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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1 21:23:25
  • 수정 2018-02-12 18: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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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시즌 바둑대회 개막을 알리는 아바사 주최 2018 할인검 바둑대회. 겨우내 굶주렸던 바둑인들에겐 봄의 화신과 같은 대회였다.

 

활인검(活人劍)-. 검도나 무술대회 이름이 아니다. 익명의 후원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우리들의 바둑대회 2018 활인검이 10일 오후2시 서울 응암동 아마바둑사랑회관에서 시니어 맹장 40명이 출전한 가운데 올해 첫 시니어대회로 치러졌다.

 

기자가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30분. 이미 아바사회관은 말끔히 정돈되어 손님 맞을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개시시간 1시가 가까워오자 아마바둑사랑회 관계자들은 연신 울리는 벨소리로 고생이 꽤나 많다. 아바사회관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 더구나 지하실에 있다 보니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수안보에서 상경한 박성균 정경수 사범. 아래인 정사범의 손에는 보자기로 싼 선물꾸러미가 들려있다. 아바사에서는 이런 광경은 흔하다. 같이 먹자고 두 사범들이 장만한 것일테다.

 

▲ 간단한 대회 규칙을 설명하는 Club A7 홍시범 대표. 활인검은 아바사의 연례행사다.

 

초대 전북바둑협회장을 역임한 양완규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참 오랜만이다. 순간 홀 내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기립하여 대선배를 맞이한다. 지금도 전주대 바둑동아리에서 주기적으로 바둑강좌를 펼치고 있는 양회장은 이번 설을 쇠게 되면 저스트 80세. 이 분을 보노라면(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음) 전혀 팔순을 앞두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엔 괴산명필이 들어선다. 6척을 훨씬 넘기는 높이에 트레이드 마크인 회색 한복차람에 긴 수염 을 휘날린다. 힘차고 독특한 한글 서체를 자랑하는 그는 두어 달 전 붓글씨 개인전을 열었다. 오늘은 그의 바둑실력을 엿볼 자례.

 

여럿이 악수를 나누기 무섭게 또 대구에서 신영철 박강수 사범이 입장한다. 요즘 신영철은 부산의 최호수와 함께 아마바둑계에 '고령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대구하면 또 요즘 이학용 사범이 잘 나가질 않나. 이사범은 나중 따로 도착했고, 대구의 숨은 강자 한상길도 오랜만에 서울 행차.

 

그 다음은 염동인 전 전남바둑협회장이다. 지난 연말에 원봉투게더 행사에 이어 또 모습을 비춘다. 염회장은 최근 김포로 이사를 하여 수도권 사람이 되더니 부쩍 자주 얼굴을 비친다. 염회장은 아마6단의 고수.

 

염회장이 난로 가로 가서 몸을 녹이자, 기자는 퍼뜩 그림이 떠올랐다. 양완규 신영철 그리고 염동인까지 고령 출전자 3인을 따로 모아서 사진 한 컷을 요청한 것. 그들은 싫은 표정 없이 'V'자를 그리며 오히려 활짝 웃어주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종목은 바둑밖에 없으리라.

 

염회장이 슬쩍 한마디 한다. “지난번엔 (고령자)1위였는데 이번엔 2위네”하고 양회장의 연세가 많음을 알린다. 그러자 신사범도 양회장을 힐끗 보면서 “68년도 입단대회에서 형님과 붙어서 제가 졌어요. 기억나세요?”한다. ‘허허. 기억날 리가 있나?’

 

▲ '노장 트리오' 신영철(49년생) 염동일 (48년생) 양완규(39년생)

 

시계가 1시를 가리킬 즈음, 이젠 쏟아지듯이 모여든다. 성남에서는 장부상 김동섭, 수원에서는 노근수 이철주, 인천에서는 서부길 이용만, 청주에선 최계성, 멀리 제주에서는 한공민 사범이 불원천리 달려왔다. 한원장은 대회 심판위원장 자격으로 참여했단다. 기자가 아바사 대회에 심판이 있는지 퉁명스럽게 물어보자, 아바사 발행 심판자격증을 갖춘 유일한 심판이 자신이라며 넉살.

