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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6-02 17: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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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치훈이 바둑돌을 집어던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하자 이런 돌출 행동이 나왔다. ‘폭파 전문가’ 조치훈이 올해 입단 50년을 맞았다. “5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바둑을 더 열심히 공부해 이창호, 이세돌, 알파고를 다 물리치고 싶다”고 했다. (사진=조선일보 오종찬 기자)

 
'후회.'

 

일본에서 대삼관(大三冠·3대 기전 동시 석권)과 그랜드슬램(7대 기전 정복)의 신화를 일군 바둑기사 입에서 이 낱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올해 입단 50주년을 맞은 조치훈(62). 프로 생활 반백 년의 감회를 묻자 그는 "후회가 많아요"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술 먹는 시간 줄이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더 잘했을 텐데, 하고 후회해요. 더 많은 승리나 타이틀을 놓쳐서만은 아녜요.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바둑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잖아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공부했다면 스스로 만족하는 바둑을 두었을 테고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그는 일본 기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고 1980년대 초중반 세계 바둑 1인자가 됐다. 작년 4월엔 전인미답의 공식전 통산 1500승(821패) 고지에 올랐다. 이룰 것은 다 이루지 않았느냐고 묻자 조치훈은 "아니요. 요즘 많이 지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미소를 머금었지만 쓸쓸해 보였다.

 

지난 5월20일 경기 성남 K바둑 스튜디오. SG페어바둑 32강전을 마치고 나온 그를 만났다. 최철한·오정아와 겨룬 조치훈·요시하라 유카리는 이날 일찍 돌을 거뒀다. 조치훈은 "지는 건 언제나 슬프지만 오늘은 개인전이 아니라서 상처가 덜하다"고 했다.

 

더 강해지려고 하루 8시간 공부

 

1962년 숙부 고(故) 조남철 선생의 손에 이끌려 일본 유학을 떠날 때 조치훈은 여섯 살이었다. 바둑 명문 기타니 도장에서 수학했고 1968년(11세 9개월) 입단했다. 별명은 '폭파 전문가'. 상대방 집을 부수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돌을 타개하는 격렬한 행마를 즐긴다. 일본기원 소속인 조치훈은 "한국말이 서툴다"며 먼저 양해를 구했다.

 

승률이 약 6할5푼이더군요. 패배가 익숙하진 않을 텐데요.

"아무래도 이긴 기억보다는 진 기억이 더 오래가요. 옛날에는 위에서 (초일류 기사들과) 싸우다 지니까 더 슬프고 화가 났어요. 이제는 자주 져 습관이 될 것도 같지만 슬프긴 마찬가지예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하는 서러움인가요. 전성기(20대부터 30대 초반) 지나고 나이 들며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늙는 건 잘 보이는데 내가 늙었다는 생각은 안 해요. 바둑이 약해서 슬픈 거지, 나이와는 관계없어요."

 

근년 들어 수읽기가 잘 안 된다거나 착각해 바둑을 망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늙어서 실수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젊은 기사가 무조건 세지도 않고요. 50년 전에 바둑은 일본이 최고였고 거기서 배워야 성공한다고들 믿었어요. 지금은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공부할 수 있고, 한국 국내파 기사들이 더 강해요. 또 과거엔 30~40대에 전성기가 온다고 했지만 이젠 10대에서도 세계 챔피언이 나오잖아요. 저는 지금도 바둑 공부를 하면 실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에는 산책 삼아 3시간쯤 골프를 치고, 다리 아프니까 사우나 가고, 오후엔 바둑 공부를 8시간씩 해요. 3시간은 커피 마시며 공부하고 5시간은 술 마시며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웃음). 이기든 지든 일본기원이 대국료를 주는데, 바둑을 형편없이 두면 돈 받기 창피해요. 공부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유예요."

 

'목숨 걸고 둔다'고 했었는데 요즘도 그렇게 임하나요?

"패하면 너무 슬프니까요. 하지만 전과는 좀 달라요. 젊을 적엔 지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나이 먹으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어요. 죽음이 멀리 있지 않으니까.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바둑에 질지언정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요. 하하하."

 

인생을 한 판의 바둑으로 보면 이제 겨우 중반전인걸요. 종국까지 여러 수단이 남아 있습니다만.

"저는 세상에 태어나 바둑만 했잖아요. 이것 말고는 길이 없네요."

 

숙부인 고(故) 조남철 선생과 일본 유학을 떠나는 여섯 살의 조치훈(사진=한국기원). 

