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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18 21: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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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6년 5월 4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민지네 가족이 성남에서 벌어진 대회장에서 다정하게 한컷! 12살 민지는 타이젬 ID '미인원숭이'로 6~7단을 오르내리는 바둑유망주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또 사회 속의 리더가 되는 등 현실적인 목표가 가미된 것일 테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받는 수많은 교육도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리라.

바둑을 목표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다. 바둑시장이 아직은 탄탄대로라고 하기엔 모자라며, 바둑을 갈고 닦는 과정도 오랜 노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바둑을 권한다. 요즘은 부모님이 바둑 문외한에 가까운데도 자녀들이 바둑에 재주를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아무래도 독학을 하던 과거보다는 비교적 바둑교육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타이젬은 바둑을 시작하거나, 프로의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트레이닝장이다. 어린이대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들은 하루일과표에 타이젬 대국을 몇 판 둔다는 스케줄을 잡아두는 케이스가 많다. 여기 '미인원숭이'라는 대화명을 가진 초등생 김민지(12)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 미인원숭이 김민지(12)


타이젬에서 2년 전부터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민지는 바둑이 좋다. 바둑 아닌 다른 것은 관심이 가지 않을 만큼 바둑이 참 좋다. 그리고 늘고 싶다. 욕심에 비해 더디지만 늘어가는 모습이 또 기분 좋다.

기자는 작년 타이젬에서 바둑을 구경하다 우연히 5단 정도 되었던 민지를 알았다. 전주의 바둑교실을 다니다 최근 바둑도장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들은 후, 기자가 가끔 접속을 하게 되면 민지와의 '지도 아닌 지도' 대국도 가끔 이루어졌다. '과연 얼마나 실력이 늘었을까' 하는 호기심이기도 했다.

그렇게 타이젬에서만 바둑친구로 지내던 차에, 민지는 성남에서 벌어지는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부모님과 상경한다고 했다. '아, 그래?' 기자는 문득 '나는유저다' 코너가 생각나서, 민지와 민지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길지 않은 바둑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 전국대회에 참가한 민지의 진지한 모습.

모두들 머리를 파묻고 수읽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대회장 저편에 마련된 학부모 대기석에서 맘을 졸이며 지켜보는 부모는 애가 탄다. 바둑이란 것이 아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지만, 지금 상황을 알 길이 없는 부모 입장에서는 도무지 적막강산이다. 그 대신 민지부모님도 눈치9단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형세가 유리하구나 미세하구나하고 짐작하죠."

바둑소녀 민지가 전주 바둑도장을 다닌 것은 작년 8월이었으니 채 10개월이 안 된다. 바둑도장을 다닌다는 것은 바둑인이 되겠다는, 좀 정확히 말하면 프로를 지망한다는 뜻이다. 그 이전까지는 바둑교실에서 무려 5년간 기초를 닦았다. 그러니 12살 민지도 바둑경력은 자그만치 6년.

민지아빠 김호한(55) 엄마 소경란(48) 부부는 전주에서 대형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민지의 시합 때는 열 일을 제처두고 전국 어디라도 '운짱' 역할을 한다. 아직은 어린 민지가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길 원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부모가 모두 너를 격려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늘 노심초사하며 바라보는 민지엄마 소경란(48) 아빠 김호한(55).

혹시 민지가 타이젬 대화명 '미인원숭이'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민지가 엄마뱃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 원숭이띠에 나아야 좋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민지가 양력으로는 양띠고 음력은 원숭이띠에 태어났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원숭이띠 미인이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미인원숭이' 민지가 바둑을 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집안에 바둑을 두는 분이 없었는데,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가 6살 어린 손녀에게 재미삼아 장기를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곧잘 기물 움직이는 법이라든지, 기물 위에 적힌 한자도 금세 깨치는 것이었다.

우연히 그 즈음 TV리모컨을 돌리는데 바둑화면이 잠시 비쳤다. 그런데 민지가 신기하게도 빠져들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 운명적이었을까. 마침 부모님이 경영하는 음식점 맞은편에 기원이 있었는데, 기원 손님과 오목을 두게 하고는 '이게 소질인가' 싶어서 바둑교실을 보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이창호의 명언이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소질입니다."

