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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28:37
  • 수정 2017-10-30 1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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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6년 2월 27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8년째 타이젬 마니아인 설훈 의원.

'과거 밤을 잊은 그대'라는 FM라디오 인기 프로가 있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심야에 은은한 음악과 함께 사색의 공간이 되었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타이젬마니아 중에는 '밤을 잊은 그대'는 드문 케이스가 아니며, 그보다 '밥을 잊은 그대'도 왕왕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둑삼매경에 빠진 '슈퍼강태공'은 우리네 장삼이사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국회의원 중에 바둑고수가 상당수 있다. 아무래도 수년전부터 한일 한중의원교류전이 자주 보도되다 보니 의원고수들의 이름도 줄줄이 외는 분들도 많다. 법조 교육 의료계와 더불어 정관계에도 두루두루 많은 분들이 학창시절부터 바둑애호가가 꽤 많다. 국회의원 설훈(62)도 '밥을 잊는 그대' 중의 한 명이다.

저희 아버님은 아침에 씻고 나면 보통 타이젬에서 바둑을 둡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아침 밥상을 차리는 타이밍과 많이 겹쳐요. 따뜻할 때 먹어주길 바라는 어머님은 "너는 장가가면 절대 저러지 마라. 소박맞는다."며 대략 난감해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맘을 잘 알고 있는 제가 그래서 차선책을 마련했습니다. 아버님이 바둑을 두실 때면 제가 뒤에서 형세판단을 하고서 대충 몇 분 정도면 끝나겠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그 시간에 맞춰서 어머님이 국을 데웁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설훈 의원의 아들 설상익 씨의 블로그에 있는 내용의 일부다. 그 글을 읽다가 과거에도 바둑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설의원을 종종 보았고, 기자와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나도 타이젬 두는데…"라고 한 멘트가 얼핏 떠올랐다. 이 참에 부천 원미구 중동에 위치한 그의 후원회 사무실을 찾아 그가 타이젬 마니아가 된 사연을 들어보았다.

▲ 오랜만에 바둑돌을 잡은 설훈 의원(오른쪽). 그의 상대는 윤명철 부천시 바둑협회장.

▲ 설의원은 8년째 타이젬에서 바둑소식을 접한다고 했다. 왼쪽은 소년시절부터 바둑친구였던 부천시바둑연합회 정광화 이사.

아드님 블로그에 나온 글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족들이 바둑을 이해하시는지요?
아들도 알고 딸도 조금은 압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바둑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기회가 안 되었어요. 과거 허장회 프로가 서울 도봉구에 있을 때 도장을 노크했더니, 당시는 입문자를 받지 않았어요. 그때 허도장에 갔더라면 프로기사 아들을 두었을 지도 모르죠(웃음).

부친이나 형제가 바둑을 이미 알고 계셨던가요?
그때는 대개 바둑을 취미로 하지 않았습니까. 독립운동가였던 아버님(고 설철수)과 4부자가 바둑을 두었는데 지금도 아버님과 바둑두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자랑스럽게)형님 두 분은 저에게 두 점 바둑이죠. 설 추석 명절이 돌아오면 형제들과 늘 바둑판을 마주 합니다.

그럼 공책바둑의 추억도 있으신지요(웃음)?
있다마다요. 어릴 때는 바둑판도 온전한 게 없었으니 공책 뒷 페이지에서부터 연필로 줄을 그어 흑 돌은 O표 백돌은 X표로 표기하며 바둑을 두었죠. 패라도 나게 되면 지우개가 많이 동원되었습니다.(웃음). 초등6학년 말부터 중1까지 겨울방학이 굉장히 길었는데, 그 시기에 친구 집이 기원을 해서, 거의 매일 출입을 했지요. (그 기원 아들은 지금 부천시바둑연합회 정광화 이사로, 설의원은 복기를 해주면 꼭 적어서 '강화학습'을 했다고 회고했다.)

과거에 아마단증도 받은 것으로 아는데, 현재 기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 단증 그대로죠. 어릴 때부터 바둑을 접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니고, 그저 두면서 실전으로 는 편이죠. 또 나중 학생운동을 하고, 정치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바둑을 못 둔 것 빼고는 쭉 바둑이 취미였습니다. 제가 고려대 졸업40주년 행사위원장입니다. 졸업생들이 소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는데 제가 OB고대기우회를 만들었지요.

