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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22 18:18:21
  • 수정 2024-01-24 21: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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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좋은 친구, 안 만나면 그리운 친구' 미추홀리그가 21일 인천바둑발전연구회관에서 제91회 대회를 가졌다. 신년 첫 대회인 만큼 프로기사와 인천바둑협회 임원들이 함께 신년축하케이크 절단에 앞서 하트 포즈를 취했다. 좌로부터, 장두화 서부길 서능욱 나종훈 김종화 최병덕 곽계순 조혜연 윤천준 서중휘 현명덕 정대상.


계절을 타는 종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동설한엔 바둑대회가 뜸하다. 새해가 열리고 눈발도 잦은 요즘엔 썰렁하다 못해 아예 얼어붙었다고 하겠다. 


바둑돌소리가 그리운 이들에겐 미추홀만한 게 없다. 춘삼월에도, 성하의 절정에도, 엄동설한에도 늘 그렇게 열리곤 하는 미추홀은 베스트셀러 아닌 스테디셀러. 


변함없이 좋은 친구들과 변함없이 좋은 대회를 온전하게 치르는 데는 미추홀뿐이다. 


21일 오후2시 인천 김종화치과 내 인천바둑발전연구회관에서는 변함없는 좋은 친구 44명이 한데 모여 미추홀리그 제91회 대회를 가졌다. 


어느새 100회 대회를 바라보는 미추홀은 노장청아(老壯靑兒)가 모이는 아름다운 대회다. 위로는 양완규 박종우 등 80대 노익장을 자랑하는 어르신부터, 아래로는 박한필 이건우 임형섭 박하진 이서우 등 파릇파릇 10대들이 쫙 깔렸다. 


언제부턴가 세계로 가는 미추홀이 된 것도 특기할만하다. 중국 일본 대만 선수들이 과거에도 가끔 출전하곤 했지만 최근엔 다양한 국가에서 이름을 올린다. 오늘은 필리핀 미국 프랑스에서 온 손님도 있다. 


▲새해 첫 대회인 만큼 출전선수들의 표정이 모두 환하다. 맨앞은 오늘 처음 온 외국친구인 에일리안(21 프랑스)과 제레미(22 미국). 그리고 그 뒤는 곽계순, 조혜연 프로.


멋진 바둑, 멋진 친구. 


국민의례와 함께 대회사, 환영사, 프로기사 소개, 신입회원 소개, 대회운영규칙 등 익숙한 시나리오를 거친 끝에 즐거운 네 판 경기가 이어진다. 


참고로, 오늘은 찐기자가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 살짝 지각을 했는데, 미안하게시리 대회개시시간까지 늦추면서 찐기자를 기다려주었다는 므흣한 소식이다. 이 얼마나 송구한 일이던가. 이번 대회에선 찐기자는 입상을 포기하면서 용서를 빌었음을 밝힌다(으음).  


자, 반가운 얼굴부터 소개하자. 최근 루마니아 여자바둑 국가대표대팀 지도사범을 맡았다는 조혜연 프로가 자신의 제자 4명을 데리고 왔다. 임사무엘 박하진 두 한국 제자는 구면이고, 제레미(22 미국) 에일리언(21 프랑스)이라는 청년들이 한국바둑의 매운 맛을 보러 찾았다.


곧 나오겠지만, 이들의 실력이 제법 출중하다. 흔히 외국인이라면 한수 아래로 생각하기 일쑤인데, 이들은 여기 쟁쟁한 미추홀러들과 별반 기력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들이었다. 특히 미국의 제레미는 국무총리배 때 미국대표로 나섰다고.


또 전직 교장샘이셨다는 김성중, 오랜만에 다시 얼굴을 보인 황이근, 윤정현, 이승민도 반갑기 그지 없다.


그리고 지난 번 89회 대회 때 우승을 차지했던 초등생 박한필의 부모님이 미추홀견학차 경기 도중 대회장을 방문했다. 


