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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33:00
  • 수정 2017-10-31 23: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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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6년 7월 17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자신을 바둑한량으로 표현한 타이젬 마니아 '군자마을' 김방식 관장.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서 공자는 "성인(聖人)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군자(君子)만이라도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 누구나 노력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표준의 인물을 '군자'라고 했다.

안동으로 들어가는 동서남북 사방팔방의 관문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수도'라는 단어가 좀 튄다는 느낌도 있지만, '수도' 이외 적당한 수식어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금방 알게 된다. 군자가 연상되는 가장 '군자스러운' 지역이 바로 성리학의 본산 안동이니까.

바로 이곳 안동에도 타이젬 마니아가 계신다고 해서 찾아나섰다. 군자와 바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덕목. 힐링으로서의 쉼(休)을 강조하는 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바둑명소로서의 가치도 충분한 '군자마을'의 총 책임자가 바로 타이젬7~8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김방식 관장이다.

▲ 안동의 관문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찾아오시는 길은 어렵지 않았죠?"
"아이고~! (저 분이 김관장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참 세상 좁죠. 하하."
"아휴~! 기억하다마다요!"

처음엔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 그래서 직함만 갖고는 그분이 그분인지 알지 못했지만, 곧 기자는 십 수 년 전부터 구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기자와는 인터넷바둑으로 맺어진 마니아 중에 한 분이었지만 군자마을 관장님인 줄은 전혀 몰랐던 터. 마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처럼 서로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먼저 군자마을의 태동은 이러했다. 안동댐이 건설될 72년부터 수몰계획이 확정된다. 당시는 문화재지정이라든지 수몰될 토지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보다는 조상사당은 못 버리는 것이며, 종가가 없으면 집안은 무너진다는 오래된 가치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결국은 오래된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이건(移建)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한 자리에 모아놓으니까 문화재적 가치가 있었다. 문화재청에서는 뒤늦게나마 옳은 판단을 하고서 새로 정붙인 곳을 '군자마을'이라 칭하고 유지 보전에 나서게 된다.

▲ 안동댐이 군자마을 부근에 있다.

안동문화원장인 장형이 처음엔 부친(김택진 옹 07년 작고)과 같이 군자마을을 돌보았다. 차츰 군자마을이 지명도를 얻게 되면서 할일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막내인 김관장에게 군자마을의 작은 박물관 '숭원각'의 관장을 맡기기에 이른다.

안동하면 하회마을이 유명하고 여러 다른 마을들도 있다. 그렇다면 군자마을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하회마을은 자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군자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마을을 만들려고 조성된 마을입니다." 일종의 계획도시라 되는 셈이다. 지금도 김관장의 집안어른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으니 마을의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단다.

'아무 것도 안할 자유가 있다'는 카피가 한때 유행했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안하며 뇌와 몸을 쉬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웰빙이다. 그러한 휴식과 매우 어울리는 장소가 군자마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업화는 덜 되어있는 것 같았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안채복원공사를 하고 있단다. 그 얘기는 군자마을이 개인 소유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 '관상' '광해' '공주의 남자' '객주' '미인도' '밤을 걷는 선비' 등 무수한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가 되었던 군자마을을 소개하는 타이젬 마니아 김방식 관장.

▲ 후조당은 광해로 분한 배우 이병헌이 궁중에서 나와서 민가에 숨어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곳이며 기자가 하루를 묵은 곳이기도 했다. 후조당이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이 직접 썼다고.

▲ 후조당은 사방에 달린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사진 아래부분에 툇마루가 살짝 보인다.

지금은 전문인들이 가끔 들린다. "바둑 사진 음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알음 알음으로 쉬어가곤 하죠. 주로 한량들이죠(웃음)." 그가 자신의 입으로 '한량'이라는 얘길 했다. 기자가 "김관장님이 한량이라는 풍문을 듣고 왔습니다"라고 하자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김관장은 바둑과 사진과 음악에 묻혀서 살고 있었다. 사진 마니아가 된 사연은 이렇다. "지금은 이미지로 전달하는 시대니까 홍보를 위해서는 사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가끔씩 사진 동호회들이 머물긴 하는데, 그들에게 매번 촬영을 부탁하는 게 도리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2007년부터 독학했죠." 10년간 군자마을에서 찍은 사진이 컴퓨터 용량을 다 잡아먹을 정도로 풍성했다.

역시 바둑장이는 다르다. 사진작가들이 방문하면 술상이 거나하게 나오고, 그가 찍은 사진에 대해 고수들에게 복기지도를 받길 여러 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었다. 그는 사진을 발로 찍는단다. 때로는 새벽에 잠을 참았다가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올 때를 골라 찍는다. 프로 한량이 틀림없었다.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군자마을을 풍요롭게 만드는 산속음악회를 종종 연다. 음악회엔 향토를 지키는 아마추어 음악도가 주로 초대되어 마을을 풍요롭게 만든다. 어쩐지 음악회 사진과 조선의 여인으로 분한 모델 사진이 자주 보였다. 물론 인터뷰 내내 군자마을에는 은은한 7080 노래가 쉼 없이 깔려 나왔다.

