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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21 00:45:08
  • 수정 2021-02-21 01: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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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면 어때? 건강하게만 살자!’ 20일 경기도 화성 동탄기원에서는 2021 동탄 시니어최강전이 펼쳐졌다. 경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멤버들. 조민수 강영일 백정훈 김동섭(앞줄). 박성균 임동균 장부상 심우섭 박정윤(뒷줄). 


건강이 허락하면 분기마다 한번 씩 만나자고 약조한 지 벌써 일 년이다. 

전보다 건강은 좀 나아졌지만 그놈의 코로나19 때문에 여간 적조한 게 아니었다.  


혹시 ‘동탄 시니어최강전’이라고 기억하실까. 

그럼, 평생 바둑을 사랑했지만 넉넉지 않은 삶을 산 시니어들에게 거금 1000만원을 걸고 그들을 격려했던 분당기우회장배 백정훈 회장은 기억하실까.


백정훈 회장(75)은 포항 출신으로 경북고 한양공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 임원을 두루 거쳤고 (주)ASA 대표, 자동차 알루미늄휠 제작업체 ㈜알룩스 대표로 있다가 수년전 은퇴했다. 기력 50년을 훌쩍 넘기는 그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주변 모든 것을 끊었다. 그러나 여전히 못 끊는 것 하나는 청하 한잔이요, 또 하나는 바둑친구들이다.


“코로나19의 와중이라 1년 동안 ‘방콕’하고 있었더니 너무 무료했지. 그런데 며칠 전 조(민수)사범이 설이라고 인사를 하길래 문득 생각이 났지. 요즘도 청하 한잔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 옛날엔 뭘 그리 많이 마셔댔는지 몰라. 아마도 이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바둑은인 백정훈 회장.


청춘을 바둑과 보낸 올드보이를 소환하여 밥 한번 먹자고 했다. 

밥만 먹기엔 심심했던지 ‘동탄최강전’이라는 조그마한 대회를 하나 열자고 했다. 

분당기우회장 시절 우승상금 1000만 원짜리에서 1/10 크기로 줄어들었지만 ‘이 친구'들은 집결호를 쫓아 그렇게 동탄에 모여들었다.


동탄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신도시. 수년전 백회장은 사랑하는 후배 강영일이 이곳에서 기원을 내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 이름이 동탄기원. 


임동균 심우섭(서울), 멀리 박성균(괴산) 조민수(순천), 장부상 김동섭 박정윤(성남), 그리고 강영일(화성)-. 과연, 뒷산 구부러진 소나무같이 변함없는 용사들이로고.


슬슬 7학년 배지도 먼지가 쌓여가는 ‘후지사와’ 임동균과 그와 정릉 고교 때부터 연을 맺은 50년 절친 강영일.
그리고 영원한 7단 박성균, 김동섭은 6학년 몇 반이더라.
맹장 조민수와 심우섭은 이젠 환갑을 바라보는데 여기선 한참 청춘.
대통령배 준우승에 빛나는  ‘딱부리’ 박정윤. 성남의 대표시니어로 자리 잡은 장부상도 합류했다. 아마도 분당의 인연 때문이 아닐까.


▲결승같은 8강전. 박성균-조민수.


자, 시합은 오후2시. 토너먼트로 곧장 서바이벌이다.
제한시간 각 20분 초읽기 30초 3회.
김동섭-장부상, 임동균-심우섭, 조민수-박성균, 강영일-박정윤. 흥미로운 8강 매치 업이다.
참고로 시니어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휼륭한 사진사다. '찰칵'은 착각의 유머러스한 표현.

조민수-박성균 매치가 가장 흥미롭다.

박성균의 맵시 행마에 조민수의 투박함이 잘 어울리는 명승부가 예상된다. 


구경꾼들이 가장 많이 모였지만 가장 일찍 흩어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진짜 없었다. 한판의 수채화처럼 잘 익어가던 바둑은 중반 들어 박성균이 집으로 앞서갈 찰나, 사진을 찍으면서 생떼 같은 중마가 잡혀버린다.


▲사랑하는 후배 박정윤(왼쪽)과 마주한 강영일. 현재 동탄기원의 주인장이기도 하다.


홈 링 강영일은 첫 출전한 박정윤에게 원사이드하게 몰아가다가 거의 골인지점에 이른다.
그때 이야기가 되려니, ‘때르릉’ 휴대폰이 울린다. 잠깐 통화 후, 중앙이 끊어져 대역전패.
“어? 이게 뭐야, 사진 찍었네?”


요즘 건강이 회복되어 성적이 깨나 좋은 김동섭은 경기 전 관중들이 뽑은 우승후보였지만, 첫 출전 장부상에게 마지막 반패싸움까지 가더니 결국 패배. 


칠순의 임동균이 심우섭에 이기리라고 본 관중은 없었지만, 역시 이변이 있어야 즐거운 법. '후지사와' 승.



▲장부상-김동섭(사진 위), 임동균-심우섭.


조민수-박정윤, 임동균-장부상 4강매치는 의외였다.

맹장 조민수는 스르르 미소가 번지지 않았을까.


박정윤은 중반 무리한 행마로 바둑이 기울어졌고, 이후 안타까움에 몇 번이고 혼자서 복기를 하는 모습이 좀 짠했다.


임동균은 260수까지 이겨있었다. 별것 아닌 곳을 선수로 찝어두지 못했고 그것으로 2집반 역전. 역시 훌륭한 사진사였다.


▲결승전 조민수-장부상.


장부상과 조민수의 결승전. 누구에게 걸겠는가.


여기서 작년의 추억을 소환한다. 내셔널리그 함양산삼이 1위였고 개인전승을 달리는 조민수가 거의 꼴찌였던 성남 장부상에게 꺾인 바 있다.


장부상은 시작하자마자 작년의 패배까지 일거에 갚겠노라는 조민수의 오버페이스를 적절히 받아치며 극도의 우세를 확립했다. 하수인 기자가 보더라도 왕무리를 하는 통해 바둑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장부상 주변에 갤러리가 병풍처럼 둘러쌌다.


그런데 150수부터 장부상은 너무 좋은 나머지 한번 후퇴를 하게 되고 한번 후퇴는 두 번 후퇴를 부르고….
결국 중앙 거대한 패싸움이 났다. 이럴 때 팻감이 모자라는 경우는 흔히 보아온 레퍼토리다.


조민수는 대역전을 했고, 꽤 싹싹하게 인사. 

“아이고! 감사합니다.” 


▲조민수-장부상 결승전 모습. 병풍처럼 갤러리를 몰고다니는 모습이 보다 인간적이지 않은가. 


우승상금은 백회장이 현역에서 돈을 마구 생산할 때와 비교하면 1/10에 불과한 100만원. 너무 소중했다. 

그래도 좀 아쉬웠을까. 백회장은 노란봉투에 20만원씩 교통비를 별도로 담아 8명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큰 형’ 임동균은 “백회장님의 건강을 위해 큰 박수를 보내자”고 제의했고, 박수를 받은 백회장은 “다음에 또 해야지?” 하면서 하회탈같은 웃음으로 오늘을 화국(和局)으로 마감했다.


그렇다. 낭만은 살아있었다!


▲조민수가 백정훈 회장에게 우승상금을 받고 있다.


▲자타공인 시니어최강 조민수.


▲성남의 대표시니어 장부상.


▲아마계의 후지사와 임동균.


▲대통령배 준우승자 박정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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