박한필은 국무총리배에 필리핀대표로 출전하여 6위에 오른 바 있는 꿈나무인데, 엄마 아벨라카렌이 필리핀 국적이며 앞으로 필리핀바둑협회장이 되고자하는데, 필리핀에서 큰 바둑대회를 계획하고 있어서 겸사 겸사 견학차 방문했다한다. 박한필의 이름 '한필'은 한국과 필리핀의 앞글을 따서 지었다고.  


이젠 미추홀에 출전하려면 영어 불어 필리핀어까지 습득을 해야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온다.  


▲새해 첫 라운드가 개시되었다. 맨 앞은 고양 임춘기-성남 김동섭.


눈 딱 감고 네 판만 이기면 우승인데 그게 잘 안 된다. 네 번만 승리하면 우승이고 그 확률은 1/16로 알고 있다. 여태 출전한 회수가 16회가 넘는데 아직 우승을 못했다는 건… 


찐기자만 그런 게 아니고, 주최측인 최병덕 김종화 곽계순도 16번 출전을 더했을 텐데 우승 소식을 못 들은 걸 보면 요즘 수학통계 정말 믿을 게 없다. 과학도 경험에 앞서지 못한다.


새해 첫 대국인 1라운드에서 모든 게 결판난다. 1라운드부터 이변이 일어나야 흥미로운데 이번엔 별 이변이 없다. 다만 '의왕딱부리' 박정윤이 '강릉손오공' 서능욱을 정선으로 이겼다는 정도.


이름이 아직 낯설다고 하겠지만, 박정윤으로 치자면 과거 아마10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는 원조 전국구.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손오공이 잡혔다고 해서 큰 이변은 아닌 것.


그리고 눈길이 가는 건 서중휘 프로가 박한필에게 바둑이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서중휘는 박한필의 스승. 


또 파란 눈의 승부사들은 모두 첫판을 이겼다. 국무총리배 미국대표 제레미는 만만찮은 임형섭을 이겨 기염을 토했고, 에펠탑처럼 키가 큰 에일리언은 부천 고수 임흥기에게 두 점을 접히고서 잡아냈다. 이들이 한국바둑을 물로 알지는 않을까 슬슬 걱정(ㅎ).


▲첨 온 외국선수(에일리안-제레미)끼리 맞붙은 2라운드 경기. 사진에서도 엄청 열심히 두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테다. 


일찌감치 우승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로 나눠진 2라운드.


'거목' 나종훈이 원뿔(1+) 김동섭을 이겨 체면을 세운다. 뿔을 단 건 최근 들어 미추홀 성적이 탁월하다는 뜻인데, 그 김동섭을 제치고 1번다이의 체면을 세운 나종훈은 역시 프로.


'속사' 정대상은 인공지능 공부를 가장 많이 하지만 인간지능으로 승부하는 인간골락시 서부길에게 승리했다. 또 다른 원뿔(1+) 이철주는 팔뚝이 굵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라니과인 이용직에 이어 권영기까지 잠재우며 거뜬히 2승.


우승후보 박지웅이 이젠 그리 무겁지 않은 서중휘 프로를 뉘었고, 아시안페러게임 남자단체 우승자 임연식이 요즘 바둑이 깐깐해졌다는 평이었지만 작년 향수배 우승자 박휘재가 더 강했다. 


뜻밖의 인물도 강세다. 1레벨같은 2레벨 소재경도 만만찮은 윤명철 부천바둑협회장을, 한경남도 이승민을 제치며 2승 대열에 합류했다. 


▲곽계순-윤천준. 1승자끼리 대결인데, 모두 웃는 걸 보니 피차 만만해보이는 듯.