(사무실 벽에 3단증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3단증이라니 좀 빈약한 것 아닌가요?(웃음)
3단이면 3단증이 맞죠. 오히려 바둑을 모르는 분이나 약한 분이면 5단증을 명예로 받을 수는 있지만, 진짜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실력에 못 미치면서 5단증을 받으면 그거 낯 간지러워요. 저 단증은 1999년 15대 때 받은 것입니다. 아, 타이젬 4단도 가끔 올라갑니다(웃음).

▲ 작년 국회에서 열린 2014 한중 친선 바둑교류전에 참가한 설훈 의원(왼쪽)과 중국 측 단장인 쑨화이산 전국정협 상무위 부비서장이 대국을 벌이고 있다. (사진출처=중앙일보 김형수 기자)

큰 아드님께서 인터넷바둑 얘길 해주었는데, 인터넷 바둑을 즐기십니까?
물론 대면바둑도 두고 인터넷도 둡니다. 정치를 하다 보니 시간이 잘 없죠. 그렇다고 바둑을 안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언젠가 아들이 타이젬을 권하더라고요. 사실 인터넷이 좋잖아요. 마주 앉으면 딱 기력에 맞는 호적수가 등장하니까…. 그래서 국회 의원실에도 깔아놓고 8년 째 두고 있습니다. 두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시간패하고 그러지요(웃음).

아침 식사 시간에 꼭 타이젬 바둑을 두는 이유는 뭘까요?
말이 그렇지, 국회에서 바둑둘 시간이 있겠어요? 그러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이른 아침이나 새벽에 조금 짬이 나죠. 그런데 대국하다보면 오래 걸리는 수가 종종 있는데, 꼭 밥 때가 초읽기보다 더 빨리 닥쳐오는 겁니다. 상대가 안 던지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가 불리할 때는 역전하고 싶어서 오래 걸리고… 그래도 아내는 그만 두라고 하는 매정한 여자는 아닙니다(웃음).

제가 타이젬 유료회원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니 필요 없어요. 8년째 유료회원입니다. 얼마 전에 들어가니 만료가 되었다고 해서 다시 연장했으니 다른 선물로 주세요(웃음). 타이젬에서 바둑도 두지만 바둑계 동향도 살펴보고 하죠.

▲ 설훈의원이 작년 9월 부천시장배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이신데 바둑과도 관련 있는 분과입니다. 바둑에 대해 많은 정책들을 고려하실 텐데요.
안 그대로 작년에 바둑기보 저작물성에 대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있어요. 동조하는 의원들이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많습니다. 아직은 기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서 결정을 못 내리는 분들이 있지만, 법통과는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바둑의 장르구분이 쉽지 않은 면이 있지만, 인류가 만든 최고의 선물임에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응답하라 1988'이나 '미생' 등에서 보듯 바둑이 많이 대중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회 교문위원장으로서 어떻게 이 현상을 보고 계신지요?
아주 기쁜 맘입니만 한편으로는 이 활황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지요. 바둑보급은 어린이 때가 참 좋죠. 그래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인구는 참 많이 늘어났더라고요. 구체적으로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가 정부지원금으로 각급 학교 동아리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한국은 한동안 세계최고의 국가였고 다시 세계제패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치원 초등학교에 바둑 붐을 일으켜야 합니다.

부천에는 만화축제 진달래 벚꽃축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굵직한 행사들을 많이 열고 있습니다. 부천에서 바둑행사를 계획하고 있나요?
제가 작년 부천시장배 바둑대회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전국대회를 구상하고 있어요. 일단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천의 여러 예술제에 바둑행사를 넣는 방법들을 고려할 수 있겠지요.


부천시장배 창설에 공이 큰 설훈 의원은 "오늘 대회에 5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것으로 안다. 저도 바둑을 두지만 바둑이 어린이들에게는 무한한 장점이 있으니 나중에 커서 부모님들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며 바둑예찬론으로 축사를 대신했다. 그는 또 "대통령배 전국대회를 추진하여 전 바둑 팬들이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해 좌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2015년 9월22일자 타이젬 기사)

타이젬 유저들에게 대화명을 밝혀도 되냐고 묻자,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그럼요. 되다 마다요' 쿨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1초 후에 금세 돌변한다. "아, 안돼요. 유저들이 정치 얘기하면 길어져요! 안 그래도 아침밥도 챙겨먹기 힘든데….하하"

기풍에 어울리는 프로는 누가 있을지 물어보자, 자신도 속기며 전투에 능하다는 점을 들어 "그 joonki 있잖아요. 서능욱! 딱 서사범이지요."

▲ 오랜만에 사무실에 들른 부천의 바둑친구들과 함께. 부천시바둑협회 윤명철 회장, 설훈 의원, 부천시바둑연합회 정광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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