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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09 12:28:11
  • 수정 2018-03-09 1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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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생을 나와서 대략 5년 동안 우승트로피를 20개쯤 수집했으니 군말이 필요 없는 아마최강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던 그의 위세도 입단과는 운 때가 맞지 않았다. 수차례 좌절을 경험한 그는 2004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난다.

 

물 설고 낯선 일본 땅에서 ‘풍운아’ 홍맑은샘(38)은 어떻게든 성공해보리라 다짐했다. 일본이라고  한국서 하던 고생보다 덜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는 고생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열심히 살기만 하면 ‘보람’이란 열매가 열렸으니 말이다.

 

그는 도쿄에서 이방인 아마 신분으로 ‘홍도장’을 열었고, 때마침 침몰하던 일본바둑계에서 선진 한국식 시스템으로 무장한 도장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의 근면 성실과 어우러져 승승장구했다.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던가. 그 사이에 홍맑은샘은 관서기원 입단이라는 오랜 숙원을 이루기도 했다.

 

고생했고 불우했던 소년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으로 만든 대회 맑은샘배 어린이최강전.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대회가 서울서 열리기 때문에 일 년에 한번은 연어의 회귀처럼 응암동 Club A7, 아마바둑사랑회를 찾아온다.

 

그의 부친 홍시범 씨가 대표로 있는 ‘Club A7’에서 A7은 ‘아마7단’이란 뜻이다. 자신의 아들이 ‘일본서는 프로, 한국서는 아마7단’이란 뜻도 들어있다. 그와 그의 부친의 손때가 진하게 배어있는 그곳에서 홍맑은샘을 만났다.

 

▲ 맑은샘배 어린이최강전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홍맑은샘 프로.

 

부친께서는 맑은샘배를 만들면 1년에 한번은 아들이 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딱 1년만의 귀국이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홍도장은 여전합니다. 최근엔 관서기원 프로기사회 부회장을 맡아서 행정에도 깊어 관여해야 하니까 조금 더 바빠졌습니다. 평소 개인적으로는 친소관계가 없던 기사회장 우시쿠보 선배님이 평소 저를 예쁘게 봤나 봐요. ‘(부회장을) 홍군이 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고 작년 8월부터 맡게 되었어요.

 

외국 기사에게 기사회를 맡긴다는 것은 퍽 이례적인데.
과거엔 중견기사들의 ‘감투’ 정도로 생각했던 점이 있어요. 요즘은 일을 해야만 하니까 30대가 나서서 많이 합니다. 제가 외국인인데 부회장을 밭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파격이죠.

 

기원 행정을 맡은 지 8개월 쯤 되는데 그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면?
틀을 변모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둑과 장기를 엮어서 지역단체전을 계획하고 있고 거의 성사단계에 있어요. 여러 기업체와 얘기가 오가고 있고 이미 일본바둑계의 콘센서스도 이뤄졌어요. 시대가 변했잖아요. 일본은 바둑만으로는 임팩트가 부족하지요. 일본 장기가 바둑보다 어쩌면 더 인기가 있어요. 한국에 바둑TV가 있듯 일본엔 바둑장기채널이 있어요(일본 바둑장기채널은 최근 한국 용성전을 후원했다.). 공동마케팅은 시대의 조류입니다.

 

일본기원과 관서기원의 관계는 어떠한가?
매우 좋습니다. 중국 네웨이핑의 아들인 콩링원이 중국을 맡고 제는 한국을 맡아서, 일본국가대표의 훈련을 연결시켜주기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선전 기술 전수도 합니다. 일본기원 관서기원 이사장님을 뵈면 저는 늘 일본에서 가장 기대주를 데리고 한국 중국으로 배우러 가야 한다고 건의합니다. 제가 관서기원 소속이지만 일본기원이사장과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 '아마의 전설' 홍맑은샘을 얘기하면 빼놓은 수 없는 절친 하성봉(왼쪽).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좀 쉬었다 갈 수도 있을 텐데(웃음), 대회 치르고 아침 비행기로 급히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이번 주에 일본서 도장합숙훈련을 계획하고 있어요. 자체 행사가 아니라, 대만의 해봉기원에서 프로와 연구생 12명이 파견되고, 일본기원 중부총본부, 관서기원에서도 120명 정도가 참여하는 대형 연수행사에요, 전엔 한국의 각 도장도 연합 연수프로그램으로 자주 조인했어요.

