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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9 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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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명문으로 자리잡은 서울푸른돌 채영석 감독.

 

김정우, 김성래, 김형섭, 박장우, 김세현 등 그 이름 영롱한 대학바둑의 강호들이 1983년 2월 ‘푸른돌’이라는 대학연합바둑동아리를 조직했다. 정말 순수하게 바둑을 열심히 두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난 청춘들이 지금까지 바둑 우정을 나누고 있으니 30년을 훌쩍 넘긴 바둑친구들이다.

 

80년대 대학바둑은 아마정상과 동격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입단대회 본선을 누볐고 전국대회 우승도 대학 강호가 심심찮게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들 중 김성래는 결국 입단에 성공했고 김정우와 김세현은 한때 프로보다 보기 드물었던 아마7단이었다.

 

처음엔 서강대, 연세대, 홍익대 등 대학들이 즐비했던 신촌 마포기원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그들만의 리그전을 치르던 것이 푸른돌의 역사가 된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장소를 신촌에서 압구정기원으로 옮겼고 모임을 한 달에 한번에서 석 달에 한 번꼴로 줄였다. 다들 사회 속 주축이 된 나이여서 모이기 쉽지 않아서다. 그 대신 꼭 모인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푸른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푸름으로 바둑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팀원들과 페어바둑을 두며 늘 호흡을 같이 하며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채영석 감독(오른쪽). 

 

‘서울푸른돌’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순전히 내셔널리그 덕이다. 직장 또는 지자체가 대부분인 내셔널리그에 5년 전 푸른돌이란 기우회가 들어온다고 해서 받아주어야 하는 지로 상당히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내셔널 구단을 운영하려면 돈도 적당히 드는 지라, ‘청춘’ 푸른돌이 감당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게 일반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늘 푸르름으로 일약 최강팀으로 부상하게 된 데는 서울푸른돌 채영석 감독의 공이 크다. 연세대 85학번인 채 감독은 의류업계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가 푸른돌의 사령탑을 맡은 4년 동안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서울푸른돌은 내셔널 4회 출전에 2회 우승을 차지했고 4회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일약 내셔널명문가에 이름을 턱 올린다.

 

채 감독은 첫 출전부터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무려 18개 팀이 우승을 향해 정 조준하는 리그에서 4번 중 2번 우승이란 엄청난 확률을 뚫은 것이다. 9년의 내셔널리그 역사를 다 뒤져도 두 번 우승을 한 예조차 서울푸른돌이 유일하다.

 

더 대단한 건 첫 우승 이후 박주민과 강지범, 두 번째 우승 직후 김희수와 윤현빈이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선수로서는 경사지만 팀으로서는 키워놓은 선수가 떠나버리니 낭패이기도 했다. 채 감독은 매년 선수수급에 애를 먹으면서도 푸른돌이라는 항아리를 늘 깨끗한 물로 채웠다.

 

용기가 깨끗하기에 담긴 물은 자정 능력이 생긴 것일까. 서울푸른돌에 몸담은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는 기현상은 매년 이어졌다. 조남균(2019년), 윤성식(2020년)도 잇따라 입단했다. 그러니까 매년 1~2명의 프로 입단자를 배출한 셈이다. 이쯤 되면 서울푸른돌에 입단(入團)하는 것이 곧 입단(入段)의 지름길이란 등식이 만들어질 수밖에.

 

대우를 잘해줘서 좋은 재목들이 몰려든 건 아닐까. 채 감독은 큰 소리로 말한다. “좋은 재목인 건 맞지만, 남들처럼 많은 대우를 해주는 건 결코 아닙니다. 선수들이나 푸른돌 회원이나 열정 하나로 의기투합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죠. 지금도 입단한 친구들과도 여전히 교류하고 그들도 푸른돌의 승리를 늘 기원합니다.” 

 

▲ '푸른돌'은 결성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서울 압구정기원에 모여서 바둑으로 열정을 불태운다. 왼쪽에서 둘째 넷째 줄이 서울푸른돌 선수단.

  

아마 이런 분위기 탓일까. 푸른돌은 내셔널리그 뿐 아니라 루키리그 프로암리그 등에서도 빠지지 않고 팀을 결성했고 그 역시 명문 팀으로 정평이 이미 자자하다.

 

“우리는 80년대에 열정으로 바둑을 두었던 사람들이고 지금 바둑을 전공하는 친구들도 열정 하나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열정에 조금이나마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팀을 결성했고, 어차피 팀이 결성되었다면 푸른돌 전 회원이 맹렬하게 응원해야 하는 덕분일 겁니다.”

 

채 감독은 차분하고 젠틀하고 학구적이고 이지적이다. 말투도 높은 톤 거의 없는 고요한 남저음이어서 설득력이 도드라진다. 그는 우승 DNA를 보유하게 된 이유를 딱 하나 더 들자면 ‘인성’이라고 했다.

 

열정, 인성, 응원. 이런 추상적인 말들이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범인(凡人)은 알지 못한다. 학창시절부터 오래도록 경험한 바둑에 관한 자신만의 ‘사람 보는 비법’이 있다고 한다.

 

“우리 팀엔 우승 DNA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우승은 바란다고 되는 건 아니죠. 그러나 열심히 뭔가를 추구할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건 맞아요. 올해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승이 목표입니다. 즐길 줄 압니다. 바둑을 즐거운 것이죠.”

 

어쨌든 ‘바둑감독 무용론’을 들먹이는 뭇 사람들의 시선을 머쓱하게 만든 이가 바로 채 감독이다. 그가 2년간 쉬었던 서울푸른돌의 우승 DNA를 올해 복원할지 지켜보자. 현재 서울푸른돌은 3승1패를 기록하며 19개 팀 중 4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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