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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4 11:52:15
  • 수정 2018-01-24 15: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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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을 만들었다는 고대 중국의 요(堯) 순(舜) 임금의 이름을 딴 영국 쌍둥이 陳至堯(잭)와 陳至舜(애런)이 어머니와 함께 포즈.


과거 바둑TV에 출연했던 60대 바둑광 한 분이 문득 생각난다. 그는 어찌나 바둑을 좋아했던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조치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열혈청년 조치훈이 1980년 오다케히데오를 꺾고 일본 명인을 획득한 잔상이 너무 강렬하여, 조치훈 이외의 이름은 ‘작명 후보군’에도 낄 수 없었다고. 덕분에 천하의 ‘조명인(趙名人)’을 ‘치훈아!’ 하고 큰 소리로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며 껄껄 웃었던 바둑 팬이었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또 있다. 최근 지방 취재 두 번에서 만난 소년들의 이름에 얽힌 사연이 꽤 흥미로웠다. 두 번의 대회인데 주인공은 모두 3명의 외국인이다.


바둑의 대체적인 유래는 ‘요순 창시설’에 기인한다. 즉,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 순(舜) 임금이 어리석었던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스스로 깨치게 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이름에 요(堯) 순(舜)이 들어가는 쌍둥이가 있어서 화제다.


지난 주말 2018 세계청소년마인드스포츠대회가 무려 3000명의 출전자와 동반자 관계자가 운집한 가운데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열렸다. 대진표를 적어둔 대형보드를 훑던 중 형제로 보이는 한 쌍의 이름을 보았다. 홍콩에서 온 8세 陳至(잭)과 陳至(애런)이라는 쌍둥이 형제였다. 한자로 이름을 적은 이유는 끝 자가 요(堯) 순(舜)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陳至堯(잭)과 陳至舜(애런)이 사진촬영을 위해 바둑경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잭과 애런은 영국계 아빠와 중국계 엄마 사이에서 2010년 4월에 5분 간격으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기력은 형이 4급 동생이 5급이다. 그들은 동서양 부모들의 영향인지 바둑과 체스를 동시에 무척 사랑한다고. 한국에는 작년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에 출전한 이후 1년 사이에 두 번째 한국 방문.


잭이 경기를 하는 동안 에런이 부전을 택하자 쪼르륵 체스경기장으로 달려가더니 체스 관전에 빠진다. 기자가 촬영을 위해 손을 잡아끌어도 한번 빼앗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애런. 이내 ‘형 잭이 바둑이 어려우니 네가 가서 한번 살펴봐라’는 기자의 농에 또 쪼르륵 달려가더니 바둑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워낙 개구쟁이들이다. 처음 보는 외국의 낯선 대회장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네 안방 뛰어놀 듯 형제는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춘천에 온 첫날부터 눈썰매장을 가서 한바탕 구르는 통에 턱을 크게 다쳐 야밤에 원주의 병원에서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고.


▲ 陳至堯(잭)과 陳至舜(애런) 형제. 형 잭의 경기를 걱정스런 모습으로 쳐다보는 동생 애런. 잭의 턱에 붙인 반창고는 춘천 눈썰매장에서 생긴 훈장이라고.


▲ 대회장에 가면 바둑을 잘 두는 아이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여기 '진짜 바둑을 잘두는 아이'가 있다. 바로 오른쪽 어린이다.


또 한 케이스가 있었다. 작년 11월 경북 문경에서는 문경새재배가 열렸다. 프로가 출전하는 통에 아마대회라는 명칭은 사라졌지만, 역시 동호인들의 선망하는 대회. 여기 초등학생부에 오성홍기를 달고 경기에 임하는 작은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리혁걸(李奕傑)이라는 이름표를 보자마자 기자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둑 혁(奕)’을 연상했고, 재능이 출중한 사람을 ‘인걸’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 리혁걸(李奕傑)은 ‘바둑을 잘 두는 아이’라는 뜻이 아닌가.


알고 보니 중국 서부 청두에서 kiba(권갑용 바둑국제학교)로 유학 온 8세 소년이었다. 어떻게 그 먼 곳에서 이국땅의 kiba를 알고 있었을까? “3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알아봤나 봐요. 그 후로 곧장 kiba로 유학을 결정했어요.” 보호자로 나선 kiba 김영란 이사의 전언이다.


▲ '바둑을 잘 두는 아이' 리혁걸(李奕傑).


김이사에 따르면, 리혁걸(李奕傑)의 아빠는 청두에서 바둑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아마강자인데, 아이를 바둑으로 입신양명시키겠다는 뜻이 워낙 확고하여 무려 5년간이나 한국 유학을 예정하고 있단다.


“화장실 갔다 올게요!” 기자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뚜렷한 한국어로 김이사에게 말하고서 국내어린이에게도 낯선 화장실 찾기에 나선서는 소년 리혁걸(李奕傑). 김이사는 “많은 유학생을 받아봤지만 굉장히 영특하고 언어 습득력도 뛰어나다”고 칭찬이 자자.


바둑성적은 어땠을까. 아직은 한국바둑대회가 익숙지 않은 듯 예선전에서 1승2패로 탈락했다. 그러나 대국 태도만큼은 한국도장에서 배운 덕택인지 자못 진지했다. 이제 추위가 가시고 봄이 오면 각종 대회에서 부쩍 성장한 ‘바둑을 잘 두는 아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리혁걸(李奕傑) 소년의 진지한 모습은 일류

똑같다. 뒤는 보호자로 동행한 kiba의 김영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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