또 흥미로운 건 1승을 거둔 외국선수들은 2라운드에서는 공교롭게 서로 맞대결을 펼쳤다. 우리의 눈으로는 비슷한 동패인데, 그들은 또 라이벌 의식도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국무충리배 미국과 프랑스의 대결을 보는 듯 했는데, 그 결과 3레벨의 에일리언이 2레벨 제레미를 꺾었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으면 삐질 분이 있다. 매번 미추홀에 출전했지만 거의 초원 생태계의 가장 아래 단계에 위치해있어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윤천준이 2승 대결에 끼어 여러 초식에게 희망을 주었다. 


1라운드에서 박하진, 2라운드에서는 곽계순 등 여성선수들에게만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곽계순과의 승자조 대결에선 다 진 바둑을 곽계순이 5급 사활을 착각하는 바람에 운 좋은 승리를 거두었다.(승리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진짜 없다. … … 조금은 있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강자 이철주와 거목 나종훈.


나종훈 정대상 최준민 박지웅(이상 0레벨) 이철주 박휘재 박정윤(이상 1레벨) 소재경 윤천준 한경남(이상 2레벨) 에일리언(3레벨).


이제 44명 중 11명이 2승이다.  


3라운드에서 사자 호랭이과 0레벨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먼저 프로들이 모두 자빠진다. 거목 나종훈은 뚜뿔을 달고 싶은 최강시니어 이철주에게 패했고, 조용한 강자 박휘재도 정대상을 돌려세우고 결승에 오른다. 


프로보다 강하다는 평을 듣는 주니어 박지웅과 최준민은 에일리언과 윤천준에게 석 점, 두 점을 접으며 말한다. '여러분들은 여기까지'.


화성 소재경이 의왕 박정윤에게 정선으로 이겨낸 건 근육이 붙은 임팔라의 뒷발차기라고 하겠지만, 사실 그도 무진장 인공지능 공부를 하는 모범생이다.


▲오늘의 히어로는 단연 박휘재가 아닐까. 서중휘 프로를 제압하고 3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결승. 여기까지 올라온 이철주 박휘재 소재경 박지웅 최준민 등 5명의 선수와 3라운드에서 1패자 조커로 활약하며 한경남을 꺼꾸러트린 서중휘 프로가 또 한 번 조커로 나섰다. 


대진은 이철주-소재경, 박지웅-최준민, 박휘재-서중휘. '이거 1패자가 결승진출자보다 더 강하니…'. 머, 추첨으로 상대를 골랐으니 할 말은 없을 게다. 


슈퍼시니어 이철주는 소재경을 비교적 쉽게 뉘었던지, 찐기자가 사진 찍으러 몇바퀴 돌고 나니 판을 쓸었나 보다. 이철주를 힐끗 보니 그저 싱글싱글.


이제 이철주는 영광의 월계관 ‘투뿔(++)’을 달게 된다. 투뿔이면 덤이 추가로 6개니까, 거의 0레벨로 싸워야 한다. 이철주는 그래도 강할 것이다. 뭐, 평생 녹용을 이고 사는 사슴도 있는데 투뿔 정도야. 


결승에서는 이변이 없는 법인데, 박휘재가 우승했다는 건 이변. 일단 거의 주니어급 프로 서중휘에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정선으로 시니어아마가 주니어급프로에게 승리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매치가 성립한다해도 베팅은 서중휘에게 할 정도.  


박휘재는 “이 맛에 미추홀에 출전한다. 미추홀에서 우승한 지 한 3년 되었나 보다. 당시 조한승 프로를 이기고 우승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는데, 자신이 젊은 프로를 종종 잡는다는 자랑으로 들린다. 


▲우승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바둑청년 최준민-박지웅(승). 


끝으로 무대 중앙에서 메인이벤트 경기를 벌였던 박지웅-최준민 전은 다수의 예상대로 KBF리거 박지웅이 승리했다. 


둘 다 일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바둑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최준민은 과거 인천지역 연구생이었지만 거의 잊혀졌다가, 수삼년전부터 바둑돌을 다시 잡기 시작한 열정적인 바둑청년으로, 조만간 미추홀에서 우승트로피를 들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박지웅 박휘재 이철주가 2024년 새해 첫 미추홀에서 영광의 우승을 차지한다.


