는 신생 서울압구정의 한윤용(56) 단장은 사업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기업명도 달지 않고, 그저 압구정으로 상징되는 바둑모임을 팀명으로 삼았다.

 

압구정기원에서 만난 그는 고수들의 대국을 관전하길 즐기는 평범한 바둑애호가였다. 그의 기력은 3급 정도. 날고 기는 고수들이 득실대는 이 압구정에서 3급은 최약체가 아닌가.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위기를 넘긴다. “어차피 깍두기(놀이나 모임에서 덤 취급을 당하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니까 여러 고수님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죠. 하하.”

 

▲ 서울압구정팀 창단식. 앞줄 오른쪽이 한단장.

 

내셔널바둑리그 신생 서울압구정이 지난 10일 창단했다. 압구정리그는 한국최고의 바둑모임이다. 바둑깨나 안다는 사람 중에 압구정리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일환 정대상 김종수 김희중 등 프로들부터 조민수 장시영 김정우 서부길 양덕주 최호철 박윤서 김우영 등 시니어 강자, 그리고 차은혜 홍준리 송예슬 전유진 등 여자강자들이 즐비하다. 이들 중 최근 이단비 박지영 도은교가 최근 입단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압구정에 나타났다. 서울압구정 시니어선수인 외대의 전설박윤서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압구정패밀리가 되었다. 3년 전부터 1급을 두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친구가 박윤서였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박윤서는 한단장의 고교 선배였던 것.

 

당구로 치면 200점을 치는 사람이 어느 날 2000점을 치는 고수들을 봤던 기분이랄까. 한 단장은 평소에 날고 기는 고수들과 바둑 한판을 염원하던 터여서, 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면서 이들에게 뭔가 뜻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맘이 동시에 생겨났다. 한단장은 압구정기원 장시영 원장에게 후원을 하고 싶다는 얘길 했고, 결국 작년에 조그만 아마대회가 하나 만들었다.

 

죽기 전에 한판 둬 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분들인데, 바둑계의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젊을 때 꿈속에서 그려보던 바둑계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딴 맘 없이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http://badukilbo.com/news/view.php?idx=477&mcode=m11gy55 압구정 단체전 기사 바로 가기

 

 한윤용 단장이 후원한 압구정 신춘바둑대회 시상식 모습. 조병철 김희중 ()눈꽃비 한윤용 대표 이정권 허정식.

 

압구정엔 많은 분들이 후원하시는데 주로 여자대회를 후원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시니어리그전도 후원하고 또 시니어+여성 단체전도 조그맣게 후원했어요. 솔직히 사업하면서 좀 여유가 있는 분들에겐 큰돈이 아닐 수 있는데, (대회를 열어주어) 참 고마워들 하시니까 저도 착한 일을 한 것 같았죠. 여러 군데 돈을 써 보지만 이런 흐뭇한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기부나 후원에 맛을 들이면 기분 좋은 DNA가 만들어지고 관성처럼 손이 나온다고 한다. 압구정패밀리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고무된 한단장은 아예 팀을 만들어 압구정리그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뜻으로 큰일(?)을 저지르고 만 것.

 

넉넉한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용기 있게 투자하는 분은 드물다. 한단장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지만, 팀을 운영하려면 그래도 기천만원이면 부담되는 돈이다. 지금까지 살벌하게 살기도 했고, 늘 경쟁하면서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세상입니다. 어디 가서 이런 순수한 분을 만날 것입니까. 순수한 분들과 그냥 거하게 회식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바둑은 순수해서 좋습니다.”

 

 ▲ 이종구 국회의원, 장시영 압구정기원 원장, 오인섭 전북바둑협회장, 한윤용 단장, 송예슬.

 

사람일이란 게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팀 운영에 하자가 없다면 계속 서울압구정을 유지하려고 한단다. 압구정패밀리들이 회원 수는 많은데 기회를 골고루 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압구정으로서는, 아니 바둑계로서는 참 좋은 인연을 또 만난 셈이다.

 

욕심? 전혀 없어요. 그저 즐겁게 바둑을 두고 모범적으로 팀원이 하나가 되었으면 하죠. 압구정의 명예를 지키면서 압구정이 발전했으면 하는 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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