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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9-14 22:58:51
  • 수정 2023-09-14 23: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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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원.


날고 기는 승부사들의 바둑을 보노라면 미세한 한줄기 ‘기’(기술이든 기력이든) 차이로 승패가 갈라지고, 그 미세한 갭은 하 세월을 노력해도 뒤집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둑은 외적 요인에 의한 ‘우연’이 결부되는 경우가 적고, 오로지 개인의 지력으로 승부하기에 '이변'이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대소의 전국대회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도 정해진 소수가 차지하게 된다.   


지금 프로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들도, 아마시절 그 많고 많은 전국대회에서 우승 한번 못해본 이가 수두룩하다면 수긍이 될까. 동호인이나 엘리트나 그가 바둑 선수라면 전국대회에서 우승컵 한번 들어 올리는 것이 꿈이다.


올 가을 첫 전국대회였던 김삿갓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흔히 '주니어부'라고 하는 아마최강부에서 어지간한 마니아 팬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이름 홍성원(28)이 우승했다. 


▲김삿갓배 결승 종국 장면, 김동한-홍성원(승). 


‘홍성원이 누구?’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전국대회 우승 요건은 이렇다. 일단 프로 빰치는 연구생 출신(그것도 1조 출신)이어야 하고, 당연히 내셔널리거(KBF리거)일 테고, 48위까지 기록되어 있는 대한바둑협회 선수랭킹에는 비교적 상위권에 속해있을 것. 


뭐, 대개 이런 정도일진대, 랭킹48위에 속하지 않는 '무명' 홍성원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혹시 삼류 대회에서?’ 


홍근영 송민혁 박승현 조성빈 정우진 김동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즐비했던 김삿갓배는 A급 대회가 분명하다. 


24명의 정예 선수들이 출전한 김삿갓배에서 윤남기 안상범 홍근영 그리고 김동한을 거푸 꺾고 홍성원이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윤남기는 홍성원이 어릴 적부터 경외의 눈으로 바라봤던 연구생 선배로 이미 많은 우승을 차지했던 노련한 선수요, 안상범은 인천지역 연구생 톱이며 바둑고 에이스. 또한 홍근영은 내셔널에서 잔뼈가 굵은 이름값으로는 최고 레벨이다. 그리고 결승에서 만난 김동한은 지금도 꾸준히 전국대회 8강 언저리를 맴도는 초강자. 


기자는 이 네 명과 홍성원이 다시 겨룬다고 해도 모두 그들에게 표를 던질 만큼 홍성원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을 것이다. 


▲홍성원의 꿈이 익고 있는 바둑학원 모습. 각 반 선생님이 소수의 인원과 교습하고 있다. 


기자는 홍성원을 잘 안다. 10년쯤 전, 한국바둑리그 담당 기자로 일을 할 때 매일같이 프로들의 인터넷 중계 기보를 찍으러 오는 연구생이 있었다. 


기자를 볼 때마다 웃는 얼굴로 싹싹하게 인사를 넙죽 건네던 연구생으로 기억한다. 프로들의 경기를 직접 보면서(공부하면서) 그들의 기보를 찍으며 보람을 느낀다던 알바 연구생이 홍성원이었다.  


수년 후 그는 높은 프로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제대 이후 지금까지도 인사성 밝은 그를 현장에서 자주 대한다. 


그는 요즘 후학을 지도한단다. 통상 그 또래는 사범일을 하는데, 홍성원은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원장샘 역할이 어느덧 5년이나 된다고 한다. 


요즘 젊은 원장샘이 꽤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28세에 5년 경력의 원장샘은 드물 것이다. 더욱이 후학 지도와 전국구 선수로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사연을 들어보지 않을 손가. 


그의 길지 않은 20여년의 바둑인생을 한번 쯤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기에, 그의 터전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아담한 학원을 찾았다. 그림처럼 말끔한 아파트들로 가득 찬 위례 신도시였다.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 881 (위례광장로 188) 아이온스퀘어 8층 이세돌바둑학원


▲학원에 들어서자 많은 상장과 트로피와 사진과 기념품이 홍성원의 바둑인생을 요약해주고 있다. 그가 가르키는 건 2022 국제페어바둑선수권(일본)에서 김지수와 짝을 이뤄 우승을 차지했던 핸디캡토너먼트 상장.


  

언제부터 바둑을 접했고, 가족 중에 바둑을 잘 두는 분이 계셨나?

경북 안동에서 다섯 살 때 바둑학원을 다녔다. (김)민석이 아버님이 경영하시는 학원이었는데, 그곳에서 스타가 좀 나왔다(웃음) 민석이, 저, 그리고 임상규가 다녔다. ‘실력 초급, 관전 9단’인 아버님이 바둑은 어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취미라고 해서 바둑을 배웠다. 바둑은 역시 마력이 있었고, 초등3년 무렵 대구 경북 일원에서는 제일 셌다. 타이젬 4단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그해 여름 서울 '이상훈 도장'을 찾았다. 아버님이 검색을 통해 '이세돌의 형'이라는 소개에 끌려서 찾은 도장이었다.


연구생 생활은 어땠나?  

