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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0 04:17:55
  • 수정 2022-03-20 07: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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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봄을 몰고 올라가겠습니다!'  제주나들이에 출전한 바둑친구들이 한데 어울려 기념촬영을 했다. 


바둑이 좋다. 친구가 좋다. 바둑친구는 더더욱 좋다!


달력으로는 이미 완연한 봄이지만 겨우내 살갗인양 익숙한 패딩점퍼가 아직 세탁소에 들어가질 않았다면 여전히 늦겨울이다. 봄이 먼저 오는 남쪽나라에서는 철보다 계절이 앞서 간다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우중제주(雨中濟州)-. 

작년 이맘때도 비가 내렸다. 비올 줄 알고 찾은 것도 있다. 지금 안 내리면 그게 어디 봄빈가? 제주 비는 맞아도 싸다. 입 벌리고 먹어도 될 게다. 오늘 뭍에서는 꽃샘추위가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이고 보면, 제주니까 이 정도 온기라도 느낄 수 있음을 감지덕지해야할 판.


봄비가 전국을 살포시 적신 토요일. 안녕과 건강을 빌며 멋진 기우로서 피차 기억되고자 제주 하귀리엔 전국의 열성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19일 하귀리 밀양박씨 제주문중회관은 바둑남녀로 시끌벅적했다. 


▲메인 경기인 페어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가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길이라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끝이 보이기에 그래도 안심은 된다. 편치 않은 시절임에도 뭍에서 자비를 들여서 40명의 인원이 모인 건 열정이다. 집결호를 들고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인원을 점검해보자.  


오솔길도사 한철균 프로가 자신의 명저 '알파고도 감탄할 101가지 비법'을 들고 5년 만에 얼굴을 비췄고, 전직프로 김희중과 괴산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온 영원한 아마국수 박성균도 반갑다. 노사초배 우승으로 시니어랭킹1위를 거머쥔, 그래서 요즘 부쩍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는 심우섭 사범도 반가운 얼굴.  


전남 신안군청 소속 김종민은 주말부부 김애화와 그의 아들 김민을 대동하고 왔디. 붓글씨 명인 청산과 부인 달마당도 함께 했고, 푸른돌의 젊은 고수 옥정민과 왕지아닝도 부부동반이다. 푸른돌 골수 조병철과 최용호도 합류. 


덩치만 큰 게 아니고 맘도 큰 한돌기우회 김진필과 빨간 머리가 어울리는 박휘재. 그리고 제주에서는 과거 포천바둑협회장을 역임했던 류광현과 홍대표의 중학동창 고영하. 홍맑은샘의 초기 스승 이상명이 찾았다. 또 바둑일보 진재호도 취재빙자 꼽사리.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여맹 8인이 함께 했다. 유경아(광명) 김순득(군포) 곽계순(인천) 김영순(부산) 손병남 박순덕 정민숙(이상 수원) 이선화(용인). 


또한 18년을 한결같이 후원을 아끼지 않은 백규환 단장. 그리고 바둑과사람 행사 때마다 늘 음지에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승주 박진창 정우열 홍맑은비 박천금 박연숙 홍시범까지.


▲"제 사업이 망하지 않는 한 후원은 계속됩니다"고 하던 백규환 (주)인코 대표는 무려 18년이나 본 대회 후원을 이어오고 있는 바둑의인이다. 그는 어려울 때 이러한 가족적인 분위기의 대회가 끊어지지 않는 건 순전히 홍시범 대표의 공이 크고 가족 여러분의 참여 덕입니다. 


축제란 불꽃놀이가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고, 스스로 불꽃이 되는 게 축제다. ‘축제’가 부담스러우면 ‘잔치’라고 해도 되고, 그것도 불편하다면 그냥 소박하게 '나들이'라고 부르자. 그렇게 ‘제주나들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과거 아마7단 사범들이 바둑보급을 위해 야외지도기를 펼쳤던 길거리바둑축제라고 있었다. 그 역시 기획자였던 홍대표가 바둑계 선배 황원순에게 자신의 고향 제주에서도 길거리축제를 한번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황씨는 즉각 대학동기 바둑절친 백규환에게 '을 일 한번 하라'고 권유하면서 이 거대한 역사가 시작된다.  


