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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07:20
  • 수정 2017-10-30 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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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4년 10월 26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용인학생바둑대회에 관람차 갔다가 한 수.

바둑사랑을 급수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고수가 하수보다 누적된 사랑이야 오래되었고 덩이가 크겠지만, 바둑사랑은 기력과는 무관하다고 극구 주장하는 두자리급수 유저를 만났다. 자식만큼 남편만큼 사랑하는 중년의 유저는 임명희 씨(63세)로 타이젬ID '삼삼짱'.

"오늘은 16급입니다."
"오늘은 이라뇨?"
"원래 15급에서 18급까지 두루 왔다 갔다 하는데, 요즘은 좀 생각하고 두니까 많이 떨어지진 않네요. 하하."

남녀노소가 즐기는 바둑이라지만 현실적으로 여성동호인은 아직 찾기 어려우며, 더욱이 초보 중년여성은 매우 드물다. 중년이 바둑초보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나이에 내가 뭘 새롭게 배우겠느냐'하는 무기력증도 있을 것이고, 머리가 이제 굳어서 바둑이 순순히 머리에 들어올 리 없다는 지레 두려움 탓도 크다.

지난 10월초 강원도 정선에서 타이젬과 함께 하는 정선아리랑배가 성황리에 열렸다. 여기에도 삼삼짱은 동호인 대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사실 그 때 기자는 현장에 있었음에도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 오프대회에서는 여성기우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고(실제로 50여명이 참가했다.) 그래도 한 자리급수 정도는 되는 분들이 모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삼삼짱은 18급 명패를 달고 출전했다고 한다.

삼삼짱은 알고 보니 용인시여성바둑연맹에 나가면서 바둑을 즐긴 지 3개월쯤이고 바둑의 매력에 빠진 지는 3년 전이라고 한다. 올해 나이가 63세이니 환갑에서야 운명처럼 기기묘묘한 바둑을 안 셈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지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만, 여하튼 타이젬에서 4378전 1285승 2763패 30무를 기록하며, 하루 3~4판씩 꾸준히 두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유저였다.

두 자리 급수 유저가 순순히 인터뷰를 응한다는 것은 예사 용기가 아니다. 더욱이 18급에 가까운 기력으로 말이다. 알고 보니 삼삼짱으로 바둑블로그도 하고 있고, 타이젬 칼럼 '19로공감'에도 글도 자주 썼던 매우 적극적인 유저였다. 승보다 당연히 패가 많은 이 화려한 전적을 보유한 삼삼짱의 독실한 바둑사랑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 환갑이 넘어 '18급 명패'를 달고 첫 출전한 정선바둑대회 인증 샷!

타이젬 ID를 공개할 수 있나요? 타이젬에서 즐긴 지는 몇 년 되었죠?
올해 63세며 고수2방 '줄그은호박' 사범님 제자 '삼삼짱'입니다. 타이젬과 바둑을 동시에 배웠어요. 환갑 되어서 바둑에 입문했으니 한 3년 되었죠. 내가 이 좋은 것을 왜 진작 가까이 하지 못했나하고 후회될 정도로 3년 동안 정말 남편 아들 못지않게 사랑했습니다.

그 연세에 입문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들이 바둑을 했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지요. 저는 아들이 어릴 때 바둑학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대회 때는 보호자로서 자주 참석했어요. 그럼 보다 젊었을 때 배우실 생각을 안 하시고? 아들이 몇 년 전부터 방과후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다보니, 엄마도 학생으로 보였나 봐요. 그래서 어느 날 저에게 권유를 하더라고요. 진작 권유를 하지 못해서 후회한다면서요.

ID가 삼삼짱인데, 특별한 작명의도가 있는지?
삼삼짱은 3과 관계가 있죠. 바둑에는 삼삼에 들어가서부터 지거나 이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삼삼에 관해서는 최고가 되고 싶어서 이름을 지었어요. 3단까지는 늘고 싶기도 하구요.

남편은 바둑을 두시는 지
초보 동네바둑 18급이죠. 그런데 역시 남자 분들이라 구력으로 똘똘 뭉친 프로18급 같아요. 말로는 단수만 안다는데 막상 붙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하하.

다른 취미도 원래는 있었을 것 같은데요?
꽃꽂이를 했지요. 수원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강사도 꽤 했고 전시회도 했었어요. 그 모든 것도 바둑을 알고 난 다음부터 과거의 일이 되었지요.

길다면 긴 3년 동안 바둑 이력을 추적해볼까요?
아들이 추천해줘서 7월부터 용인여성바둑연맹 다니고 있어요. 또한 바둑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바둑여행이거든요. 전국바둑대회는 앞으로 죄다 출전할 거예요. 지난 7월 A7에서 하는 남양주바둑나들이에 처음 따라 나서 봤고, 서울 여성기우회장배에도 참관했죠. 그러다 9월 정선아리랑배에 처음으로 선수명패를 달고 출전했습니다. 저로서는 올림픽 출전과 같이 설레는 무대였죠. 하하. 명패는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타이젬을 항시 즐긴다는 삼삼짱.