 

홍도장은 여전히 최고인가? 제자 중에 요즘 눈에 띄는 유망주는?
‘홍도장’은 16명의 프로가 배출되면서 여전히 잘 나간다고 할 수 있죠(웃음). 후지사와리나, 이치리키료 등 일본 남녀 최고 기사들이 배출되었으니까요. 장쉬의 두 딸과 하네나오키의 남매, 야마시타게이고의 아들이 모두 홍도장을 거쳤기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죠. 최근 기대주는 신인왕전과 용성전을 우승한 시바노도라마루(19)인데, 이 친구는 이야마유타를 위협할 준재입니다.

 

얼마 전 LG배 결승에서 이야마유타가 준우승에 그쳐 일본 팬들이 꽤 실망했을 것 같다. 포기하는 또는 낙담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전혀 아니에요. 팬들은 일본바둑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야마에게서 희망을 느껴요. 이번 LG배 결승 이벤트를 위해 일본기원은 2층 전체를 리모델링하며 팬들을 모셨어요. 일본 팬들은 여전히 바둑을 사랑합니다.

 

한때 일본에도 국가대표 드림팀이 출범했다고 떠들썩했는데,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가?
결국엔 돈 문제로 귀결되는데, 한국 중국과는 달리 국가에서 지원이 전혀 없고 팬들의 후원금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재원이 넉넉지가 않죠. 그러다보니 국가대표라고 해도 잘 모이지 않습니다. 프로들이 일을 쉬고 훈련에 와야 하니까 어지간한 각오로는 국가대표팀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기가 어렵죠. 1년에 두 번 정도 합숙을 하는데 한국 중국과 대등하려면 그 정도 가지고 되겠어요?

 

과거 NHK인터뷰에서 이대로는 일본이 한국 중국을 못 이긴다고 했다. 홍프로가 보는 해결책은?
세계무대에서 한중과 어깨를 나란히 한 마지막 인물인 장쉬에게도 (국가대표가) 1주일에 3일 정도는 해야 한국 중국을 쫓아간다고 말했죠. 돈과 관계없이 현재 4천왕(장쉬, 다카오신지, 하네나오키, 야미시타게이코)이 나서 주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분들은 승부를 하고 싶어 하죠. 일본의 침체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 홍도장에서 발행한 알파고 수법에 관한 연구 서적.


홍프로는 알파고 기보를 가지고 가장 먼저 단행본으로 엮을 만큼 AI바둑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일본도 AI바둑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뭔가 달라진 건 없나?
‘다카오신지 연구회’가 딥젠고를 이용해서 학습하더군요. 팬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향후 변화할 것입니다. 이번 LG배 결승에서 좋은 참고도를 만들어낸 게 중국의 파인아트(중국명 ‘절예’)였어요. 앞으로 프로도 해설로 밥 먹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AI가 음성까지 장착하는 건 시간문제인데, 그렇게 되면 프로의 존재 가치는 굉장히 떨어질 겁니다. 해설을 하더라도 자기 맛을 낼 수 있어야합니다.

 

AI의 존재 때문에 도장경영에 지장을 받지는 않나? AI시대에 바둑은 어떠해야 할까?
AI 탓에 도장 문하생들도 매우 걱정을 하는 눈치입니다. 저는 과도기라고 봐요. 지금까지 이기는 것만이 능사였어요. 이제는 보다 향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합니다. AI도 인간의 부하이기 때문에 ‘써 먹는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AI도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는데, 그 부족분을 인간 프로가 빨리 메워야 합니다.
‘야마하’는 유명한 일본 악기회사이며 일본 전역에 지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 피아노가 바둑과 결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바둑과 피아노는 정적인 면에서 좋은 매칭이 된다고 해요. 그래서 피아노와 바둑을 동시에 가르치는 학원이 생기고 있어요. 야마하회장님은 바둑을 전혀 몰라도 그러한 정책을 폈어요. 변할 수 있어야 프로입니다.

 

끝으로 맑은샘배에 출전한 어린이들에게 연신 ‘감사하라’고 덕담했다. 어떤 의미인가?
평생 살아가면서 감사한 맘이 가장 소중하다고 봅니다.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바둑을 배웠기 때문에 바둑에 대한 감사도 있어요. 특히 저로서는 일본바둑계에 감사하고, 일본바둑계를 위해서 제가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런 감사한 맘으로 일본과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홍맑은샘은 후배들앞에만 서면 늘 감사하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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