‘운산과 함께 하는 제주나들이’는 예전 ‘인코배 바둑축제’, ‘서귀포 칠십리바둑축제’ 등 엇비슷한 대회 명으로 대회가 새로고침 하길 어언 18년. ‘운산(雲山)’은 이 행사를 지속가능하게 한 바둑의인 ㈜인코 백규환 대표의 아호. 잘 생긴 분이다.


제주나들이는 바둑동네를 아름답게 만들고자하는 몇몇 바둑오피니언들의 바둑여행이다. 참가비는 없고 참가자 수보다 상품 수가 더 많은 영락없는 시골운동회다.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은 바둑을 두면 되고, 콧김 쇠러 따라나섰던 분들은 그저 화투짝만 들고 있어도 돌아올 상품은 푸짐하다.


▲'이벤트의 제왕' 바둑과사람 홍시범 대표가 화투짝 당첨자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오후1시 정각. 


본 행사가 페어바둑인데 오프닝행사는 무려 40분이 걸린다. ‘프로 떠벌이’ 홍대표는 바로 40분 오프닝을 위해 1년 동안 거울 앞에서 숱한 연습을 반복했으리라. 


일단 진행도우미는 참여자들에게 즉석 복권을 2장씩 건넨다. 긁어 성공하면 상금을 두배로 준단다. 일순간 고요해진다. 평소 근엄하던 사범님도, 꼬맹이 아들과 대동한 아빠도, 단아한 미소가 자랑인 여맹들도 염치불구하고 복권긁기에 돌입한다. 체면이고 자시고가 없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이 바닥 뜬다"는 명 대사가 떠오를 만큼 열성적으로 긁더니, 곧 탄식과 환호가 섞여서 들려온다.


"이거 이억원 맞은 거야?"
(쳐다보지도 않고) "그림 중 3개가 맞아야 되는 거야. 2개 잖아"
"우와, 1000원 맞았다!"
"죽어! 난 5000원이야!"


▲뿐만 아니라 복권긁기가 실시되어 1인당 6장의 복권으로 행운이 주어지길 기대했다. 김희중 옥정민 조병철. 사진에 잡혔듯 조병철은 뭔가 당첨된 듯 유심히 다시 살펴보고 있고, 실제로 5000원이 당첨되었다.


바둑과사람 행사에서 복권긁기가 나온 건 2년만이다. 이번엔 금액이 좀 센 것으로 또 한번 두 장 씩을 준다. 다음엔 더 센 것으로 또 두 장이 주어졌다. 도합 6장씩 긁어대었으니 아마도 한번쯤은 당첨이 되었을 게다.


이때 당첨 복권과 교환된 ‘바사회화폐’가 또 쥑인다(‘바둑과사람’을 줄여서 바사회). 후원자 백규환 단장의 사진과 만원권 화폐 이미지를 합성한 건데, 물론 이건 아바사 행사에서 언제든지 와서 써도 되고, 또 원하면 현금으로 지급한다.


현금지금은 다음 화투짝 맞히기를 끝내고 이루어졌다. 화투짝을 출전들에게 두장씩 나눠주고 홍대표가 큰 화투를 임의로 들어보이면 자신이 갖고 있는 화투짝과 같은 숫자라면 당첨이다. 


이건 세다. 바로 맞으면 1만 원 권이 바로 간다. 화투짝을 개인 합계 6개씩 돌렸기에 운이 좋으면 5만원도 챙길 수 있다. 주최즉 바둑과사람은 같은 돈이라도 반가움과 기대감을 극대화할 줄 안다. 기자가 5만원을 환전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12월의 상징 '비'를 가진 전 선수들이 현금을 받기 위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배급줄을 서고 있다. 


