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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28 23:27:07
  • 수정 2022-12-30 02: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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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구(16) 프로.


과거 '조서시대'엔,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견되는 입단 관문을 통과하고서 ‘조서를 따라잡겠다.',  ‘타이틀을 따겠다’는 힘찬 사자후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탑 클래스였던 조훈현 서봉수를 한번이라도 이겨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패기 넘치는 새내기프로의 대견함이라고들 생각했다.


최근엔 프로의 숫자가 400명을 넘어가고, 또 무대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넓어진 시절이라 “빠른 시일내 바둑리거가 되겠다.”로 '목표치'가 살짝 하향 조정된 걸 보게 된다. 사실 바둑리거도 본선물고기가 되겠다는 뜻이니 작은 목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호사가의 입장에서는 패기 넘치는 신입들이 줄어든 것 같아 좀 애석하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프로가 되겠다!” 


지난 11일 연구생 서열1위 김승구(16)가 내신 입단했다. 이번 입단 시즌에서 첫 입단자로 결정된 김승구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자후를 토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눈 새내기 프로의 포효가 아닐 수 없다. 그 역시 이뤄지기 어려운 바람이라고들 여길 수 있겠지만, 그를 잘 아는 바둑인들은 결코 ‘뜬금포'가 아니라고 여길 게다.  


▲전국대회 첫 우승과 마지막 우승은 공교롭게 이창호배였다. 사진은 지난달 전주에서 벌어진 제23회 이창호배 고등부 우승을 차지한 김승구.


연말 연시는 입단의 계절이다. 400여 프로가 존재하는 바둑가에서 한 명의 새내기가 탄생했다고 해서 눈길도 주지 않은 세태가 야속하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은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과와 목표를 이룬 기린아들이기에 청운의 꿈에 부풀어있을 테다. 


본격 연구생입단대회에 앞서 모든 연구생리그를 마친 후 최종 내신1위에 오르는 자에겐 대회를 치르지 않고도 입단의 영예가 주어지는 게 내신입단이다. 


내신입단은 연구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1명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보면 되고, 그 선물은 수년간 고행의 연구생시절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 한 1인에 대한 보상이다.


2022 연구생대회에서 김승구는 누적점수 801.8점으로 내신 1위에 올랐다. 쉽게 말해, 고수의 상징인 연구생 1조 중에서도 1년 동안 성적 누계로 최고점을 받았다. 2022 연구생대회는 지난 7월부터 총 8회 차가 진행되었는데 그 중 무려 4회나 우승했던 것. 


오히려 기대보다는 입단이 살짝 늦었던 김승구는 바둑가에서는 진작부터 눈여겨봤던 기재로, 새해부터 프로 김승구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게다.


사실 기재들 중에 학창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소년 소녀가 어디있겠냐만, 영웅이 부재한 시절에 김승구는 제법 굵직한 대회를 휩쓸었던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2018년 한화생명배 우승을 비롯해, 2021년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에서 한국에 7년 만에 우승컵을 안겼다. 그밖에 대통령배, 이창호배 등 대소의 대회에서도 수많은  우승컵을 놓치지 않았다. 


▲ '아빠와 크레파스.' 이들 부자는 지금까지 6~70개 정도 전국대회를 찾아다녔다. 11월 이창호배 우승 시상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찰칵. 


김승구에겐 바둑을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한 아빠가 있었다. 처음 바둑을 배우게 된 계기도 아빠였고 바둑학원에서 바둑도장으로, 그리고 연구생에서 입단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을 넉넉한 그림자케어를 해준 아빠가 있었다.  


김승구는 7살 무렵 단수부터 배웠다. 교육상 바둑이 좋다고들 하니까 아빠가 집에서 단수정도를 가르쳤고, 이때부터 바둑돌은 김승구의 최애 장난감이었다. 그러다 당시 입문반을 개설한 바둑도장을 노크했고, 3개월쯤 흥을 붙이면서 도장원장에게서 아빠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바둑에 재주가 있어보이는데요. 김지석 프로가 초년병 때 1년만에 초단이 되었는데 승구가 비슷한 빠른 속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바둑을 아들이 역시 좋아한다는 것이 좋았고 기끼어 바둑에 젖어들게 만든 것에 만족했던 아빠는 원장의 엄청난 비교분석에 맘이 흔들렸다. 다행히 승구도 좋아했다. 유치원생 시절에도 오후9시까지 기보를 놓아보는 등 급성장세를 보였다.


진짜 빨랐다. 초등1학년 그러니까 바둑에 입문한 지 1년만에 한바연대회에 출전했고 그해 12월 한바연 4조까지 치솟았다. 2학년 4월엔 1조, 3학년 1월엔 최강조에 들었다.  


'한바연'이란 연구생 바로 아랫단계로 연구생으로 가는 관문이다. 관문이라고 해서 마이너로 보는 건 실수다. 한바연 최강조에서 바로 입단에 성공한 예도 있으니 말이다. 


