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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17 16:28:16
  • 수정 2022-09-17 18: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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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국민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정지용문학관' 모습(옥천군 소재). 제5회 향수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다음주는 마침 지용제 기간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국민시인 정지용의 그 유명한 <향수>의 첫 소절이다.

향수(鄕愁)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다. 옥천이 향수이며 향수가 곧 옥천이다.


기자가 취재차 옥천을 처음 방문한 건 향수바둑대회로 3년쯤 되었다. 여느 시골처럼 젊은 바둑인은 별로 없었지만 만나 본 협회 분들은 한결같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고, 비록 100여명 출전한 다소 앙증맞은 지역대회였지만 처음이라 반가운 맘에 열심히 취재했던 기억도 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향수대회가 벌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더더욱 반가운 소식은 내년엔 가칭 ‘옥천향수배 전국대회’를 열겠다는 반가운 전갈이다. 


인구 5만에다 바둑동호인 100명에 불과한 옥천에서 이처럼 전국대회를 ‘감히’ 기획하고 이미 마스트플랜이 나왔다고 자랑하다니... 어찌 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유재곤(66) 옥천바둑협회장을 한달음에 달려가 만나보았다.



▲유재곤(66) 옥천바둑협회장. 



“제가 군(郡)에 가서 마구 싸웠죠. 싸우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바둑인의 얘기를 경청하기 시작했고, 어렵사리 대회를 열고나니 굉장히 만족하셨죠. 이젠 군이나 도에서도 바둑대회에 관한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죠.”


전국대회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에 일단 만나자마자 사실 확인부터 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 확정이라는 답변이었다. “이미 내년 전국대회 예산이 곧 책정될 거에요. 군과 도에서 그리고 제가 여러 기업에 요청한 후원까지 합치면 7천만 원 이상 될 겁니다. 이 정도면 부족하나마 전국대회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옥천군 38개 체육종목에 주어진 예산 총액이 2억원이 안 되는 현실에서 바둑대회를 연다고 군의 지원을 요청하기란 실로 난감했다. 그러나 군수 이하 군 관계자들도 남녀노소 군민 도민들까지 화합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인식이 달라질 거라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고. 


옥천에서 일단 바둑대회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동일 지역구인 옥천 괴산 보은 영동은  남부 4군이라고 해요. 이곳에서 조그만 친목대회를 하려다가 일이 좀 커졌죠. 하는 김에 충북대회를 개최하자고 결론이 났죠. 그런데 제2회 대회를 치르다보니 충북이외 지역에서도 꽤 출전을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또 커져서 올해는 무려 300명이 운집하게 된 거에요. 급기야 내년에는 새로운 '옥천향수배'라고 전국대회로 키운 겁니다.”


15만 인구를 자랑하던 옥천도 현재 여느 지방협회와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옥천바둑협회가 설립된 지 13년 되었는데, 과거엔 꽤 동호인이 많았고 6단 이상도 10여 명 씩 되었지만, 지금은 바둑동호인이 100명쯤으로 4개 기우회로 활동하고 있고 기원은 1개가 존재한다고. “우리는 결사대야. 이 결사대가 사고를 친 거지. 하하.”


▲옥천은 향수, 향수는 곧 옥천이다.


이제 코로나의 위험도 감소하고 있지만 바둑계 상황도 좋지 않은 이즘, 유회장처럼 지자체를 설득하여 움직일 수 있는 맹렬바둑인들이 아직 많다는 건 실로 다행스럽다. 내년에 새로운 모습을 보일 대회가 어떤 식인지 궁금하여 맛보기로 좀 알려달라고 했다.


“향수 알죠? 1박2일 동안 충분히 고향의 맛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기우들과 회포 풀면서 힐링하고 가시라고요. 옥천은 전국 어디서든 3시간 내에 당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며 보챘다. “시니어 주니어 여자 골고루 편을 만들어 단체전을 하려하고, 또 동호인부, 여성부도 같은 형태로 단체전을 계획하고 있어요. 상금은 크진 않지만 그래도 옥천에 오신 분들에겐 차비라도 되게끔 할 생각이죠.” 


한마디로 이벤트가 많은 거라고 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복숭아 포도 등 옥천땅 과일을 많이 드시게 할 것이고, 경품추첨도 거나하게 하고, 사은품도 푸짐하게 준비할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맘 편히 주무시고 가게끔 하는 게 요체인데, 숙박 장소로 한옥마을과 인근 장룡산 휴양림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이 모두 옥천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유회장은 전한다. 얘기만 들었는데도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2019년 벌어진 제2회 향수바둑축제 전경.


“전국대회 한다고 제 명성이 올라가는 건 아니죠. 주변에서 호응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십자가를 진 겁니다. 다행히 협회가 저를 중심으로 다들 잘 움직여주니까 신이 나서 일을 하는 거죠. 사실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제가 빚을 지는 겁니다. 또 고향을 위해 옥천항수배가 전국적인 인기를 끈다면 옥천바둑인의 한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즐거움이겠죠.”


리더 한 사람이 모임과 협회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잘 되는 협회일수록 자기가 직접 돈을 내는 것보다는 필요한 돈을 만드는 일을 잘 한다. 젊은 시절 대기업 요직에 있었고 지금도 고향 옥천기업에서 열정을 태우고 있는 유재곤 회장같은 열성파가 있음이 자랑스럽다. 


“바둑 얼마나 두세요?”
전 바둑 못 둬요? (아니, 못 두는 분이 어떻게 회장을 하시나?)
한 5급 둬요.(아니, 어떤 5급?)
기원 5급요.(기원5급이면 아마3단쯤 되는데)
전 내기만 둬요. (헉! 내기바둑이면 또 좀 센 편인데)
솔직히 아마3단은 무난히 이기죠.(이런, 이제 실토하시네요.)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죠. 전국의 동호인여러분에게 ‘꿈엔들’ 옥천이 잊어버렸던 향수를 선사할 겁니다. 많이 들 오셔서 실컷 즐기고 추억은 많이들 쌓아가세요. 일단 다음 주 대회부터 잘 치르고, 여세 몰아 내년 옥천향수배 전국대회로 매진할 겁니다.”  


다음 주말인 24일 제5회 향수배 바둑대회가 치러진다. 아직은 지역대회지만 벌써 271명이 출전신청을 했다고 한다. 벌써 내년 새롭게 펼쳐질 전국대회에 대한 기대감일게다. 


▲지난달 옥천에서 벌어진 충북도민체전에서 포즈를 취한 충북바둑을 이끌어가는 3인. 충북바둑협회 조경운 전무, 충북바둑협회 조기식 회장, 옥천군바둑협회 유재곤 회장.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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