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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5 01:20:44
  • 수정 2022-05-25 06: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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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간 바둑교육에 앞장섰던 강릉바둑의 간판 배희선 원장이 최근 카페 ‘바체프’을 열었다. 바체프 내부 벽면에는 바둑 체스 유물이 다량 전시되어 있다.


즐비한 한중일 유명기사의 사인과 휘호가 들어간 바둑판과 부채들.
한 눈에 100년은 훌쩍 넘길 것 같은 희귀 기서(棋書).
그리고 오로(烏鷺), 난가(爛柯), 상산사호(商山四皓), 죽림칠현(竹林七賢) 등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기화(棋畵)들…


산을 무척 좋아했던 소년은 설악의 웅혼을 벗 삼아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겨했고 급기야 운명처럼 바둑 맛을 알게 된다. 청년이 되었어도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바둑의 마력에 점차 빠져들었고, 결국 그는 바둑지도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36년 세월이 후딱 흘러가버린다.


강릉 터줏대감 배희선이 1986년 바둑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시작된, 진품명품을 수집하고 사들인 건 40년 된 업(業)이다. 

 

▲카페 바체프는 바둑과 체스와 미니골프를 결합한 신개념 페밀리 레저스포츠로 인기가 드높다. 


그런 배희선 원장이 36년간 열성을 다했던 바둑교육을 뒤로 하고 카페의 주인장이 되어 제2의 삶을 개시했단다. ‘카페? 치킨집 다음으로 흔한 게 카페라는데 그게 무슨 대수?’


그냥 카페일 리 없다. 배원장은 전공인 바둑과 부전공 체스와 미니골프를 접목한 패밀리스포츠 ‘바체프’라는 신 영역을 만들었다. 바둑·체스·골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바체프’. 영어로는 bachef. 


카페 바체프에서는 바둑과 체스도 즐기고 미니골프도 즐길 수 있고, 바둑 체스 보물들을 감상하며 근사한 차도 마실 수 있다. 카페 바체프엔 바둑과 체스와 필드가 있고 역사와 전통도 함께 한다.


해가 적당히 따가운 늦은 오후. 강릉명소 오죽헌이 바라보이는 길목에서 바체프가 자랑하는 수제 구기쌍화차를 맛보면서 인생 제2막을 개시한 배희선 원장을 마주했다. 기자가 가장 먼저 찾아온 바둑친구란다. 


강릉 출생으로 1997년 제1회 전국원장바둑대회를 비롯해 강원대회에서 다수 우승했으며, 강릉에서 1986년부터 어린이전문 최고수바둑학원을 36년간 운영해온 배희선(64) 원장. 


그는 '산이 부르면 간다’(2006년) ‘강원도 동해안을 가다’(2009년) ‘강원도 청정고을에 가다’(2010년) 바둑자전소설 ‘바둑다모여’(2018년)에 이어 후속 ‘수락석출’(2020년)을 출간한 바둑계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비록 미니지만 퍼팅골프장은 18홀을 갖추고 있다.  바로 골프장 너머가 오죽헌이다.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카페도 되고, 많은 바둑 체스 유물들이 있으니 작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되고, 또 기원도 되고 골프장도 되겠죠. 여기 강릉엔 명소들이 많으니까 오며 가며 반나절 정도 들러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강릉지역 최초의 바둑교실 원장이며 36년간 유소년 바둑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강릉바둑의 산증인이 카페 주인장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1년 넘게 준비기간이었습니다. 바둑교육엔 인생의 절반을 바쳤는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3년 전부터는 배원장은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고 부인도 와인 전문서비스를 위해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단다. 이 '박물관 카페'를 열기 위해 나름 충분한 준비가 있었던 셈.


그가 카페를 연 가장 큰 이유는 바둑 체스 유물 때문이다. 그가 40년 가까이 소장해 온 바둑과 체스의 유물이 너무 많아져서 이젠 아파트에서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 


그래서 생각한 것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게 하자는 결정을 내린다. 대중에게 관람하게 해서 그 풍요로움을 대중이 함께 누리자는 근사한 목적이었다.
 

▲ 바둑 체스 관련 귀중품 골동품들이 바체프 내부에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다. 


50평 카페 내부 높은 곳까지 진열해있고 아직도 남은 유물은 아파트에 모셔 두었단다. 


과연 언제부터 이 귀중한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을까. 바둑을 알기 시작한 때부터라니 40여 년간 틈틈이 수집했다. 원래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책을 무던히 아꼈던 배원장은 다 읽은 바둑책 한 권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애틋함 위에서 바둑이든 체스든 고귀한 정신문화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귀한 물건이 나오면 1박2일을 대기해서라도 구매했고, 해외 경매 사이트도 섭렵하면서 닥치는 대로 모았다. 오로, 난가 등 귀한 그림들은 일본 미국 경매사이트에서 구입하기도 했고, 일부 품목은 해외여행 때 사가지고 들어오기도 했다. 


외국경매의 경우 물건이 나올 때 한 묶음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그걸 저렴하게 사서 덜 필요한 물건이나 더욱 필요한 분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무슨 돈으로 해결했을까. 바둑학원 수입과 경매 용품 되팔기로 얻는 수입. 그리고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서 얻은 상금 등 거의 모든 수입을 다 투자했단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하나. 한국바둑이 세계최강에 올라선 지 십 수 년 째 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바둑문화는 보잘 것이 없다. 문화가 보잘 것 없는게 아니라 문화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일본 중국을 방문하다보면 그들의 바둑전통이 잘 보존되어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낯이 뜨거울 지경. 아마 배원장같은 분들의 각고의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인다면 조만간 바둑박물관이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먼저 즐거워해요. 이 가족들은 지난 번 바체프에 왔다가 너무 재미있었다며 다시 방문한 케이스에요. 가족 간 세대 간 융화는 절로 됩니다." 가족단위로 바체프에서 미니골프를 즐기고 있는 모습.