초등6~중2는 전성기였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 중에서) 오성과한음배에서 5학년 때 신민준을 이기고 우승했고, 건화배 초등최강부에서 준우승도 했다. 연구생은 지금으로 치자면 3조 정도까지 한 것 같다. 바둑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 같았는데, 그 순간 또 잊어버리고 있었던 학업에도 열중했다. 분주했다.(웃음)


바둑으로 얻은 게 있나? 입단을 못했으니 실패한 바둑수업이었나? 

모든 걸 다 얻었다. 첫째 바둑을 좋아하고, 어려울 때 헤쳐 나가는 힘도 바둑에서 배웠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덕목도 바둑에서 배웠다. 바둑으로 알게 된 친구들도 너무 좋고 바둑을 가르치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즐겁다. 사실 어렸을 때 선생님이 꿈이었다.


이른 나이에 원장샘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입단엔 실패했지만 바둑두는 것과 바둑일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교육자인 아버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외동아들임에도, 하고 싶은 것 하라고 주문하셨고, (프로로서) 승부가 안 된다고 낙오자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히딩크처럼 직접 공을 잘 차지않아도 자기 몫을 잘 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했다. 용기를 얻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2018년 24살 때 지금 이 학원을 차렸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니 6년차 원장샘이다.(웃음). 국공립 유치원 교육에 25년간 종사했던 어머님의 '바닥 닦기부터 하라'는 조언도 큰 힘이 되었다. 명지대 자연사회교육원을 수료하며 전문학사를 딴 것도 이즘이었다.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교수법이랄까? 어떻게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을 텐데. 

사범은 기술적인 면을 가르치며 원장은 통합적인 면을 가르치게 된다. 당연히 내가 배웠을 때 기억을 되살려서, 비효율적이었던 부분(예를 들면, 기보 외우고 사활풀고 복기하는 틀에 박힌 도장식 수업)을 버리고, 한 선생님이 4명의 소수인원만 가르치도록 하게 한다. 그것은 개인과 면담을 자주 하고 심리 상담을 자주 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실제적으로는 개인맞춤교육을 실시하는 게 요지다. 자세반, 생각반, 집중반, 영재선수반으로 나눠서 교육한다. 즐겁게 바둑을 두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내가 가르치고 다시 배웁니다!' 양재영(초등4) 정재인(초등6) 두 유망주 제자와 함께 한 홍성원 원장. 


다시, 선수 홍성원 얘기. 연구생을 나오고 난 후 대회엔 자주 안 보이던데, 최근엔 잦다.

2016년 광주시장배, 2016년 포항영일만사랑배 4강에 들었다. 그 후 지난번 3.15배에서 잠시 놀래켰고(당시 스위스리그에서 3승1패의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이번에 김삿갓배 우승이다. 연구생을 갓 나온 뒤부터 전국체전 선수로 뛰었고, 제대한 이후 18,19년 경남 소속으로 금메달을 연속 따냈다. 올해도 경남인데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우승 축하전화한 분도 경남 감독님이셨다. 


정상급 선수들과 겨뤄보니 어떻던가?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맘 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언젠가 김지석 프로의 글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는 바둑 둘 때 상대에게 감사한 맘을 가지고 둔다고 했다. 참 쉬운 말인데,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운 말이었다. 그간 나는 상대를 꺾어야겠다는 맘이 가득했다. 지방대회에 가면 비용이 얼마드는 데 상금을 얼마는 따야 한다는 식의 생각으로 가득찼었다. 그러면 얻어야 하고, 그래서 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일종의 중압감인데 그것은 잡념을 불러오고 긴장을 불어왔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 최근에 성적이 조금 좋은 것도 아이들과 교학상장(敎學相長)하며 터득한 두뇌힐링과 감사한 맘을 깊이 간직한 것이 첩경이었던 것 같다.  


올해 목표로 하는 바둑성적은?

바둑은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둑선수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한판의 바둑에 임한다. 일단은 전국체전 잘하여 금메달을 3개 째 획득하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 

바둑을 두는 동안 생각이 많으면 안된다. 바둑 둘 때 만큼은 몰입하게 되고 잡념을 잊게 하고 리셋이 되야 한다. 바둑이 수학이나 영어처럼 꼭 배워야 하는 과목은 아니지만 하나의 필수도구라고 생각한다. 바둑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고 바둑도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건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학원운영이나 관리 그리고 아이들 케어로 고생하는 어머니 조정숙 대표님과 조국환 충암원장님,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바둑외적인 점에서 도움을 많이 준 이상훈 이세돌 사범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바둑의 꿈, 학원의 꿈을 함께 이루는 사람들. 김정훈, 홍성원, 조정숙, 나세희, 김사우. 선생님들의 가슴에 명찰을 한 모습이 아이들에 대한 정성과 책임감을 나타내는 듯.  


홍성원이 첫 우승을 달성한 김삿갓배 결승 대국을 K바둑에서 녹화중계를 하는 모양이었다. 당시 담당 PD가 두 선수에게 간단한 이력을 써달라며 작은 메모장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대국각오를 적는 란이 있었는데, 홍성원은 그 칸에다 “감사합니다”를 적었다.(아래 참조) 


‘왜 감사해?’ ‘뭘 감사해?’


혹시 적을 말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우스갯소리로 했을까. 

당연히 그 이유를 나중 물었다. 


“모든 게 감사하잖아요. 제가 (김)동한이 형과 결승대결을 하는 것도 감사하고 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도 감사하고 즐겁게 바둑 인생을 살게 된 것도 감사하고....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이 청년이 늘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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