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0-10-13 20:05:32
  • 수정 2020-10-13 20:16:25
기사수정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 이런 풍성한 바둑대회를 꼭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둑대회는 통상 3월부터 11월까지 성수기라고 할 수 있다. 바둑이야 사시사철 두는 것이지만, 남녀노소가 모두 참가하는 체육관식 종합대회를 늘 보아온 우리는 1000여 명의 선수와 관람객들이 북적거려야 비로소 대회인 것처럼 느껴질 테다.


코로나19의 감염위험 때문에 1000명이 아니라 100명도 모일 수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모든 스포츠 종목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일정 수 이상의 인원이 모이지 못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2020년의 바둑 행사만은 규모를 슬림화하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대면이 안 된다고 하자 비대면 인터넷 경기로 대회를 치렀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장갑을 끼고 투명가림막까지 설치하여 ‘바둑거리두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감염위험을 줄였다. 덕분에 바둑 행사 도중 참여자가 감염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심지어 세계 61개국이 출전한 국무총리배 세계선수권까지 인터넷으로 치러내어 세계적인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2020년 모든 스포츠 종목은 거의 올 스톱된 와중에 유일하게 끈질긴 자생력을 과시하며 버텨낸 바둑-. 6개월여에 걸친 눈물겨운 대 코로나19 투쟁의 기록들을 정리해 보았다. 


▲코로나19의 감염위험이 낮았던 연초만 해도 정상적인 리그가 가능할 줄 알았다. 클럽A7 주최의 원봉 J.S Together 대회의 한 장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초창기였던 1~4월까지는 소규모 행사가 예년과 다름없이 치러졌다. 1월부터 여자입단대회와 일반인입단대회가 있었고 연구생을 향한 아우성 261회 한바연대회도 무사히 치러졌다. 바둑영재 김은지가 입단했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공지능 부정행위도 있었다.


서울 압구정기원에서는 코로나19가 극심했던 때를 제외하면 압구정리그, 레이디스리그, 압구정불금, 불금챌린지, 희망21, 압구정여자최강전이 진행되었고, 클럽A7 주최의 활인검(活人劍), 괴산바둑나들이, 원봉 J.S Together 등도 꿋꿋이 치러졌으며, 동탄시니어최강전, 인천미추홀리그, 부산바둑리그, 부천知바둑리그 등 소규모의 대회도 이어져 다가올 시즌 개막에 대한 흥을 돋웠다. 그리고 내셔널리그를 위한 평가전도 이어졌다. 


그러나 4월이 되어도 바둑행사는 재개될 기미가 없었고 여기저기서 힘든 바둑인들의 사연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김해시장배, 진주시장배 등 전통의 지역대회가 하나둘씩 연기되었고 급기야 4월에 시작하려고 했던 내셔널리그도 잠정 연기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심각성을 더했다. 


“이제 생활방역시대를 맞이하여 본격 바둑시즌이 시작했음을 알리고 다시 출발하자는 의미로 대표 아마를 초청해 격려대회를 연다. 부디 5월부터는 신나는 대회가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4월26일 아마대표 선수들이 출전하는 ‘힘내라 바둑!’이 압구정기원에서 압바사(압구정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최로 열렸다. 총 상금 2500만원, 우승상금 400만원에 내셔널 8개 팀을 초청해서 준 전국대회로 진행했다.


또 총 상금 2500만원, 우승상금 500만원에 달하는 초대형 주니어기전 ‘黎明의 劍(여명의 검)’이 코로나19 유행 이후 첫 본격 전국대회로 치러졌다. 황금연휴의 정점인 5월 3~4일 양일간 서울 아바사회관에서는 최강 주니어들이 망라되어 김정훈을 우승자로 가려내며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 박예원 선수가 경기 전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사진 왼쪽)과 김기백 선수의 방역 대국 모습(사진 오른쪽). 5월 말 내셔널리그 개막전(평창)이 온라인 대국으로 치러지고 있는 모습.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최우선 과제가 선수 여러분과 관계자들의 건강임을 잊지 말고 대회가 열리는 자체에 고마워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전 바둑인들이 단결하여 방역 모범시민임을 과시했으면 한다.”(개막식 축사에서 정봉수 내셔널리그 운영위원장) 


철통 방역으로 소중한 바둑을 지키자는 슬로건이 5월부터 본격화되었다. '한다 안한다' 설왕설래했던 내셔널리그가 2개월가량 늦춰진 5월23일 강원도 평창에서 개막했다. ‘방역내셔널’을 가치로 건 바둑이 시험대에 올랐던 것. 