 

한 명이 빠졌다. ‘더프가이’ 조민수 사범이 안 보인다. 알아본 즉, 홍어회를 산지 직송하는 탓에 시간이 지체되어 좀 늦는다고. 전남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하자, 대회 진행에 있어서는 ‘무소불위’ Club A7 홍시범 대표가 예정된 개시 시간을 조금 늦춘다.

 

“한 2시부터 시작하겠으니 몸 풀고들 계세요! 소주 한잔 하실 분은 하시고 막걸리는 조금 쉬었어도 드실 만해요. 냉장고에 있으니 알아서들 드세요." 내 집처럼 편하다. 말이 그렇지 시합을 앞두고 술을 입에 대는 사람이 있겠는가. 알콜은 관전자의 몫이다.

 

▲ 겨우내 고팠던 바둑대회. 활인검은 2018 본격적인 바둑시즌에 앞선 오픈경기가 되겠다.

 

이윽고 2시 정각. 관심사는 조 추첨 결과 공개. 자충수, 빈삼각, 양단수, 촉촉수 등 4개 팀에서 각각 10명의 선수가 복불복 제비뽑기로 각자 조를 찾아들어갔다. 기자도 선수로 참가했는데, 평소라면 전국구 멤버들에겐 월사금을 내고 배워야 하지만, 단체전의 특성상 조 추첨만 잘 하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다.

 

자충수 팀의 9번 주자로 뛰었다. 왜 10번 주자가 아니냐? 기자보다 약한 분이 있었다. 아바사에서 실시하는 화요강좌(강좌명 야화, 사범 심우섭) 수강생들이 전체 경기에 지장 없게끔 4명이 각조 말번으로 출전한 것. 그들 덕분에 제일 아래 순번은 면했다.

 

발표결과를 보니 2중2약으로 이미 승패는 이미 결정난 듯 보였다. 결국 꼴찌를 차지하게 되는 자충수조는 자타공인 아마최강 조민수에다 서부길이 전국구. 3위 촉촉수조는 최호철 최진복 이학용이 전국구였다. 두 조에서는 강자가 2~3명밖에 없다면 좀 빈약하다.

 

반면 양단수조는 박성균 신영철 심우섭 김우영 김희중 김동섭 이용만 이철주 등 막강한 멤버며, 빈삼각조도 박강수 최욱관 곽웅구 장부상 김정우 김종민 한상길 등이 포진되어 있어 만만치 않다. 역시 양단수와 빈삼각이 결승에서 맞붙어 생각보다 큰 차이로 양단수조가 승리했다. 8승2패.

 

▲ 활인검은 총 4개조 각 10명씩 단체전으로 치렀다.

 

‘너 몇 살이냐?’ 나이 많아서 자랑하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 총 3라운드로 치르는 경기 과정은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 치수는 덤 6집반에다, 4살 당 1집의 덤을 추가 하기로 한 것(상한선은 추가 8집까지). 따라서 20살 차이면 20÷4=5. 추가로 덤을 5집 더 지불해야 한다.

 

소싯적 강자였던 80세 양완규 회장은 젊은 강타자인 최호철(45)과 만나서 석패했다. 양회장은 “덤이 14집반이나 되니 여유 있게 두다가 야금야금 따라잡혀 패하고 말았다“고 오히려 푸념이다. 또한 70세인 염동인 회장은 비록 1승2패를 했지만 자충수조에서 2지명 선수로 활약하며 하드펀치 박강수 사범을 잡았다. 역시 덤 어드밴티지를 잘 활용한 케이스.

 

다음 특기할 일은 바둑 한판에 축구처럼 전 후반이 나눠지고 작전타임이 따로 있다는 것. 따라서 자기 팀 고수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훈수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역시 김희중 조민수 최호철 이철주 등 '고수 오브 더 고수'가 많은 부름을 받았다. 기력이 좀 약한 기자와 같은 하수들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하던 고수들은 부득이하게 상대편 선수의 훈수 요청에도 임하는 등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별이 없었다.