한바탕 광풍이 지나가고 난 후, 대망의 메인 이벤트 바둑 페어대결. 남녀 구분없이 기력에 의거해서 페어를 정했다. 바둑에 남녀가 구별이 있을 쏜가. 다만 이기면 서너 개, 지면 두세 개의 상품이 주어진다. 그러나 경험으로는, 덜 받아간 사람들이 눈에 밟히니까 남은 상품을 또 그들에게 돌려줄테다. 결국 엎치나 메치나 똑같은 줄 알지만 승부는 승부. 


페어대결은 두 판이었는데, 두 판 모두 파트너를 교체하며 두도록 했다. 즐거운 분위기가 페어 잘못 만난 탓에 눈살 찌푸릴 일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주최 측의 심모원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2승을 거둔 사람은 잘도 찾아낸다. 


페어바둑은 짝이 고수일수록 승률이 높다. 그러나 여기서는 프로나 아마고수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하수님과 페어가 되므로 오히려 승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그 와중에도 한철균 김희중 같은 고수들은 역시 2승자의 반열에 들었다. 아까 말했듯 2승자 1승1패자 2패자의 구분조차도 정말 아무 소용없지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연신 웃음꽃이 사그러지질 않는다. 경기중엔 그토록 조용하더니 한판 두판 끝나자마자 비명과 탄식과 허탈함이 난무한다. 회한 가득한 복기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메인이벤트 페어대결. 한철균 유경아(승)-심우섭 김영순.


5시 정각.


시상식이다. 나들이의 시상식은 자체가 이벤트다. 제주나들이는 단상도 없고 단하도 없다. 으스대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다만 선물 퍼주는 홍시범 대표 1명은 좀 으스대긴 하지만서도, 선물을 주니까 용서가 된다.


이벤트에서도 탈락한 분은 또 행운권 추첨으로 아래 상품들을 만날 수 있고, 정히 또 하나 더 가지고 싶다면, 떼를 쓰면 얻을 수 있다. 


2승자, 1승1패자, 2패자 순으로 시상하는데, 한명 한명 모조리 앞으로 불러세우면서 시상한다. 가끔 앞서 수상했던 분이 시상하기도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상품은 제주벌꿀, 톳, 미역, 한방차, 제주수산물젓갈, 고등어세트. 한라봉 등 푸짐하다. 부부동반으로 품을 함께 벌려도 품지 못할 선물들을 가져간다. 


'이걸 들고 비행기를 어떻게 타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둑과사람은 이미 택배 주문까지 다 받아놓았단다. 역시 프로페셔널이다.


▲시상식의 한 장면. 바둑과사람 홍대표가 김종민 사범의 가족(김애화, 김민, 김종민)을 모두 나와 인사를 시키며 고등어세트를 행운상으로 선물했다. 홍대표의 손에 들린 것은 고등어세트 택배용 주소록. 


6시 정각. 


한 해의 시작을 풋풋하게 열어젖히며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 없는 사람에게까지 시작의 설렘을 선사하는 고마운 봄. 그 한 음절의 단어가 주는 가능성과 기대감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한다. 봄은 출발이며 희망이다. 따뜻한 제주로부터 바둑의 봄은 연신 북상중이다.


질퍽하게 대회를 마감하고 1km 떨어진 탑동 해변 소라횟집에서 출전자 전원이 만복(滿腹)할 때까지 또 복기가 이어졌다. 


짧은 소풍은 아쉽지만, 다음 만남 다른 만남이 있어니 충분히 견딜만한 거다.





▲제주 날씨가 좋지 않아 대회 당일은 바깥출입이 제한되었다. 사진은 1번 게이트에서 본 제주공항의 바깥 풍경.


▲'너무 박박 긁는 것 아닙니까? 이러다 바둑판 뚫겠습니다!' 유경아 박순덕-백규환 정민숙.


▲김진필 심우섭. '나와라 돈!'