‘시험대’가 맞는 표현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 명의 선수단이 한 곳에서 경기를 벌이기 때문에 내셔널이 성공하면 각종 대회의 예선전 등 좀 더 많은 인원이 모이는 여타 대회도 치를 자신감이 생기기 마련. 그 반대라면 계획하던 대회조차 재차 취소 내지 연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바둑뿐 아니라 여타 모든 종목도 이 내셔널을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셔널은 많은 인원이 모이는 개막식도 생략했고,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대진 추첨식도 대한바둑협회 회의실에서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채 간소하게 치르는 등 정부 기관(문체부) 지침에 의거, 철통 방역 지침을 준수했다. 


▲ 내셔널 이후 모든 대회에서는 출입구에서 방역시스템을 갖추고 방역 인원과 장비를 투입하고 있다.


올 스톱된 스포츠 종목 중에서 가장 먼저 재개가 결정된 내셔널은 결국 여섯 차례의 지방 투어 중 마지막 10월 태백대회만 남겨둔 채 무난히 정규리그 종료를 앞두고 있다. 


6개월여 동안 평창-울산-태백대회로 이어진 내셔널이 성공적으로 마감되어가는 건 무엇보다 전 바둑인들의 바둑을 향한 열망이 큰 역할을 했다. 대한바둑협회는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며 19개 팀 선수단과 심판진 취재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쾌거’다. 


사실 내셔널 개막에 가려져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치러진 올림픽 2주년 기념 평창군수배 전국바둑대회가 바둑가에서는 관심을 더 끌었다. 평창군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바둑인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뜻으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대면(大面) 대국을 시행해 수백 명의 인원이 체육관에서 경기를 치렀다.


▲ '사회적 거리두기의 표본을 보고 계십니다.' 코로나19 이후 지역에서 주최한 최초의 일반인 전국대회 평창군수배 모습. 250명으로 출전자 수를 제한했고 2인용 테이블을 사용하는 등 방역에 최선을 다했다. 이 평창대회 이후 바둑대회 개최에 자신감이 붙었다.


코로나19 이후 최초의 체육관 대면 대국임을 의식한 듯 한왕기 평창군수는 개막식에서 “2020년 시작을 코로나19가 지배해왔다면, 이제 우리 국민이 철통같은 방역태세를 갖추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우리 바둑인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음을 앞서 보여주겠다.”고 역설했다. 


평창군수배는 전국최강부, 동호회단체전, 강원시부, 강원군부 등 4개 부문으로 치렀는데, 다만 방역문제 때문에 부득이 출전자 수를 250명으로 제한했다. 


참가자들은 공간도 1.5m 이상을 떼어놓고 테이블도 개인용으로 사용하며 마스크와 라텍스 손수건을 착용했고, 경기장 출입 시 매번 발열 체크를 했다. 대회 개시 전부터 평창군에서 이미 실사를 나와 생활 방역 매뉴얼대로 지도 감독했다. 평창군은 선제적 개최로 ‘올해의 바둑인償’을 수상해도 이상할 게 없다.


평창군수배의 자신감은 7월4일부터 2020 컴투스타이젬배 전국 생활체육 동호인바둑리그로 이어갔다. 수도권에서 치르지는 일반인 대회였고, 동호인리그에서 온라인 경기는 처음이었다. 동호인리그는 올해 10차례 예정되어 있고 현재 5차례가 진행된 상황이다. 


참고로 대한바둑협회에서 올해 치른 모든 온라인 대회는 컴투스타이젬과의 공조 하에 타이젬 대국실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상 증후는 아직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 동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강원도지사기 대회에 앞서 동해시에서 방역에 나서는 모습.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바둑 행사를 치름에 있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바둑인들의 방역에 관한 의식과 협조, 그리고 온라인 대국을 치를 기술력을 믿을 수 있었다. 심지어 250명이 출전했던 일반인 체육관대회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음에랴.


청정 강원의 기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월 이후 벌어진 전국종합대회는 모두 강원도에서 펼쳐졌는데, 5,6월엔 평창이었고 7월엔 동해였다. 7월의 첫 주말(4,5일) 동해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제8회 강원도지사기 바둑대회에 올 시즌 최대인 400명의 강원 바둑동호인들이 출전하며 뜨거운 열기를 자랑했다. 


7월에 새로이 생긴 대회가 있으니 ‘위대한 탄생’이 그것이다. 어린이들의 대회가 거의 전무하여 일선에선 유소년 바둑교육에 차질을 빚을 정도라는 볼멘소리도 들려오고, 입단을 준비하는 주니어들도 실전 기회가 줄어들어 기량 정체를 겪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차, 이들에게 실전의 배고픔을 달래줄 '위대한 탄생'이 클럽 A7주최로 열리게 된다. 


매달 각 64명 한도로 드림리그(유소년)와 영스타리그(주니어)를 치른다. 지금까지 4~5차례 대회가 무난히 이어지고 있다.   




