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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18 21: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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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6년 4월 6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바둑입문 9개월만에 타이젬 4급이 오른 인간 알파고, '수담'님(51)

바둑에 관한 소싯적 얘기는 남자들의 군대이야기처럼 단골 술안주다. 바둑을 배운지 1년 만에 1급이 되었다는 무용담은 고전이며, 고교 때 서봉수와 호선을 두었다고 하는 주장도 여럿 들어본 얘기. 대부분은 뻥이 좀 가미된 허세지만.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이 50에 들어서 시작한 바둑이 1년이 채 안되어서 타이젬 4급을 두고 있다면? 반신반의할 것이다. 하루 왼 종일 바둑도장에 가서 트레이닝을 한 것도 아니고 하루 1~2시간 정도로 투자한 결과가 이렇다면 정말이지 믿기 힘들다. 아래로부터 서서히 북상하는 화신을 쫓아 경남 창원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팀이 날아갔다.

"혼자 공부하다가 작년부터 타이젬을 시작했어요. 그 이전에 단수 정도야 알았지만 전혀 바둑을 몰랐다고 보는 편이 맞죠. 사실 진짜 바둑알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오로지 타이젬에서만 바둑을 즐깁니다. 하하"

아니, 나이 50을 넘기면서 그것도 4급이나 두면서 아직 바둑돌을 잡아본 적이 없다는 ID명 수담(51). 지금도 바둑TV의 강좌를 보거나 타이젬의 강좌를 보면서 배우고 익힌단다. 그러니까 순수 자율학습으로 일류대학을 간 것에 비견되는 대단한 유저다.


▲ 3.15의거의 성지 창원.


"원래 인터넷 서핑을 자주하다보니 가벼운 게임 오락을 종종 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타이젬을 접하게 되었어요. 처음 바둑을 접한 것은 타 사이트였는데, 대화창에서 대화를 하다가 ‘타이젬이 세다’는 말을 듣고 즉시 갈아탔죠."

수담님은 어릴 적 이발소나 복덕방에서 동네어른들이 바둑을 두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정말이지 바둑과 관련된 분이 한 분도 없었다고 한다. 작년 7월 그러니까 51세의 늦깎이로 처음 바둑을 알았고 이제 바둑인생이 9년이 아닌 9개월쯤 되었다.

처음 바둑을 배워서 18급이란 계급장을 달고 타이젬 대기실에 턱 나타났더니, 타 사이트와는 달리 17급으로 가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타이젬이 진짜 세더라고요. 한 달이 다되어서 17급 구경을 못해봤어요. 오기가 생겼죠. 아마 지금까지 바둑이 늘게 된 것은 그 오기 때문일 겁니다."

열정적인 그의 성격상 한번 빠져든 바둑은 마치 알파고가 트리서치를 하듯 광범위하게 왕성하게 바둑을 섭렵했다. 처음 18급 ID는 '창원'이었고 한 달쯤 있다가 16급이 되었는데 '하백'이란 ID로 갈아탔다. 그때 플러스회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타이제미의 길에 접어들었고, 이어서 6개월쯤 전에 '수담'이란 뜻을 알게 되었고, 바둑스럽게 ID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대화창에다 어떻게 하면 바둑이 느는지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대화창이란 것이 진지하게 물어봐도 허탈한 농으로 돌아올 때가 좀 많은가. 그래도 그 답변 중에 걸러 걸러 걸러 타이젬 홈페이지에 강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몇몇 고수들은 자신이 가진 강좌물을 주기도 하여 그의 타이젬 안착을 도와주었다.

또한 유투브로 들어가니 역시 쏟아지는 여러 강좌물이 있었고, 바둑TV가 있었고, 무엇보다 타이젬이 있었기에, 그는 바둑공부를 하는데 전혀(진짜 '전혀' 라고 말했다.) 애로사항이 없었다고 한다.

기력에 가속페달을 단 것은 타이젬 덕분이란다. 비록 9개월 동안이지만 기억나는 타이젬 대국이 있단다. "한번은 8급 시절에 'O길동'이란 10급님과 이틀 밤을 세워서 둔 적이 있어요. 속기로 두는 게 아니라 30분 바둑으로 두었어요.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완전 맞수와 15판 정도를 앉은 자리에서 이틀간 두었지요. 그분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라이벌이었는데, 전 지금 4급이 되었어요. 하하."

▲ 열정적인 인풍의 수담님은 타이젬이 수행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경상도 사내가 대부분 그렇듯 그도 더프했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의 기개라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타일이었다. 바둑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열성적인 유저가 된 것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살아온 얘기를 잠시 들었다.