☞ 군자마을의 사계-김방식 관장의 사진전 바로가기

▲ 젊은 음악도들과 군자마을에서 음악회도 종종 연다고.

자, 이젠 한량의 TOP 바둑한량 얘기를 들을 차례다. 바둑과의 인연은 몹시 깊고 그윽했다. 2011년도 국수전 도전기를 유치한 바도 있다. 그리고 바둑대회나 프로들이 가끔 내려오면 숙소를 늘 제공해왔다. 서봉수 이상훈 하호정 백성호 유건재 조한승 최철한 등 유명 프로기사나, 한상대 교수 이광구 등 바둑기자들과 지방바둑협회 사람들 등 바둑계와 인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녀갔다.

그가 인터넷바둑에 몰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관장이 되고 나서부터다. 사람 만나는 일이 서울에서처럼 잦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바둑을 한 4만판 정도 두었을 겁니다. 지금은 타이젬에서 살고 있어요." 타이젬 7~8단을 오르내리는 걸 보니, 학창시절중에 이미 바둑이란 블랙홀에 빠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7살 때 바둑을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당시 할아버지는 면에서 가장 잘 두었던 면기(面棋)였으나, 재주가 있던 김관장이 5학년 쯤 되니까 엇비슷해졌다. 그 이후로 안동에 내려가면 바둑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간이 배밖에 나온 것일까. 서울서 대학 다닐 때 1급 계급장을 달고 내기바둑을 두러 명동기원에서 진을 친 적이 있었다. 당시 명동기원은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낮에는 방내기, 밤에는 어김없이 각종 게임으로 야통하는 '하우스 기원'이었다.

1급도 세 단계가 있다는데, 문제는 기껏해야 물2급 실력으로 1급 행세했으니 그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그날의 위너였다. 보다 못한 정동림 원장이 젊은 김관장을 조용히 불러 잃었던 돈을 다 돌려주었다고 한다. 노승일 진홍명 하찬석 등도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고.
▲ 2011년 국수전 도전2국을 유치했던 김방식 관장과 그의 막역지우 백성호 프로가 조한승과 최철한이 사인한 바둑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관장은 바둑으로 3명의 여자를 울렸다. 그 첫째가 공부안하고 바둑만 둬서 어머니를 울렸고, 둘째는 데이트하려고 기원으로 오라고 해놓고 '한판만 더 두고' 하다가 그만 첫 사랑을 울렸고, 직장생활하면서도 그 버릇 못 버리고 후암동 남영기원에서 밤을 샌다고 부인을 엄청 울렸다.

현재 그의 기력은 타이젬 5~8단. '왜 이리 편차가 크냐'고 묻자, 바둑을 두기 시작하면 일이 생겨서 통화를 길게 하다 보니 시간패나 기권패가 많다며 볼멘소리. 그래서 한밤중에 4~5판 이겨놓아야 현상유지가 된다고 하는 그는 영락없는 타이젬마니아다. 그의 과거 ID는 '강호제일검'이라는 무협지 버전이었고, 지금은 '달빛베기'라는 역시 강호를 그리워하는 ID. 많이들 대국신청해주길 바란단다.

군자마을과의 연관을 지어서 바둑을 말한다면? 좀 어려운 질문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바둑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게임이고 가장 오래전부터 한량이 갖추어야할 덕목이죠. 공자님도 '할 일이 없으면 바둑을 두라'고 했어요. 쓸데없는 짓 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얘기죠. 고로 기자(棋者)는 군자(君子)와 동격이죠. 하하."

최근엔 내셔널바둑리그 경남한림건설과 서울원봉루헨스 팀이 전지훈련을 조용한 군자마을로 왔다. 집중력을 요하는 바둑과 어울리는 장소가 바로 군자마을. 그러나 그보다는 김관장이 열혈바둑인이기에 사람보고 찾아온 것일 터.


▲ 사진 위는 지난달 내셔널바둑리그 경남한림건설과 서울원봉루헨스 팀의 합동 전지훈련 장면. 사진 아래는 경남의 심재용 감독과 절친 김관장이 차를 마시고 있다. 물론 이들도 10여년 전 인터넷바둑으로 인연을 맺었다.

군자마을이 안동에서는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다. 경북 관광업체에서는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지 베스트5로 하회마을, 도산서원, 봉정사, 병산서원 그리고 군자마을을 꼽는다. 타이젬 마니아 김관장은 바둑장이 아니랄까봐, 과거 운당여관처럼 고풍스럽고 전통이 살아있는 바둑대국장의 모습을 만들고 싶단다.

가장 좋은 친구는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며, 그 다음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이며, 그 다음은 함께 놀러 다니는 사이라고 한다. 또 그 친구들 중에서 기예(伎藝)가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니 군자마을에서 절친과 함께 바둑한판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은 바둑인들의 오랜 로망이요 그곳이 무릉도원이요 스스로 신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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