▲ 61개국에서 참여한 제15회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은 올해 스포츠 종목에서 벌어진 유일한 세계선수권으로 스포츠 바둑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만든 쾌거로 평가받았다.


See you on-line!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바둑선수권 국무총리배가 예정대로 8월3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되어 세계 속의 바둑 혼을 깨웠다. 처음으로 치르게 된 비대면 인터넷 세계대회였다. 대진 추첨뿐만 아니라 대회 전반이 온라인이었다.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처의 모범국가답게 세계선수권도 온라인으로 치르면서 세계바둑의 리더로 우뚝 섰으며 나아가 국격(國格)까지 상승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 61개국이 출전한 세계선수권을 온라인으로 무사히 치렀다는 건 한국바둑과 한국의 대회운영 능력과 기술력에서 누가 봐도 ‘세계 원탑’임을 과시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 대면 바둑에서 기념비적인 일이 생겼으니, 2020 포천시장배 국제평화유소년바둑대회가 그것이다.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첫 번째 전국 유소년바둑대회였다. 


지금도 어린이바둑만은 감염위험 탓에 위축되어 있다. 이러한 차제에 체육관에서 어린이들만의 대회를 펼치겠다는 용감한 지자체의 ‘무모한’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8월 8,9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 포천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대회는 총 인원 320명의 전국 어린이들이 출전한 가운데 무사히 치러냈다. 특히 어린이가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문진표와 QR코드 확인 후 입장했으며, 터널식 에어분사소독기, 소독용 발판, 손소독제를 비치하여 안정에 만전을 기했고, 특히 경기 중 비말을 차단하기 위해 투명칸막이가 처음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여자국수전(김민서 우승), 부산바둑리그(박재동 우승), 영재입단대회(최민서 박지현 입단), 일요신문배 본선(한주영 우승)가 간간이 치러져 ‘눈물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새로운 리그가 탄생했다. 


▲ 대면 대국 중 비말을 차단하기 위해 투명칸막이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포천시장배 전국유소년바둑대회 경기 장면. 하얀 화살표 끝을 자세히 보면 투명칸막이가 보일 것이다.


2020년 바둑대회의 화룡점정 전국시도바둑리그의 출범이다. 작년부터 대한바둑협회에서 추진해온 스포츠바둑의 완성품으로 17개 전국 광역지자체 구단제로 치러지는 2020 전국시도바둑리그에 서울, 경기, 부산, 전남, 제주 등 10개 시도가 출전을 확정했다.(어린이바둑리그는 15개 팀.)


시도리그는 각 시도체육회에 등록된 선수들이 출전하며, 남자 3명, 여자 2명 등 5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5전 다승제로 승패를 가린다. 경기는 세 차례에 나누어 진행하며, 10월17,18일(토일) 1차 리그를 시작으로 11,12월에 2,3차 리그를 갖는다. 


어린이리그도 시도리그와 같은 기간에 개최된다. 시도리그와 어린이리그는 별도의 대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선수가 한꺼번에 모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역시 지역협회가 지정한 특정 장소에서 온라인 경기로 실시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무척 힘든 가운데서도 10개 시도협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첫 해인 올해는 일단 순조롭게 리그를 치르는 게 목표이며, 향후 규모도 키워서 기존 내셔널리그과 쌍벽을 이루는 양대 리그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이번 시도리그를 통해 각 시도협회에서는 대회운영 선수 및 심판 관리 등도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종오 대한바둑협회 사무처장) 


▲코로나19의 와중에서 새로운 희망 2020 전국시도바둑리그가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내셔널바둑리그의 한 장면.


‘나는 바둑을 둔다. 고로 존재한다.’


바둑이 무엇이라고, 대회장에 입장하는 모든 이들은 발열 체크부터 연명부 작성,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행사장에는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하물며 투명스크린까지 등장하며 ‘바둑거리두기’를 준수해야만 할까. 


많이 불편하지만, 바둑을 둘 수 없는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둑을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수십 년간 바둑을 두어온 우리도 새삼 느꼈을 테다.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가 바둑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이 패닉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다. 바둑은 이미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대회를 인터넷으로 대체하여 대면의 거부감을 없애며 중단의 위기를 이겨냈고, 오히려 지금은 대면마저도 상당 부분 복원되고 있다. 이는 선진화된 매뉴얼을 바탕으로 전 바둑인들의 투철한 방역 의지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춥고 힘든 밤이 길수록 새벽은 더 가까이 와있는 법이다. 이 위기를 한국바둑의 우수성과 한국바둑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기회로 삼은 우리 바둑인이 자랑스럽다." (윤수로 대한바둑협회장)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badukilbo.com/news/view.php?idx=172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