 

 공부에 도움 되는 후배 기사라면.

“김지석의 기보는 꼭 챙겨봐요. 존경할 만한 내용이 늘 있거든요. 박정환은 AI(인공지능)의 능력을 가진 사람 같아 따라가기 어려워요. 중국의 커제는 뭘 두는지 도통 모르겠고(웃음).”

 

바둑과 골프, 두 스포츠를 직업과 취미로 삼았는데 혹시 공통점이 있습니까.

“골프는 장타도 필요하지만 짧은 거리에서 퍼팅도 잘해야 하잖아요. 바둑도 큰 그림과 자잘한 수읽기가 다 중요해요. 또 복싱이나 테니스라면 강자가 십중팔구 이기겠지만 바둑이나 골프는 운도 좀 작용합니다. 약자가 심심찮게 강자를 꺾어요.”

 

오늘 패한 건 운이 안 따른 건가요?

“2인 1조 페어바둑이었잖아요. 제 짝이 실수해서 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짝도 아마 저를 탓할 거예요(웃음).”

 

“과거의 영광에 취할 만큼 늙진 않아”

1983년 기성·명인·혼인보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해 일본 바둑계 최초로 대삼관을 달성하기 직전의 일화다. 후지사와슈코가 기성전 전야제에서 “딱 네 판만 가르쳐주겠다”고 선전포고 하자 도전자 조치훈이 답했다. “딱 세 판만 배우겠습니다.” 실제로 조치훈은 세 판을 지고 네 판을 내리 이겨 타이틀을 획득했다.

 

선배 앞에서 기백이 대단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농담 아니었을까요(웃음)?”

 

1986년 기성전 땐 휠체어를 타고 대국장에 나타나 ‘나에겐 머리가 있고 오른손이 있다’ 말했지요. ‘대국에 지고도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어록도 있더군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우연히 머리와 오른손은 멀쩡했어요. ‘나에겐 머리가 있고 오른손이 있다’는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죠. 그 시절 일본은 이틀에 걸쳐 바둑을 뒀어요. 기사에게 주어진 8시간을 다 쓰지도 않고 바둑에 진다는 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속기 바둑이 대세지요. 제 생각도 좀 달라졌는데, 시간이 많다고 해서 꼭 좋은 수를 발견하는 건 아녜요. 평소에 훈련이 충분히 돼 있으면 초읽기에 몰려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50년 동안 둔 바둑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판이 있는지요.

“저는 지난 일은 잊어요. 과거의 영광을 생각할 만큼 늙지는 않았지요. 미래의 희망에 부풀 만큼 젊지도 않고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만 생각해요.”

 

숱한 우승 트로피들은 어디 있나요?

“쳐다보기 싫고 매이기 싫어서 다 버렸어요. 그런데 그 트로피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요. 옆에 장모님이 사시는데 제가 버리는 족족 챙겨 가셨으니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요(조치훈은 3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 과거의 영광은 그 집에 진열돼 있어요. 하하하.”

 

조치훈을 가장 괴롭힌 상대는 누굽니까.

“이창호 9단이 나타나자 조치훈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이창호가 세상에서 저를 지운 셈입니다. 그를 가르친 사람은 조훈현이고요.”

 

그를 미워했겠군요.

“조훈현씨는 저보다 소질도 있고 바둑도 세고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조훈현씨가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맹활약하자 이창호가 나타났고 이세돌이 등장한 거예요. 오늘의 한국 바둑은 조훈현과 이창호, 두 천재가 일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훈현은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자) 요즘 뭐가 뭔지 모르겠고 너무 힘들다고 하길래 제가 그랬어요. 고생스럽겠지만 좀 더 노력해서 대통령도 하시라고. 청와대 초청받아 밥 좀 얻어먹으려고요. 하하하.”

 

이창호도 최근엔 정상권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심정은 어떤가요.

“너무 아파요. 믿을 수가 없어요. 제게 이창호는 넘기 어려운 열다섯 살 바둑 천재로 각인돼 있습니다. 내가 가장 셌을 때 그가 나타났지요. 그 천하무적이 이젠 착각을 하고 좋았던 바둑을 그르치는 게 믿기질 않아요. 내 일처럼 아파요.”

 

평생 둔 바둑, 매력이 뭡니까.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것이지요. 야구나 피아노는 문외한도 뭐가 대단한지 금방 알게 되잖아요. 바둑은 너무 좋은데 모르는 사람에겐 전할 방법이 없어요. 이기면 재미있고 지면 슬프지만, 내용이 좋으면 질 때도 어떤 만족감이 있고요. 제가 아마추어라면 평생 바둑만 즐겨도 후회 없는 일생일 것 같아요.”

