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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27 09: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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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 사상 최초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정환(왼쪽)과 이슬아.

 

'팀킴', '오벤져스'의 활약으로 컬링은 2018년 최고의 이슈메이커 스포츠가 되었다. 비인기스포츠 종목으로 여겨지던 컬링이 이렇게 일취월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팀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그들의 인생 스토리에 감동했다는 점도 빼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인은 컬링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아니라고  봤을 때 컬링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컬링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컬링이 신체 스포츠(physical sports)적인 요소와 더불어 전략을 중시하는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s)의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계 올림픽의 전통적인 인기 종목들을 보면,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스키, 썰매 등과 같이 빠른 스피드를 추구하는 단시간에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들이다.

 

물론, 이 종목들도 치열한 두뇌싸움을 통해 전개되지만, 컬링은 속도보다는 두뇌싸움을 통한 작전수행이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성격이 매우 다른 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팀킴'의 준결승 한일전에서 스킵 김은정이 마지막 스톤을 던지는 짜릿한 순간을 기억해 보자. 작전이 성공해서 승리했을 때의 그 희열은 쇼트트랙 마지막 바퀴에 일어나는 대역전극만큼 가슴을 뛰게 했다.

 

바둑이 스포츠라고?

▲ "영미!" 외치는 김은정 2월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김은정 선수가 투구한 뒤 "영미!"를 외치고 있다.

 

컬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친구들과 만나면 컬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컬링이랑 비슷한 스포츠 종목이 무엇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컬링의 다양한 매력 때문일까? 생각보다 비슷하다고 언급되는 스포츠들이 많았다.

 

스톤으로 스톤을 맞춰 나가게 하는 테이크 아웃을 보면서 컬링을 속칭 '빙판 속 알까기'라고 부르기도 했고, 하나의 스톤으로 두 개의 스톤을 맞출 때 당구와 포켓볼을 연상하기도 했다. 또 멀리 있는 목적지를 보며 멋진 자세로 스톤을 던지는 것을 보고 볼링과 비슷한 점을 찾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컬링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자꾸만 바둑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바둑판에 아주 작은 수많은 돌을 이용해 싸우는 바둑이 넓은 경기장에서 큼지막한 돌을 가지고 경쟁하는 컬링과 무엇이 비슷하냐고 친구들은 비웃었지만, 우리가 컬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은 바둑과의 공통점 때문이라는 생각에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바둑이 스포츠야?'라고 되물을 것이다. 일단 대답은 YES다. 아직 많은 논쟁 중에 있지만 바둑은 체스와 쌍벽을 이루며 국제마인드스포츠 협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아시안게임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또 최근에는 전국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도 당당히 스포츠 종목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스포츠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컬링과 바둑의 공통점 네 가지 

 

▲ '이번 작전은' 머리 맞댄 팀킴 2월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선영, 김영미, 김경애, 김은정 선수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바둑은 어떤 점에서 컬링과 닮은 스포츠일까? 크게 네 가지 점에서 컬링과 바둑은 닮아 있다. 첫째, 바둑과 컬링은 심판의 개입이 최소화된다. 축구나 야구처럼 심판의 역할이 절대적인 스포츠가 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페널티킥을 주느냐 안 주느냐, 9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마지막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에 따라 그 경기의 승패가 결정 나게 된다.

 

물론 심판이 경기 중간에 개입하면서 선수들 간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공정하게 게임을 진행해나가는 장점이 있지만, 심판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하거나 심판이 오심을 하여 경기의 흐름을 끊는 경우도 생기는 등 오히려 스포츠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둑과 컬링은 '심판이 있긴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심판의 개입이 최소화된다. 즉 이로 인해 경기는 매우 부드럽게 진행되며, 심판의 역할이 최소화되다 보니 서로 규칙을 잘 지킨다는 상대팀과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둘째, 수많은 경우의 수와 전략의 중요성이다. 2년 전에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했을 때 바둑애호가를 포함한 많은 인간 대표(?)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 낸 게임 중 바둑이 가장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어 컴퓨터가 그것을 정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바둑은 수만 판을 둬도 똑같거나 비슷한 판이 아예 없을 정도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그로 인해 내가 지금 어떤 수를 두면 상대방이 무슨 수를 둘지 예측하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컬링도 바둑만큼은 아니지만 경우의 수가 상당하다. KBS에서 해설을 맡던 아재개그 황제 이재호의 컬링노트를 기억하는가? 혹자는 망상노트라고도 했지만, 우리는 컬링노트의 전략을 보고 미리 경기진행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 우리는 팀킴이 스톤을 던져서 성공하면 상대팀이 어떤 전략을 짤지도 미리 예상하면서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셋째, 끝내기의 중요성이다. 바둑은 아무리 초반 포석을 잘 이끌고, 중반에 전투를 잘 해도 끝내기에서 자신의 집을 지키지 못하면 패하게 된다. 즉 과정에는 따로 점수를 주지 않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순간을 보고 승패를 가리게 된다.

 

컬링도 마찬가지다. 컬링 단체전을 보게 되면, 마지막 스톤 2개를 스킵이 던지게 되는데 그 중요성은 처음 6개의 스톤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스톤을 던지고 나서 써클 주변에 누구의 스톤이 있는지를 보고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지막 돌의 중요성은 끝까지 시청자들을 숨죽이게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결과에 대해 깨끗하게 인정할 줄 아는 스포츠이다. 바둑은 반상 예절이라 하여 매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포츠이다. 경기 시작 전에 인사를 하고, 바둑이 끝나면 잘 뒀다는 예를 갖추도록 배운다. 이 반상예절 중 독특한 것은 바둑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가능성이 없어지면 자신이 진 것을 인정하는 문화이다. 바둑 용어로 '돌을 던진다'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진짜 돌을 던지는 거친(?)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졌다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매너 있는 행동이다.

 

이 인정의 미덕은 컬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악수를 청한다'라고 표현한다. 팀킴의 올림픽 마지막 결승전 경기에서 스위스 선수들에게 악수를 청할 때 우리는 팀킴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과에 대해 인정할 줄 아는 컬링만의 페어플레이 문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컬링과 바둑은 '뇌섹 스포츠'다

 

▲  이세돌 9단(오른쪽)이 2016년 3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5번기 세번째 대국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구글)

 

팀킴 선수들이 인터뷰 때마다 걱정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컬링에 대한 인기가 금방 식어버릴 것 같다는 우려이다. 아무래도 올림픽이라는 전 국민을 환호하게 하는 큰 축제의 장이 만들어 준 뜨거운 인기는 금방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사실 바둑도 마찬가지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선풍적인 관심을 받았던 바둑이 2년 사이에 열기가 푹 식은 것을 몸소 느꼈다. 이와 같은 비인기 종목이 남녀노소 에게 사랑받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장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뇌섹남'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바로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로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이야기하는 낱말이다. 바둑과 컬링은 전략을 가지고 상대팀의 수를 예측하는 지적인 스포츠라는 점에서 그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나는 이런 점에서 바둑과 컬링을 '뇌섹 스포츠'라고 부르고 싶다. 컬링은 우리가 직접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경기를 관전하러 가거나 TV중계를 보는 방법 이외에는 컬링의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평창올림픽의 여파로 여전히 '컬링앓이'에 빠져 있다면 컬링의 뇌섹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언제 어디서든 바둑판과 바둑알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바둑의 매력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오마이뉴스 3월26일자 박현진 기자가 쓴 <<'팀킴'의 이유 있는 걱정, 이세돌이 떠올랐다 >>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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