한번 바둑돌을 잡은 민지는 유치원도 가지 않을 만큼 바둑에 빠져들었다. "사실 바둑교실을 보낼 때는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지요. 평소 어린 시절부터 예체능 하나 쯤은 해야 한다는 지론이었지만, 그게 바둑이 될지는 몰랐죠. 그런데 긴 시간동안 민지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을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바둑도장을 다니게 된 것도 사연이 있다. 전주에서는 매년 이창호배가 열린다. 5년전 쯤 바둑교실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니까 기력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주에서는 바둑으로 유명한 어린이 한명이 수상하게 되었고, 그때 상장과 꽃다발 등을 전달해주는 화동역할을 민지가 맡았다.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입상한 어린이가 그렇게 대단해보일 수가 없었다. 그 뒤 입상한 소년의 어머니께 '어떻게 하면 바둑을 그리 잘 둘 수 있냐'며 대화를 튼 후, 지금의 바둑도장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결국 지금 민지가 다니는 그 도장을 들어가는 데도 5년간의 기간이 걸렸다, 도장은 입문자를 받아주는 데는 아니었으니.

▲ 민지는 대회에서는 탈락했지만 책에서만 대하던 '우상' 유창혁 프로와 포즈를 취하는 행운도 누렸다.

6년 동안 지역대회 서울대회 등 많은 대회를 다녔지만 민지는 입상경력은 많지 않다. 작년 도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기적같이' 농심새우깡배 여류국수전 4학년 미만부에서 덜컥 준우승을 차지해버렸다. 당시 우승자는 SBS영재발굴단에 소개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김은지였다.

"민지가 많이 성장했구나 하고 느꼈죠. 성적도 성적이지만 도장에 다니면서 자세가 좋아지고 진지해졌어요. 민지는 욕심이 많고 굽히질 않는 성격이었는데 도장을 다니면서 생각이 깊어진 것 같아요. 바둑으로 이미 인성교육이 된 셈이랄까요."

꼭 아이에게 1등, 일류대학을 고집하는 것 보다 평생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권유해하고 밀어주는 것이 아이에겐 더 없는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지는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이였다.

경기를 마쳤나 보다. 민지의 표정은 잠시 찌푸린 걸 보니 예선탈락이다. 첫판을 반집승을 거두더니 연거푸 패하며 1승2패로 탈락했다. 민지부모님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입상은 늘 소수의 차지로 희박한 확률이다. 사실 아이들은 툴툴 털어낼 수 있는데 부모 맘은 쓰리다.

▲ 민지에겐 타이젬이 친구다. 바둑스케줄에서 타이젬 대국이 빠지지 않는다. 최근 민지는 7단까지 올랐다가 6단으로 도로 떨어졌다고.



민지는 그세 탈락한 것도 잊고서 기자에게 또 다른 자랑을 한다. "아저씨! 저 타이젬 7단도 올라봤어요. 두 달 만에 다시 미끄러졌지만요. 호호. 요즘은 도장에서 공부하느라 바빠서 자주는 못 둬요. 그래도 6단에서 승률이 좋은 편이에요."

기자가 타이젬에서 지역연구생 온라인리그전을 곧 개최한다고 하자, "그래요? 꼭 참가하고 싶어요. 실력이 될지 모르지만…." 하고 반긴다. 바둑판을 떠나면 영락없이 해맑은 소녀일 뿐이다.

민지에게 꿈이 뭔지 물어봤다. 민지는 부끄러운 듯 망설인다. "최정 언니 같은 프로가 되는 것?" 하고 기자가 거들어 주자, 금세 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광경을 보던 민지부모님께 "(민지가) 내년에 입단하나요? 아니면 내후년에?" 하고 반쯤 농을 던지자, 금세 천기를 누설했다는 듯 "그런 비현실적인 얘기는 하지 마세요!"하고 손사래를 친다. 부모는 민지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학업에 매달려있는 현실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바둑을 전공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부모의 막중한 역할일 터.

"끝까지 지켜볼게! 믿는다. 우리 김민지!"

민지엄마는 보란 듯 민지를 향해 기운을 북돋워준다. 아이가 행복한, 참 좋은 민지네 가족을 만나 보았다.

▲ 도장오빠들의 진지한 복기를 옆에서 경청하고 있는 민지(오른쪽). '최정 언니같은 일류 프로가 되는 날까지 타이젬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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