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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2 16:16:45
  • 수정 2018-02-02 16: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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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대표선수 한창한바둑학원 원장 한창한.

 

바둑은 양면성이 있다. ‘두뇌스포츠의 총아’라는 칭송이 자자한 반면 때로는 지나치게 승부만 탐닉하여 ‘잡기’라는 오해가 아직도 남아있다. 취미를 넘어 직업의 관점에서 본 바둑이 그리 장려할 바 못 된다는 것은 매우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 젊은 바둑인 한창한(29)이 있다. 초등시절부터 바둑에 재주를 보이며 당당히 연구생에 진입한 그의 꿈은 프로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만만치 않았다. ‘바둑만 잘 두던’ 청년은 톡톡히 좌절을 경험하고 만다. 짧은 방황 후 그는 바둑을 원망하기 보다는, 바둑을 당당한 직업으로 삼자고 결정한 끝에 청년사업가로 변신한다.

 

바둑학원장 한창한은 바둑인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가장 흔한 직업을 택했다. 내셔널리그 선수이기도 한 그가 비교적 이른 나이인 26세에 사범이 아닌 원장이 된 것. 젊은 바둑인 한창한이 바둑학원을 경영하며 ‘사업가’로 자리매김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 연구생반에서 공부하는 원생들을 지도하는 한창한 원장.

 

“사범과 원장은 사장님과 알바생과의 차이더라고요. 원장은 학부모님 관리와 월세 인건비 등을 매달 걱정해야하고 수지타산에 무엇보다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한마디로 경영을 해야 하죠. 젊은 저에게는 굉장히 부담되는 일이었지만, 십년 이상 바둑에 정진했던 기간을 떠올리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연구생을 나와서도 계속 입단 준비를 했던 그는, 문득 ‘프로 공부 포기’를 선언한 다음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많으니 잡념도 많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 후 ‘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결과 새삼 자신의 주변에는 바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로 아는 분들 모두에게 전화를 넣어서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창한이 바둑교육계에 뛰어든 지 이제 3년차. 군을 갔다 왔고 대학생활(세한대 바둑학과)을 4년 동안 했음을 감안하면 그의 첫 직장이 바로 학원창업인 셈. 인천의 계양영재바둑학원과 부평이세돌바둑전문학원은 둘 다 인천 대표선수 한창한이 경영하는 바둑학원이다.

 

바둑이외에는 별로 경험도 없는 그가 어떻게 ‘돈도 잘되지 않는’ 이 세계에 안착하게 되었을까. 오랜 바둑기자 경험을 돌이켜도, 바둑교실이나 바둑도장을 경영하는 분 중에 이런 젊은 사장님은 못 만난 것 같다. 한마디로 그는 ‘바둑이 괜찮은 지 아닌지’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 부천시 창의체육 선생님 10명중 유일한 바둑선생님으로 선정된 한창한이 5학년 학생들과 바둑수업을 마치고 기념촬영.

 

바둑을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본 적인 명제부터 한창한은 달랐다. 사업 이전에는 방과후수업도 여러 군데 다니는 등 닥치는 대로 바둑사범 경험을 쌓았다. “그때는 돈은 별 상관이 없었어요. 바둑이 센 것과 바둑지도는 비례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이 모든 경험이 장차 제 사업을 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죠.”

 

사실 젊기 때문에 사장님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으며 또 나중에 해도 된다고 여긴다. 입단의 꿈을 여전히 꾸기 때문인 것을 한창한은 잘 안다. 바로 그 대목에서 후배들에게 해줄 애기가 있다. “그 꿈을 포기 할 순 없지만, 때가 되면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압니다. 그때 결단의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미생 초기엔 주머니가 비어있기에 좀 더 위축되고 시합에 나가서도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바둑지도를 하면서 주머니가 조금씩 채워지니까 맘에 여유가 있고 오히려 바둑을 즐기게 되었다. 한창한은 2016년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통과했고 아마랭킹이 8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며, 전국체전 은메달도 땄고, 김삿갓배, 고양시장배, 전남도지사(단체전) 등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 한창한바둑학원의 사범들이자 친구들, 이진우 한창한 박지훈 박상민.

 

또록또록한 눈매며 똑 부러지는 언변이며 늘 밝은 모습의 ‘핸섬보이’ 한창한을 보노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바둑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바둑으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였다. 많은 미생들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한창한은 보여주고 있었다.

 

“후배들이 바둑만 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해요. 달리 생각해보면 나이 20세에 다른 사람은 뭘 그리 많이 갖추었을까요. 바둑마저도 못 갖춘 사람이 세상엔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미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대부분의 미생들이 자신의 삶을 알아주길 기다릴 때 한창한은 그들에게 자신을 세일즈 할 줄 아는 젊은이였다.

 

끝으로 한창한은 3일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전한다. 신부 허수정(27) 씨는 어린이병원의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재원이라고.

 

▲ 지난 연말 아바사회관에서 벌어진 '원봉투게더 페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창한(왼쪽)이 우승상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대회관계자에게도 상금의 일부를 쾌척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창한이 우승을 많이 해야 할 텐데…’

 

▲ 인천 국회의원들이 한창한에게 바둑으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어 고맙다는 표시로 수여한 표창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 기사가 나올 때면 한창한은 품절남이 된다. 그의

피앙새 허수정(27) 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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