▲점잖은 분들도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한철균 곽계순.


▲종친회 건물을 임대해 주신 박창배 사무국장도 '이번 일만 잘 되면 이 생활 끝이야!'를 외치며 정성을 다해 긁어댄다. 


▲많은 액수가 당첨이 안 되길 참 잘했다. 이 좋은 친구들을 잃을까봐 하늘이 내린 결정이라 믿어야지. 박성균이 복권을 쳐다보고 있다.


▲복권의 행운을 두배로 드립니다! 


▲화투짝 맞히기. '이번엔 조커가 나왔네요.'


▲'검은 돈의 실체는?' 즉시 환전이 증시 가능하다. 이승주 김진필.


▲'이 정도면 일확천금이죠?' 40분동안 3만4000원, 2만2000원을 번 부자는 부자지간. 김민은 7세때 SBS영재발굴단 바둑영재편에 출연하여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년.


▲ 이제 메인 이벤트의 시간. 페어대진 추첨에 나선 류광현. 도우미는 정우열 박진창.


▲ 한철균-유경자.


▲ 박장우 류광현-박순덕 청산. 


▲ 홍대표의 중학동창인 고영하와 김희중-첫 출전한 정민숙 백규환 조합.


▲ 선수 겸 사진작가로 활약한 이선화.


▲ 틈틈이 동영상 촬영도 도맡아서 하는 이선화.


▲수원 대모 손병남.

 

▲스타일리스트 부산 김영순과 심우섭.


▲대국 개시 후 45분이 지나면 일제히 작전타임이 주어진다. 타징은 바둑과사람의 박연숙 실장


▲작전시간에는 주장이 전체적인 형세판단을 파트너에게 해주며 사활을 조심할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최강조합 옥정민 곽계순.


▲여성바둑의 강자 군포 김순득.


▲고스톱 열전. 박진창 박연숙 나미희 최용호. 바닥에 있는 바둑알이 칩 대용이다.  


▲청산의 부인 달마당 나미희.  포스는 고스톱의 달인.


▲박순덕+청산. 


▲박성균+손병남.


▲'아빠와 함께라면~!' 김민(11)의 날카로운 눈매. 6세 때 실력이 초등2년 정도였던 김민은 한때 바둑을 미워했지만 지금은 간간이 취미로 즐긴다고. 


▲김영순+박장우.


▲한철균바둑교실? 한철균 프로가 초반 포석 강의를 하고 있다. 한철균 유경아 정민숙 김영순 박순덕.


▲이 분이 등장하는 걸 보니 라스트 이벤트 시상식이 거행된다. 바둑과 사람 홍시범 대표는 특별한 멘트를 먼저 날린다. "어제 일본 최고봉에 오른 이치리키 료를 키운 스승이 제 아들 홍맑은샘입니다. 공교롭게 일본으로 건너간 지 18년째며 우리 제주축제도 18년 째입니다." 일본기성전에서 이야마유타를 이기고 이치리키 료가 우승했다.


▲첫 참가한 박순덕은 소감에서 "앞으로는 좋은 일에 기부하도록 고려하겠습니다." 고 말했다.


▲역시 첫 출전한 정민숙도 "맘을 넓게 쓰는 분이 많아서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맘이 든다. 앞으로 좋은 분들과 늘 함께 하겠다." 소감을 밝혔다.


▲홍대표가 중학동창 박창배 종친회 사무국장에게 부조금을 공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공개하지 않으면 안 받을 것 같았다고.


▲옥정민 왕지아닝 부부도 고등어세트를 특별상으로 받았다. 

 

▲홍시범 대표의 부인 박천금에게 많은 상품을 전달하고 있다. 시상엔 백규환. 


▲2승자 시상. 한철균 곽계순 조병철.


▲보이지 않게 많은 바둑기부를 실천하는 수원대모 손병남에게 많은 선물이 주어졌다. 


▲'우리가 봄을 몰고 바둑의 시작을 알립니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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