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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02 12:36:20
  • 수정 2017-11-02 12: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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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수년을 고군분투한 철권 이세돌은 지금 고독하다.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하는데 두 판 모두 놓쳤다. 나이가 들면 왜 승부가 힘든지 알 듯하다." 작년 12월 중국 쑤저우에서 벌어진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패배한 뒤 이세돌이 기자단과 식사 중에 한 말이다.

사실 당시 패배는 명인전 olleh배 국수전 등 굵직한 결승 및 타이틀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살인적인 일정에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설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이세돌이 삼성화재배처럼 큰 기전에서는 자신의 능력 120%를 발휘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둑기자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인 탕웨이싱은 1~2년 전만 해도 이름이 익숙지 않았던 풋내기가 아니었던가.

어제(2일) 새해 첫 도전기 국수전 2국에서 이세돌은 또 패했다. 바둑스타일로 보면 이세돌과 조한승은 확연히 구분된다. 한쪽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강성이며 다른 한쪽은 한없이 부드럽다. 당연히 이세돌이 이기든 지든 판을 주도한다. 그러나 최근 이세돌은 뭔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한판을 끝냈다. 그리고 패배에 대한 고통을 예전보다 더욱 크게 드러내곤 했다.

예전에 입버릇처럼 말하던 '최선의 기보'는 잊은 지 오래되었다. 아직 삼성화재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한 것이다. 바로 그 기자들이 쑥덕댔다. 해설자나 동료기사들도 걱정하는 시선으로 말했다.

"요즘 이세돌이 이세돌이 아니다. 좀 더 버텨줄 수 있을 나이인데…."
"착각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에 더욱 불안한 듯 보인다."
"착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문제는 요즘은 뒤집을만한 힘이 떨어졌다."

바둑 승부도 찰나의 순발력과 집중력이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는다. 그런 점에서 특히 일류기사들에게 '착각'은 치명적인 결격사유다. 착각은 우리나이로 32세가 된 이세돌에게 있어서 예전에 없는 큰 변화다. 이 시점에서 "바둑만 둔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인생이란 게 결부되면 쉽지 않다."라고 말한 이세돌의 예전 인터뷰 대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 이세돌의 실수가 잦아지고 있다. 2일 벌어진 국수전 도전2국 장면.


절대 권력자 이창호가 2005년 중국 뤄시허에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일격을 맞았다. 그 이후로도 언제고 이창호는 다시 권좌에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불행히도 단 한 번도 세계무대 꼭대기에 올라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비단 이창호뿐 아니라 절대 권력자들이 한번 내려온 권좌를 다시 되찾은 예는 없다. 조남철이 김인에게 그랬고, 김인은 조훈현에게,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그랬다. 당시 이창호의 나이가 30이었고 지금 이세돌이 슬럼프에 빠진 시기도 공교롭게 30이다. 이세돌은 고빗길에 접어든 것이다.

첫수부터 끝수까지 맑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야 한판의 바둑이 완성된다고 할 때, 착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수읽기의 회로가 가끔 끊어진다는 것이고, 승부사에겐 노화의 징후다. 그 노화를 더디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단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련에는 건강관리 생활철학의 정립 등 무형의 것이 포함된다.

31세 이세돌에게 기회는 남아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올해 최대의 이슈가 될 삼성화재배 우승상금의 3배 크기(8억7000만원)인 '이세돌-구리 10번기'가 기다리고 있다.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한판씩 두어지는 이 10번기는, 그 시대적인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세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매우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승승장구를 한다면 지금 그가 겪는 아픔을 잊고 그의 정점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만약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의 하락세도 가속이 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팬들이 작금 이세돌을 제외하면 나머지 한국기사들로는 중국에게 버겁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을 토로한다. 그래서 이세돌이 조금 더 버텨주길 학수고대한다. 아직은 '마지막 승부'가 남아있으니 부디 이세돌이 청마의 기운으로 다시 일어서길 소원한다. 오는 26일 구리와의 10번기 1국에는 멀리 캐나다에서 그리던 부인과 딸(8 혜림)이 '아빠 이세돌'을 응원하러 올 것이라고 한다. 이세돌에게는 '가족힐링'이 최고의 특효약이 아닐까.

▲ 2011년 바둑대상 시상식에서의 이세돌과 딸 혜림양.



[덧붙이는 글]
타이젬에서 2014년1월3일자 '워러의 일기'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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