▲2018년 유소년 최고의 대회 한화생명배에서 우승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한 김승구. 


국회에서 일했던 아빠는 이즘부터 본격 케어가 필요한 걸 직감했고 스스로 후견인을 자임했다. 자신의 일도 바둑에서 찾았다. 현재까지 공공기관에서 바둑강의 및 레슨을 하는 바둑지도사로 변신했다. 아들이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나아가 바둑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쯤이다. 


4학년무렵 김승구는 동급최강이었다. 비슷한 또래인 이슬주 임경찬 등 먼저 프로에 입문한 친구들이 살짝 앞서갔지만, 그들은 승구가 단수를 배울 때 이미 한바연에서 활약했던 친구들이었다.


전국대회 첫 우승을 한 건 초등3학년때 전주에서 벌어진 이창호배. 이창호배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출전하였는데, 유창주 정우진 최은규 등 곧 연구생이 될 쟁쟁한 형들을 물리치고 3학년생이 깜짝 우승을 한다. 


1년 1년의 성장세가 남다른 아이들 경기에서 3학년생이 5,6학년 형들을 제치고 우승한다는 건 지금 돌이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때 한종진 프로가 깜짝 놀랐고 김승구는 그의 눈에 꽂혔다. 훗날 김승구는 한종진바둑도장에서 수학하게 된 계기가 된다.


천상 바둑의 길을 가야 하고 프로가 당연한 꿈이 된다.


▲연구생 신분으로 2021년 국무총리배 한국대표로 나서 7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아온 김승구. 


초등시절 일찌감치 연구생에 들어가면서부터 대회에 나올 기회는 많이 사라졌지만 간혹 프로암대회나 연구생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세계대회 예선에 출전했다. 


김승구는 대회출전이 제한된 연구생이면서도 입단포인트로 입단할 수 있을만큼 각종 대회 호성적으로 누적된 포인트가 많았다. 90점이다. 코로나 때문에 입단포인트가 변경된 것이 있어서 포인트가 조금 줄어들어서 90점이다. 예전 포인트였다면 진작 입단할 수 있었다.  


김승구는 마지막 8회차 연구생리그에서 날고 기는 10명의 1조 연구생 속에서 9전 전승으로 마무리했을 때가 가장 기쁠 때로 꼽았다. 그는 항상 1조에서 전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지막 리그에서 비로소 이루게 되었기에 기뻤다.


어려웠을 때는 언제였을까. 역시 입단대회였다. 앞서 설명처럼 그렇게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김승구는 제2의 신진서 신민준이 되고자 영재입단대회를 3학년떄부터 출전했다. 


아무래도 3,4학년때는 경험삼아 나갔고 6학년때 비로소 '승구가 잘 지지 않는다'며 입단이 가능하다는 사범들의 전언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많이 했었지만 오히려 16강에서 탈락.


▲초등 연구생시절 1~2조를 왔다 갔다했던 김은지와 김승구. 독보적인 천재소녀 김은지는 김승구의 최고 라이벌이었고 이들은 전국대회를 거의 반분했다. 사진은 2018년 경기도지사배 초등 결승전 모습.


중1부터는 영재입단대회에서 늘상 시드였을 정도로 연구생 생활은 모범적이고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역시 입단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번번히 입단 문턱에서 탈락했고 입단이 정작 이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코로나로 입단대회가 연기되었던 올 2월 마지막 영재입단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연히 연구생 서열 1위였고, 2위와는 점수 차이도 많이 났던 1위였기에, 이제는 입단이라고 여겼지만 살은 또 아쉽게 과녁을 외면하고 만다. 


"저도 맘이 아팠어요. 기본적으로 실력부족이죠. 무조건 영재입단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가 봐요."(김승구) 


"오히려 어릴 때 한번이라도 더 실패를 해보는 것도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할 실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요."(아빠)


김승구는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기보도 많이 봤던 박정환을 좋아한다. 바둑에 단점이 없고 항상 꾸준하고 변함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사실 김승구도 박정환의 바둑을 닮아 무리하지 않고 화려하진 않지만 약점이 없는 바둑을 추구한다.


많이 실패했다곤 하지만 이제 겨우 16세. 3년 정도는 여전히 연구생이라고 생각하고 실력을 더 키워서 5년 이내에 세계대회에서 훨훨 날고 있는 김승구를 보여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입단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한국바둑의 미래를 자신의 작은 어깨에 나눠가질 수 있는 김승구를 기억하고 기대하자. 


김승구(金丞求) 초단
생년월일 2006년 6월13일 (서울)
가족관계 김세일ㆍ조주연 씨의 1남 중 첫째
출신도장 한종진바둑도장
기풍 두터운 실리형
존경하는 프로 박정환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서울 왕십리에서 수년간 김승구의 그림자케어를 담당했던 아빠 김세일 씨와 함께 '예비 세계챔프' 김승구를 만났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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