준우승은 소재경 최준민, 그리고 3승상은 임춘기 정대상 서부길 윤천준 임사무엘 제레미 임형섭 한경남이다.


'그래봤자 고라니라고', 평소 마구 놀려먹었던 윤천준 변호사가 고수 박정윤을 이기고 값진 3승상을 받았단다. 3승상은 무려 4년만이라고 한다. 


아, 진짜 훌륭합니다. 평소 후덕한 인품의 소유자신데 담달엔 점심 거르고 가겠습니다.^^









▲여태 들어 본 환영사 가운데 가장 알찼다는 평을 들은 김종화 대회장의 환영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두화 총무, 김종화 대회장, 최병덕 미추홀기우회장, 현명덕 총괄진행.


▲"100회 미추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때까지 꼭 전국대회 우승 한번 씩 하시길 바랍니다."(최병덕 미추홀기우회장) 


▲곽계순(승)-김성중.


▲곽계순.


▲최준민(승)-임사무엘.


▲둘 다 웃음을 참는 모습은 아마도 피차 손쉬운 상대라는 뜻?. 윤천준(승)-박하진.


▲윤천준.


▲에일이언(프랑스)와 제레미(미국).


▲프랑스의 자랑 에펠탑처럼 장신의 에일리언과 동양계인 제레미(22)는 꺼꾸리와 장다리. 


▲이들의 사부는 바로 조혜연 프로.


▲임연식(승)-김미애.


▲이용직-최병덕.


▲인천바둑협회장 최병덕은 첫판에서 불의의 1집패를 당하는 바람에 거함 이철주와의 경기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푸념했다. 담에 이철주와 겨루십시오!(그러기 위해선 첫판부터 이겨야 하는데....)


▲마치 그 얘길 들은 듯 이철주가 웃고 있다. 이철주(승)-권영기.


▲에일리언(승)-제레미.


▲박한필의 부모님이 미추홀대회장을 방문하여 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엄마 아벨라카렌 씨는 필리핀바둑협회장이 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큰 바둑대회도 준비중에 있어서 견학차 미추홀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아빠 박한규 씨가 밝혔다.


▲인천바둑의 유망주 선후배끼리. 박한필(승)-이건우.


▲한경남(승)-이승민.


▲윤명철-박정윤(승).


▲곽계순-윤천준(승). 피차 만나서 즐거웠던 분끼리의 격전이 끝나고. 이들은 모두 인천바둑협회 부회장님들이다. 서 있는 서부길도.


▲에일리언이 강적 박지웅을 만나 석점 바둑으로 패했다.


▲드디어 김종화 대회장이 승리하는 순간을 촬영했다. (대 박하진) '이기 뭐시라고', 밀림에서 사자무리를 몰래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참 어려운 촬영이었다.   


▲김종화대회장은 대회 개막에서 공부하고 미추홀에 출전해야 한다. 전 오늘을 위해 기보 5판을 놓았다고 자랑. '담부터는 50판 놓아보고 오세요~!'


▲박휘재(승)-정대상.


▲우승판 이철주(승)-소재경.


▲역시 결승판 최준민-박지웅. 찐한 승부의 뒤안은 손가락복기다.  


▲수고하셨습니다. 3승상. 장두화 최병덕 김종화 임사무엘 임춘기 정대상 서부길 윤천준 한경남(숨지마요~) 제레미 임형섭 곽계순. 


▲준우승 시상. 장두화 최병덕, 최준민 소재경, 곽계순 김종화.


▲우승 시상. 장두화 최병덕, 이철주 박휘재 박지웅, 김종화.


▲행운상 시상. 장두화 최병덕 김미애 서부길 임흥기 김동섭 김성중 김종화.


▲행운대상 시상. 장두화 최병덕, 두 판이나 조커로서 활약한 서중휘 프로가 복을 받았다. 김종화.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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