 

통산 전적 1518승 836패. 조치훈(왼쪽)은 일본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조훈현과 둔 특별 대국. 이세돌도 보인다.(사진=한국기원)


바둑 안 뒀다면 코미디언 됐을 것

 

통산 우승은 75회. 지난 4월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에서 정상을 밟았는데 국내 기전 타이틀은 처음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기원 협조로 한국 시니어바둑리그(단체전)에 참가합니다. 고향팀 부산 KH에너지를 위해 뛰는데 모국에서 대국할 땐 감정이 특별한가요?

“일본과는 달라요. 개인전이 아니고 단체전이라서 승부를 즐길 수도 있고요.”

 

아예 소속을 한국기원으로 옮길 순 없는지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본에서 바둑과 인생을 배우고 활동해 왔잖아요. 도리가 아니죠. 무엇 때문에 일본에 있는가, 가끔 스스로에게 묻기는 해요. 한국으로 이주한다면 바둑 안 두고 놀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요.”

 

승자와 패자가 함께 복기하는 풍경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상적입니다. 패자는 치욕적인 장소를 떠나고 싶을 텐데요.

“왜 졌는지, 어떻게 둬야 이길 수 있었는지를 복기하며 배워요. 그 과정에서 슬픔도 진정되죠. 지면 자신한테 화가 나고 분풀이도 하고 싶은데 복기를 하면 좀 풀어집니다. 곧장 거리로 뛰쳐나간다면 누구 멱살 잡고 때릴지도 몰라요(웃음).”

 

대국 중에 ‘이 멍청이!’라고 외치거나 자기 머리를 쿵쿵 치는 습관이 있지요. 오늘 헤어스타일은 깔끔하군요.

“미용실을 바꿨는데 멋대로 이렇게 깎아버렸어요. 불쾌했지요. 그런데 남들은 ‘전에는 노숙자 머리였는데 단정해 보인다’고 합니다. 머리 때리는 나쁜 버릇은 거의 고쳤어요. 오늘은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뒀고요(웃음).”

 

‘바둑 안 뒀으면 코미디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지금도 소질 있으면 그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 제가 말을 좀 더듬어요. 바둑 두지 않을 땐 웃고 농담하는 걸 즐겨요. ‘희극왕’으로 불리는 배우 후지야마 간비의 연극, 아쓰미 기요시의 영화는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일종의 균형 회복이군요.

“치열한 승부가 제 존재의 이유였잖아요.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정반대편에 있는 코미디에 끌렸어요. 별명은 ‘폭파 전문가’지만 시끄럽게 만드는 바둑보다 전성기의 이창호처럼 조용히 반집만 이기는 바둑을 존경합니다.”

 

왜 제자를 키우지 않았나요.

“10년쯤 제자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성과가 없었어요. 못난 스승 탓이겠지요. 조훈현은 이창호가 천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자기보다 세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도요. 조훈현이 있으니 이창호가 있지만, 이창호가 있으니 또 조훈현이 있어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죠. 바람직한 자극을 서로 주고받았을 겁니다.”

 

알파고 같은 A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알파고도 약점이 있어요. 공부를 하면 알파고처럼 둘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알파고는 이세돌, 커제를 이긴 다음에 은퇴해버렸지요. 기분 나빠요. 경우가 아니잖아요.”

 

조치훈은 알파고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알파고가 지금 옆에 있고 말귀를 알아듣는다면 어떤 질문을 하겠느냐고 하자 “묻긴 뭘 물어요. 그런 매너가 어디 있냐, 소리치며 바둑돌을 한 주먹 던질 것”이라며 웃었다.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공부해 이창호, 이세돌, 알파고를 싹 쓸어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바둑 인생 마지막 목표를 묻자 다음 착점을 궁리하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둑 안 두고 매일 놀고 골프 치고 술 먹으면 행복할까. 그렇진 않을 것 같아요. 바둑 때문에 평생 자책하며 고독하게 살았지만 덕분에 재미있는 인생이었어요. 끝까지 후회 없는 바둑을 두는 게 바둑에 대한 예의겠지요.”


[덧붙이는 글]
6월2일자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가 쓴 "[Why] "알파고 은퇴하다니… 바둑돌 한 주먹 던지고 싶다"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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