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된 지 25년째를 맞는 바둑동호회 소석회(笑石會)가 15일 지리산 기슭 백무동 계곡에서 하계수련회를 가졌다.
한 2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기원에서만 바둑을 즐기던 바둑쟁이들에게 인터넷 바둑은 선풍적인 인기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바둑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바둑친구의 개념을 전국적으로 해외적으로 확대시켰고 모임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이유였다.
당시 인터넷 바둑을 즐기지 않는 바둑인이 없었고(지금도 그러하지만), ID는 사이트마다 10개쯤 안 만든 사람이 없었고 ,동호회 한 두 개 쯤 가입을 안 한 사람이 없었다.
게 중 동호회는 천국이었다. 9단 고수들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동호회였고 그들에게서 공짜 지도바둑도 즐거이 받았으므로 특히 하수님들에겐 동호회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남녀노소 급수불문하고 바둑이 좋은 사람끼리, 술이 좋은 사람끼리, 같이 만나고 술 마시고 바둑두기를 맘껏 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들은 동호회에서는 너무 쉽게 형님 동생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바둑이 좋고 친구가 좋은 건 시대를 초월하며 여전히 옳은 명제겠지만, 20년 동안 시대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떠들썩했던 대형동호회 열풍이 사라지고 직장별 지역별 기우회별 소분화된 동호인들이 찐동호회를 대신하고 있는 시절이다.
▲정대상 프로(왼쪽 등)와 한판 지도대국을 갖는 소석회 회원들.
여기 만난 지 25년 된 ‘화석 동호회’가 있다.
웃을 소(笑)에 돌 석(石), '웃는 돌'이란 뜻의 소석회(笑石會)가 있다. 이 화석동호회도 점차 진성당원들만 남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소석회의 이름을 지키는 '결사대' 100명 정도가 남았다.
그들은 25년 전 바둑으로 만났고 지금은 엄연한 가족이 되었다. 진짜 100명이란 숫자가 놀라운 건 부산 광주 대구 청주 경기 서울은 물론 심지어 외국에서도, 마치 아버님 기일에 큰 형님댁 찾듯 매번 모인다. 진짜 아버님 기일도 25년 째 한 번도 빠짐 없이 모이기란 어려운 일.
"야야, 너거 아는 와 델꼬 오노?"
"갸는 고3이라고 공부한당께요. 여적까지 쳐놀다가."
"잘 왔시유. 차는 안 맥혔시유?"
하나 둘 씩 차량이 도착할 때마다 전국 사투리의 경연장처럼 이들의 환대는 피차 극진하고 떠들썩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머리숱 좀 빠지고 머리숱 좀 더 하얗게 변했을 뿐, 그들은 25년 째 처음 만남 그대로 여전히 가족이며 형제자매들이다.
소석회(笑石會)가 15일부터 2박3일간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지리산계곡에서 하계수련회를 가졌다.
▲아버님의 제삿날 전국에 흩어진 가족들이 속속 큰집으로 모여드는 광경을 생각하면 옳다. 연어의 귀향 소석회 수련회.
"원래 사람 수가 많으면 서열따지고 하면 안되요. 적당히 이렇게 끼니도 때우고 해야지요. 우린 대가족이라 뭐 별 달리 특혜받는 사람도 없어요. 다 들 알아서 놀고, 알아서 먹고, 알아서 자고 합니다."
영종도에서 횟집을 크게 하는 김승수, 세명대교수 장영달, 합천 대유전기 대표 표승종, 전 한양대 정외과학과장 김주영, 한국정밀 대표 김진호, 35년된 친구 김형수, 딸기농사를 크게 하는 이감성, 함양바둑협회 이용재 사무국장, 오미자농사를 짓는 김동환, 김일환 프로와 동기 백상현 진경억, 그리고 문학가답게 댕기머리를 한 소항섭. 강진의 강미라 등등...(빠진 사람 분명히 있음. 삐지지 말 것^^)
소석회 100여 명의 열혈동호인들은 서로 간 가족의 대소사도 직접 챙기며 그들의 아들 딸까지도 신경을 써주는, 그야말로 과거 대가족제도하에 살아가는 그런 정다운 사람들이었다.
▲공석만 고광석 심재용.
깜짝할 새 코 베어 갔다 다시 붙여 놓는 약삭빠른 세상에 이렇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25년 동안 거의 같이 살다 보니 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좀 정확히, 허물을 덮어주는 사이가 되었단다.
한무리들은 술 마시고 잠이 들었고, 또 한쪽에서는 바둑으로 밤을 새웠고, 또 한무리는 바둑두다 말고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또 그곳에서 평상을 펴고서 바둑을 두고, 시간되면 토종닭 오리 백숙으로 보양하고, 새벽녘엔 7학년 형님이 손수 라면으로 해장하고... 지리산 기슭은 바둑좋고 사람좋은 이들의 무릉도원이었다.
엠게임에서 '소림용재'라는 ID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심재용은 현재 소석회패밀리를 이끄는 회장이다.
왜 내셔널리그 함양산삼 감독이었기 때문에 바둑인들사이에 꽤 유명한 심재용은 "25년간 진짜 허물없이, 허물을 덮어주며, 지내다 보니 보다시피 가족보다 더한 ‘가족조직’이 되었다.”며 “여기 분들은 서로 생일을 다 기억하고 부인의 생일과 자식들 혼사까지 챙겨주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입니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댄다.
▲찐 옥수수를 먹어가며 계곡에서 바둑삼매경에 빠진 공석만 김영기.
알콜이 들어가면서 말들이 많아지고 톤이 높아진다 싶더니 급기야 그들의 언어는 단순해졌다.
상호간 호칭도 처음엔 '오라버니' '형님' 등 절친 모드에서 '임마' '썩을 놈' '가시나' '이새끼 저새끼' '지랄하네' 등 점점 정글화하고 가축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부인들도 동반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으나 자막에 XX표시가 너무 많을 것 같아서 포기했음^^)
다들 평소엔 교수 병원장 사업가 등 고상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지만,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같이 물장구를 치다보니 한번쯤 넘어서고 싶은 일탈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일까. 그 또한 가족이란 징표이리라.
세명대 교수이며 50대 초반으로 막내뻘 장영달은 모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25년을 한결같이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에게 많은 것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 것이 첫째 요인이며 그저 나눠주려는 맘 하나가 바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유건재 박영찬 백성호 서능욱 등 여러 팬 친화적인 프로들이 이미 이 모임에 합류한 적이 있단다. 오면 2박3일 동안 지도대국 한 50판을 '때리고' 간단다. 이 소석회 모임에 끼이려면 기본적으로 한 50판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힘 있는 프로여야 한다고 그는 너스레.
이 현란하고 재빠른 세상에서 어디 인간적으로 이토록 절친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모임이 또 있을까. 가족은 서로에게 바라지 않고 이렇게 사이좋게 존재해주기만 바라는 관계가 아닐까.
이들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패밀리며 아들에 손자까지 합류하는 패밀리가 되고 남을 것이다. 그래서 소석회라 쓰고 가족이라 읽는가 보다.
▲ 놀 줄 알고 먹을 줄 알고 둘 줄 아는 소석회 패밀리.
▲장영달-정대상 프로.
▲심재용-이감성.
▲공석만 김승수 김영기 장영달.
▲쉬어가며 축여가며. 심재용 진경억 이용재 강동환 백상현.
▲지리산 토종 닭.
▲일행은 또 계곡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공석만 김영기의 수중전.
▲물장구 왕 고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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