경북 김천에서 집안형편 때문에 상고를 다녔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미련 탓에 주판 부기 등 각종 자격증은 다 땄다고 한다. 게다가 인문계 공부를 병행한 끝에 경북대 사학과를 당당히 합격했다. 그 시절을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그 자체도 작은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을 듯.

지금 하는 일은 교각유지보수를 맡고 있으니 건설업이다. "공사현장에서 안전진단이 떨어지고, 안전상에 문제가 있으면 저희 팀이 나서는 것이죠."
"그럼 사장님?"
"아휴 그런 말 마세요. 그냥 풀칠하고 사는 거죠."

그는 은행에 근무하다 기업체 인사노무파트를 담담한 적이 있다. 김천의 공장노무를 지원해주다 건축을 알게 되었고, 당시 OO건설의 높은 분이 지금의 일을 권해 뛰어들었다. 열정적인 그의 체질에 꼭 맞는 일이었고 또 잘 나갔지만, IMF때 OO건설이 무너지고 말아 오히려 그도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화가 나지만 언제까지 과거 얘기만 하고 살 수는 없었죠. 그래서 타이젬이 더 절친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타이젬 바둑을 두노라면 맘을 수행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전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분을 삭일 수 있는 방법 중에 바둑이 제일이더군요. 바둑은 팬티만 입고 있어도 되는 스포츠잖아요. 타이젬은 밤 낮 친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새삼스레 타이젬이 좋은 이유를 설파한다.

인생경험은 비교적 많지만 아직도 타이젬에서는 좌충우돌 신입생이란다. 그는 타이젬에 접속하다보면 늘 예상치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바둑이란 매개로 다들 모였지만 '사람이 참 내 맘 같지 않구나' 하는 점도 많고, 대화에 끼어들다 보면 본이 아니게 싸우기도 하고, 운영자님에게 반성문 쓸 때도 있고…. 하하. 매일 접속하면 매번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대화하다보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게 되고 가끔은 서로 만나서 동류의식도 느끼고 하죠."

학창시절 누우면 당구대로 보였던 천장이 최근엔 바둑판으로 보인다고 한다. 일이 바쁠 때는 보름씩이나 타이젬에 못 들어오다가 기회가 되면 3일 밤을 샌 적도 있다. 보름씩 못 들어올 때는 '금단증후군'이 있단다. 바로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못 올리는 답답함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타이젬을 명태처럼 요리 조리 다 이용하며 하나도 버릴게 없이 이용하는 그는 그새 동호회도 가입을 했다. "몹시 회원들을 보고 싶은데요, 아직 정식 '정모'는 가진 적이 없고 지역별로 가까운 회원들끼리 소주 한 잔 하기만 했어요. 창원 부산 마산 5~6명 정도 모여요."

적극적인 그의 활동성은 금세 드러난다. "대부분이 저희 또래니까 7080 음악 관련해서 자료를 올리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박인희가 35년 만에 가요계로 복귀한다는 뉴스가 있으면 그 소식도 퍼 나르고 노래도 올려놓고… 다 재미잖아요."

▲ 타이젬 7단까지 2~3년안에 도전한다는 수담님.

9개월 동안 바둑을 접한 사람치고는 그의 바둑에 관한 지식과 식견이 굉장했다. 마치 9년을 바둑과 함께 살아도 접하지 못할 경험을 그는 바둑열정 하나로 따라잡았다. 과연 그는 인간 알파고였다. "자습으로 가능한 높이가 아마5단 정도라고 하는데 저는 타이젬 7단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2~3년 안에 되어야지요."

그가 털어놓는 기량향상의 비법은 무엇일까? 바둑의 초보자라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타이젬에 많은 분들도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분이지 남을 가르쳐주진 않죠. 스스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둑은 공부잖아요. 그저 미생에 알파고에 유행 따라 왔다고는 하지만, 바둑이 마냥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고 배움의 고뇌도 있다는 걸 알아야죠. 저도 처음엔 눈물깨나 훔쳤어요. 그러나 평생 친구를 사귀는 데 그 정도의 노력도 안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겠죠."

수담님의 결론은 노력하면 안 될 일 없다는 '뻔한' 진리다. 그날 저녁으로 기자와 수담님은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경남 일원으로 들릴 일이 있으면 꼭 다시 한 번 회합하자고 약조를 한 뒤 헤어졌다.

그 후 기자는 야심한 시각에 인근 숙소에서 여장을 풀면서 습관처럼 노트북을 켜자 또 수담님이 접속해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도 타이젬에서 수담으로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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