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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28 16:47:01
  • 수정 2018-05-28 17: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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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민수.

 

“미안허다!”

 

조민수는 패한 장현규의 아픈 맘을 나직한 말 한마디로 위로한다. 우승의 기쁨이 앞서겠지만 준우승의 아픔의 강도가 더 컸다는 것을 승자인 그도 잘 안다. 의당 약간의 복기가 있겠지만, 조민수는 이내 조용히 쓸어담는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시니어가 이기면 미안한 시대지. 지가 정리하지 못한 것 때문에 진 것이니 더더욱 (장)현규가 아프지 않겠어?”

 

조민수는 새까만 후배 장현규의 쓰린 맘을 잘 알고 있다. 2년 전 내셔널리그 전남팀에서 같은 팀에 소속된 인연도 있다. 그보다는 조민수가 주니어선수들과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시니어선수이기에 그렇다. 그는 대회 때마다 주니어선수들의 바둑을 관전하며 그들과 같이 검토에 빠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 11년만에 주니어최강을 꺾은 김해시장배 결승은 아마최강 조민수에겐 각별한 한판이었다.

 

김해시장배에서 시니어최강 조민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야 한두 번 해 본 사람이 아니지만, 프로들 뺨치는 아마 주니어 강자들과 겨루어서 50대 중반의 조민수가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바둑을 아는 사람들이 볼때엔 경천동지할 일이다.

 

아마대회를 시니어와 주니어로 나눈 지 15년 남짓 되었다. 시니어대표와 주니어대표가 최종 결승을 치르는 방식에서 나이 많은 시니어가 주니어를 이긴 케이스는 눈을 씻고 뒤져봐도 찾기 힘들며, 지금은 ‘치수 차이’를 인정하며 시니어부와 주니어부로 나뉘어 치르는 시대다.

 

여전히 도장에서 수학하는 팔팔한 선수들과 50~60대 아마선수들이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흥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 숙고 끝에 아마최고 기전 덕영배도 최근 시니어 주니어를 분리하여 결승을 따로 치르기로 한 바 있다. 그들의 체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번 김해시장배는 그런 점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전이었다. 구태의연하게 시니어와 주니어의 대결을 추진하는 대회였으니 말이다. 최종 결승에서도 맥이 빠질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11년 만에 시니어 조민수가 주니어 장현규를 이기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그 11년전의 기록도 2007년 덕영배에서 역시 조민수가 당시 연구생 1조 출신 김정수를 이기고 거둔 성적이다.

 

“사실 그 뒤로 결승에서 많이 붙었지만 내가 많이 졌어.” 조민수는 시니어대표 주자로 나서서 대략 다섯 번 정도를 붙어본 기억이 있단다. 물론 2007년 덕영배와 김해시장배만 이기고 다 졌다. 오히려 주니어에게 다 졌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이긴 시니어가 조민수가 유일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 김해시장배 결승 모습. 조민수-장현규.

 

 

시니어최강 조민수는 자칭 '건달'이다. 번듯한 직업 한번 가진 적 없이 바둑밖에 하는 일이 없고, 그렇다고 프로도 아니니 ‘바둑'을 직업이라고 부르기엔 뭣하다는 뜻이 담겨있을 테다.

 

그는 하루도 바둑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다. 고향 전남 순천에서 전국 어디든지 시합을 다니기 때문에 한달이면 얼추 2000km는 전국순례를 한다. 대소의 아마대회에서 조민수가 결근한 기억은 없으며, 단 한 번도 허겁지겁 대회장에 당도한 적도 없다. 그는 늘 대회 1시간 전에는 착석해있으며 그것은 오랜세월 동안 자신만의 루틴이다. 또한 과도하게 술을 입에 댄다든지 하는 적도 없다. 시합이 없는 주간이면 주로 서울 압구정리그에 참여하기 위해 늘 고속버스에 오른다. ‘그럼 그게 프로지 뭔가?’

 

아마바둑계에서는 ‘더프가이’로 소문이 난 맹장이지만, 사실 대화를 해보면 속 깊은 사람이며 가슴 촉촉한 명대사가 많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지난 주 안동 참저축은행배에서(참저축은행배는 4강에 머물렀다.) 기자는 조민수와 차량 동석을 했다. 대화 중 그는 “딴 사람들은 뭐라 할 지 몰라도, 나는 주니어에게 지고 싶은 맘은 없어. 전보다는 많이 지겠지만 그래도 난 해볼만하다고 봐.”라고 말한 대목이 있었다. 이번 김해시장배에서 주니어 선수들과 겨루는 장면을 미리 예고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몇 갠지 몰라. 1년에 두 개 정도는 따 내지.” 조민수는 지금껏 우승트로피가 5~60개 쯤 된다고 한다. 우승은 많이 한다고 해서 지겹거나 귀찮거나 한 것이 아닐진대, 영광의 트로피 개수를 기억 못하는 게 이상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개인전뿐 아니라 아닌 단체전과 연승전 등 ‘유사 우승트로피’가 생겨나니 이걸 계산에 넣어야 할지 말지 자신도 아리송한 것.

 

“나이가 든다는 느낌은 받지만, 내가 맛이 안가면 누구든지 둘만 하다고 생각해.”

 

싸움꾼이 언젠가부터 겁이 들기 시작한다면 싸움을 포기해야 한다. 바둑팬들이 조민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한칼이 있는 천상 싸움꾼이기 때문이 아닐까.

 

▲ 전력을 다하는 조민수의 경기는 늘 관전객으로 붐빈다. 조민수-최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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