다시 바체프로 관심을 이동하자. 바둑 체스 골프 바체프는 가족 레저스포츠로 반응이 뜨겁다. 바둑과 체스는 잘 아실 테니까 생략하고, 퍼터만으로 18홀 코스를 돌 수 있는 미니골프가 핵심이다. 아기자기한 미니골프는 해외에서는 저변확대가 꽤 되어 있는 인기 스포츠다. 골프와 미니골프의 차이는 축구와 풋살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바체프는 두뇌스포츠인 바둑 체스와 신체스포츠인 골프를 동시에 즐기면서 체험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바둑학원처럼 수강생들도 있을까. 5월에 개장한 바체프에서는 벌써 체험학습 코스에 10여명의 수강생들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선 학교장을 초대해서 바체프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보급에 열중하려는 계획이라고 배원장은 귀띔.


“강릉에 카페가 1000여개가 넘어요. 카페만해서는 안되죠. 그곳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죠.” 배원장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배원장은 바체프의 영업이 그럭저럭 된다면 전국유치부 바둑체스대회를 강릉에서 1년에 한번씩 꾸준히 개최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참가자 가족들이 희귀한 바둑 체스 전시품도 관람하고 미니골프도 즐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한다.   . 


오죽헌에서 1분 거리에 있다. 

바둑판 메고 갈 필요 없다. 골프채 챙길 필요도 없다. 

수제 구기쌍화차향에 취하고 솔향 꽃향에 취하는 강릉바둑의 명소 바체프를 꼭 한번 들러보심이 어떠할 지. 


카페 바체스 : 033)642-9362
찾아가는 길 : 강릉시 죽헌길44번길 17-2
배희선 : 010-5363-9362


▲ 바체프의 시그니처 메뉴는 수제 구기쌍화차이며 뜨겁게 마셔도 좋고 차게 마셔도 좋다고 .


※바체프에서 소장중인 귀한 보물은 별도 기사로 시리즈로 다루겠습니다. 


 

배희선(64) 이력


1986년 강원도 최초 최고수바둑학원 개원
1989년 제20회 강원아마바둑최고수전 우승
1995년 제1회 강원바둑대찬치 우승
1997년 제1회 전국원장바둑대회 우승(6단 승단)
2001년 제1회 강릉MBC배 강원바둑대회 우승
2007년 제5회 강원도지사배 바둑대회 우승

한국기원 최우수지도자상 수상
공인 아마6단
공인 2급 바둑지도사


저서
2006년 산이 부르면 간다
2009년 강원도 동해안을 가다
2010년 강원도 청정고을에 가다
2018년 자전바둑소설 “바둑 다 모여”
2020년 자전바둑소설 “수락석출”


수상

2019년 대한바둑협회 바둑아이디어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19년 제12회 전국민 잡지 읽기 공모전 특별상(국립중앙도서관장상) 수상




                Cafe bachef         배희선


투명한 속살 다 드러낸 강릉 바다 그대
설움 담긴 속내 모두 쏟아내 실컷 울어요
그 눈물 먹구름으로 비가 되어 내리면
산으로 호수로 이 바다에 맞닿을 거야
어찌할지 모를 때 나타난 도깨비처럼
그대 의심 걷어 내리라
거친 담장 질박한 그림처럼 살았지만
작지만 소중한 하나둘 찾아들 거야


그대 그때쯤 가시연꽃으로
습지에서 고결한 아름다움 불사르는
멀리 날다 되돌아와 지친 철새 쉬는
그 자리 지키는 텃새가 반겨주는 그대
거친 담장 질박한 그림처럼 살았지만
작지만 소중한 하나둘 찾아들 거야


타이타닉호 침몰시간 알리는 회중시계는
살아있음에 깊은 사유에서 큰 울림으로
거친 숨 몰아쉬며 높이 날아도
가시연꽃도 철새도 텃새도 자기만의 삶 그대
신사임당 초충도 풀벌레의 대화에서
율곡의 격몽요결에서 스스로 다스리고
백 년의 금강소나무 숲에서 숨을 길게 마셔요


가슴으로 얼음덩이가 빗물처럼 흐르는 날 그대여
바둑과 체스의 심오한 지혜 파릇이 돋아나고
커피의 산미가 은은히 물결치는 Cafe bachef
여기 미래행복 솔솔 다가오는 쌍화차 한잔해요.



▲1번 홀에서 바라본 카페 바체스의 필드.


▲배희선 원장이 야외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릉최고수의 포스가 나온다.   


▲골프를 즐긴 가족들이 짝을 맞춰 바둑(오목 같음^^)과 체스를 즐기고 있다.


▲36년을 이어온 강릉 최초의 최고수바둑교실 현판도 지금은 귀중한 유물이다.  


▲산과 여행을 좋아했던 배희선 원장은 2006년부터 총 5권의 여행산문집, 자전바둑소설을 썼다.


▲부부의 카페. 3년전부터 부인 남순희 씨는 상담심리사 출강을 하면서도 틈틈이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고, 배희선 원장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30개국에서 구입한 체스용품도 다양하다.


▲ 전시 족자의 일부. 까마귀와 백로-오로(烏鷺), 왕질(王質)의 난가(爛柯). 죽림칠현(竹林七賢).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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