생애 첫 올림픽 무대의 성적은?
저희 용인여성연맹은 10명이 A B조로 참가했어요. 첫 경험이 그렇듯 용인연맹에 민폐만 끼쳤죠. 4판 두었는데 당당히 4패를 했죠. 나처럼 지는 사람이 있어야 이기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대회에서 바둑은 색다른 기분이었을 텐데?
전 잃을 게 없으니까 오히려 편안하게 두었죠. 마지막 판은 좀 아쉽더군요. 3패를 당한 뒤 마지막 한판을 타이젬 3단 젊은 친구와 9점 바둑을 두었어요. 그런데 상대가 나의 명패를 보면서, '9점을 까니까 둘 데가 없다'는 둥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더군요. '그래 나를 한번 이겨봐라!'하고 신나게 덤볐지만, 자라나는 새싹을 밟을 수 있나요. 하하. 기분 좋게 4패를 했어요. 2집을 졌어요. 다음 대회에 가면 꼭 1승이 목표입니다.

전국 각지를 돌면서 바둑여행을 가면 또 다른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나들이 삼아 각 지방대회에 참여하면서 다니는 게 수학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이번에 강진에서 열리는 김인국수배도 가고 싶어요. 제가 사는 수원 화성 용인에도 대회가 많아서 참 좋아요. 바둑을 취미로 하시는 여성분들이 많이 늘었다지만 남자들에 비해 오프로 잘 나오지 안잖아요. 바둑여행을 다닌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보고 바둑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아드님 말씀으로는, '곤지암 사건'을 통해 어머님께 바둑을 권유할 생각을 했다던데요?
3년 전 처음 바둑에 입문할 때였어요. LG배였는데 곤지암에서 공개해설을 했어요. 식구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곤지암 대국장에 도착해서 공개해설을 들었어요. 그런데 당시 바둑TV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들이 내 뒷모습을 보았나 봐요. '엄마랑 같은 옷을 입었네' 하고 그냥 무심히 지나갔나 봐요. 저녁에 집에 와서 알리바이를 캐다보니 그게 저였던 거죠. 아마 그때부터 아들이 바둑을 본격적으로 배우시라고 말해주었어요.

▲ 양주동호인 나들이 행사에서 또 삼매경에 빠진 삼삼짱(왼쪽)

그럼 프로들도 많이 아셨겠네요. 프로들에게 바둑을 몇 번이나 배우셨는지?
이창호 9단은 1997년도에 이미 봤어요. 2년 전 수원시장배에서 서봉수 9단에게 9점 놓고(9점밖에 깔 수 없으니) 한판 배웠어요. 그때도 서봉수가 누군지 알고는 있었는데, 제가 이겨야 할 상황은 아니니까 별로 떨림은 없었지요. 그 외 제가 배우는 모든 분들이 저에겐 프로에요.

중년 여성으로서 바둑예찬을 한다면?
바둑 설계도면 없는 건축가죠. 인생살이도 별의 별 일이 많은데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문제잖아요. 가만있으면서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 적극적으로 문제는 해결하는 사람 등 바둑도 똑 같은 것 같아요. 중년 여성은 갱년기 우울증이 자주 오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니 일단 좋아요. 바둑을 안 배웠으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으니 정말 좋은 게임이죠. 최고령 할머니(김기상 할머니 95세)처럼 저도 특별상 받을 때까지 즐기고 싶어요. 그 할머니의 단아한 자세나 총기를 보면 바둑이 노인들의 건강에 얼마나 좋은 게임인지 웅변해주잖아요.

타이젬에서 어언 3년인데, 골탕도 많이 먹었을 것 같아요.
그런 분이 꼭 있어요. 중반도 안 두었는데 계가해달라는 사람들 말이예요. 접속을 끊고 퇴장하는 분도 많아요. 네 번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좀 속상하죠. 운영자를 부르면 되겠지만, 운영자도 힘든데 그러려니 하죠. 어떨 때는 한판 져주기도 해요. 저도 강급이 하나 남았을 때 봐주시던 분이 있었는데 옛날 생각도 하고 그래요. 그래도 타이젬에서는 부담 없이 둘 수 있어서 좋아요.


오프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곳을 마구 들어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서서보고 있으면 신경도 쓰인단다. 영락없는 하수님이다. 정석대로 안 둬 줘서 아직 약이 오르기도 한다는 삼삼짱은 바둑이 가져다주는 재미만큼은 최대한 받는 수혜자라고. 그는 요즘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닌다. 잠시 잠깐 외출하여 약속시간을 기다릴 때는 '제3의 친구' 타이젬을 늘 켠다.

"바둑은 본래 어려운 거잖아요. 내가 머리가 나쁜가 하지 말고 용기를 내세요. 타이젬에 오시면 좋은 사범님들이 많아서 가르쳐줘서 좋아요."

▲ 이 오솔길 길이만큼 긴 바둑의 길을 가겠다는 삼삼짱님이 아드님과 '신의 한수' 포즈를 취했다. '삼삼짱님의 공식대회 1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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