 

작전타임은 반상에 바둑돌을 직접 놓아보며 참고도를 그려보다가(그래도 됨) 돌을 뜯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기자의 경우, 참고도 수순을 너무 많이 진행하다 보니 원상복구가 안되어서 애를 먹은 기억도 있다(ㅋㅋㅋ).

 

▲ '아는 이름이 몇명이나 있는지요?' 출전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합죽선에 자필로 적었다.

 

“열심히 일해서 바둑행사를 여는 것이 행복입니다.”

 

시상식 타임에 앞서 홍시범 대표는 올해 아마대회의 일정을 공유했고, 내년 활인검은 한일전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했다. 더불어 앞으로도 ‘눈 먼 돈’이 생기면 대회를 많이 하겠다고 말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상은 연세가 많은 양완규 사범부터 차례대로 수상자가 곧 시상자가 되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승상금은 300만원을 1/n 하니 1인당 30만원씩이다. 2위 200만원, 3위 150만원, 4위 100만원.

 

전직 프로 김희중 사범은 우승소감에서 “여러분들이 나를 많이 원망할 줄 압니다. 차라리 우리 편이 되길 비는 게 낫지 않겠어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아바사 대회마다 김사범은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농이었다.

 

신영철 사범은 "대회를 후원해주신 분에게 고맙다. 시니어들은 이렇게 대회가 존재하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맘이다“며 참가자들을 대신하여 감사인사.

 

▲ 언제나 유쾌한 '꾀중이형' 김희중 사범. 단체전 우승의 비결을 묻자, "매번 우승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내가 속한 팀에 (여러분이)속하도록 애쓰면 된다."고 말해 좌중은 박장대소.

 

모두들 돌아가는 길에 선물세트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그래야 아내가 좋아한다는 홍시범 대표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참가금 3만원에 5만 원짜리 선물 세트 하나씩이라. 그리고 꼴찌를 해도 10만원은 탔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이 모든 즐거움은 익명의 한 후원자로 인해 생긴 것이고, 100만원을 후원하면 200만 원짜리 대회가 만들어지는 ‘아바사패밀리’들의 노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이 혹 지더라도 너끈히 승자를 격려하고 패자를 위로해주는 푸근한 맘을 갖고자 함이 바로 활인검(活人劍)의 속뜻. 상대를 뉘지만 누인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고차원의 예도가 바로 바둑이다. 평창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나온 순간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활인검의 진정한 의미를 출전자 모두 느끼고 간 하루였다.

 

참고로 아마바둑사랑회 주최 바둑행사는 다음과 같다. 1)신년회 2)활인검 3)맑은샘배 어린이대회(3/3~4) 4)서귀포칠십리바둑축제(3/17) 5)괴산바둑나들이(4/22) 6)원봉투게더(12/1~2)

 

▲ '설 선물세트 받아가세요~ !' 선수들에게 나눠줄 상금과 선물들이 수북하다.

 

▲ 여기 국대회 우승 한두번쯤 안 해본 얼굴이 있습니까? 적어도 사진 속에는 없는 것 같음.

 

▲ 초대 전북바둑협회장 양완규(80) 선생.

 

바둑일보제자(題字)를 써 준 청산 정순오 선생.

 

▲ 유이한 여성출전자 송난희-장수연.이들은 아바사 화요강좌 '야화'에서 꾸준히 수업을 듣고 있다고. 

 

 ▲ 아바사 심판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한공민 원장의 전반전 종료 타징.

 

 ▲ 아바사 경기의 특징인 작전타임 시간. 청산 최계성 최호철의 공동 연구.

 

▲ 김희중 서부길 황이근 김용기. 김희중 사범은 하프타임에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인기가 치솟았다.

 

▲ 후반전이 개시되었다. 다시 열띤 경쟁.

 

▲ 김정우-한상길. 가운데 관전자는 도자기 장인 송명인이다. 송명인은 내년 할인검 대회에 도자기 상패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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