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29일) 오전11시 대한바둑협회(회장 윤수로)가 2019년 제3차 임시이사회를 개최한다.
소통과 혁신을 강조하며 지난 2월 힘차게 출발한 현 대한바둑협회(이하 대바협)가 8개월여가 흐른 지금에서야 ‘우여곡절’ 끝에 여는 이번 이사회는, 지금까지 기획해왔고 가까운 미래에 추진할 사업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면한 바둑계 현안과 과제를 숙의하는 이사회가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 벌써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바둑일보가 입수한 이사회의 제 안건을 보면 바둑인의 총의를 모으기 난감한 사안이 수두룩하다. 안건에는 1) 정관 개정 건 2) 규정제정 및 개정 건 3) 이사 선출 건 4) 한국상치연맹설립 건 등이 있는데, 분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 대한바둑협회 홈페이지.
이번 정관개정안 속에는 ‘마인드스포츠종목 또는 단체를 육성 지원한다’는 조항이 뜬금없이 들어있다. 바둑이 마인드스포츠의 한 종목이지만, 굳이 대한‘바둑’협회에서 체스나 장기 또는 체커 브리지 등 여러 가지 마인드스포츠 종목을 지원하거나 육성해야할 근거가 무엇인지 언뜻 이해가 어렵다. 혹여 마인드스포츠협회를 만들어서 다양한 바둑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라면 좋을 수 있겠지만, 과연 대바협의 헌법인 정관까지 개정하며 유난을 떠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
세계마인드스포츠협회(IMSA=International MindSports Association)는 바둑 브리지 체스 체커 4종목의 세계협회단체장이 번갈아가면서 협회장을 맡는 구조다. 설사 한국마인드스포츠협회가 있다고 가정해도, 대바협과는 전혀 다른 별도의 기구로 구성해야함이 원칙이다. 따라서 무리하게 여타 종목의 협회와 논의조차 거치지도 않고 마인드스포츠를 지원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초 위법적이다.
비근한 논란거리로 ‘한국상치연맹설립 건’도 있다. 상치는 중국장기다. 바둑을 널리 보급하여 국민의 여가선용과 정신건강에 이바지하고 우수한 바둑인을 양성하는 것이 대바협의 설립목적이다. 설사 상치연맹을 설립한다고 해도 장기협회에서 신경써야 할 일이지 그게 왜 대바협 이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마인드스포츠종목 또는 단체를 육성 지원하고 상치연맹을 만들려는 노력의 1/100이라도 바둑에 관심을 더 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대바협은 다른 생각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서울 올림픽공원 내 위치한 대한바둑협회 사무실.
‘심사위원회 규정 개정안’ 초등연맹부분을 보면 대바협이 의도하는 바를 살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바협의 산하에는 초등연맹 중고등연맹 여성연맹 대학연맹 등이 있다. 전국적으로 어린이 기객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이들을 잘 길러내야만 근간이 튼튼해진다는 데엔 이견이 없을 테다. 그런데 대바협이 산하단체인 초등연맹을 잘 보살피기는 커녕 승급심사비를 건드리려는 의도까지 내비친다.
현행 승급심사비는 대바협과 시도협회 초등연맹이 삼분하고 있다. 태권도나 검도 등 단급심사를 하는 여타협회도 비슷한 상황이며 지극히 합리적인 배분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바협에서 굳이 이 멀쩡한 규정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은 초등연맹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초등연맹 측은 의심을 하고 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초등연맹과 유사한 ‘지도사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든 것도 현 대바협의 핵심인사이며, 현재 초등연맹 관련 단체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있는 난감한 상황도 현 대바협의 방조 묵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바둑계 종사자들은 다 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통합된 현 상황에서는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가 인정한 산하단체(초등연맹)를 하급기관인 대바협이 빼겠다는 것은 초법적이다. 물론 이번 이사회에서 초등연맹을 대바협 산하단체에서 빼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홀대하여 초등연맹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는 시선은 여전하다.
▲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또 심사위원회 규정 개정안 중에 ‘세미프로 레슨프로’에 관한 부분이 있어 분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바협 6단증 이상 소지자에 대해 '프로의 자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레슨프로는 6단 이상, 세미프로는 7단 이상이 해당한다. 아마추어를 관장하는 대바협에서 ‘프로 운운’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다수 바둑인의 단호한 시각이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 2017년도에도 이사들의 반대가 워낙 심해서 일언지하에 부결된 사안이며 또 다시 이사회에 올리려다가 또 압도적인 반대에 부딪혀서 좌절을 경험했다. 왜 대다수 대바협 임원들도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무리한 시도를 하는 지 알기 어렵다. 정히 추진해야할 이유가 있다면 공청회 세미나 등 바둑인들의 공감을 얻은 후에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한 종목에 두 프로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 한국기원이 프로단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문광부지원도 받고 있는 마당에, 입만 열면 아마바둑의 대변자라고 주창하는 대바협에서 과연 가능한 시도라고 보는 지 진정 되묻고 싶다. 만에 하나 ‘프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고 해도 대한체육회가 '프로 대바협'에 지원할 명분이 사라질 것이니 실익이 전혀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위에 열거한 다수 사항을 밀어붙이는 대바협의 의도는 당면한 재정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편법이 아닌지 일각에서는 의심하고 있다.
▲ 불법임원해임으로 촉발된 대바협의 위법행정을 지적해 온 최종준 대바협 부회장.
이번 이사회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또 있다. 바로 바둑일보에서 수차례 기사화한, ‘임원 찍어내기’로 촉발된 대바협의 위법행정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오를 게 뻔하다. 지난 3월 대한체육회에 ‘민원’이 들어갔고, 4개월 만인 7월 대한체육회의 시정권고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대바협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시정이나 사과의 액션이 전무하다.
보다 못한 대한체육회가 8월26일 체육회실무자 입회하에 민원당사자들과 회합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윤수로 회장은 ‘이런 저런 제반 사항을 다 정리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식언한 지 오래되었다. 또한 ‘보름 이내에 이사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도 했지만, 차일피일 수차례 무시하고 있다가 29일로 날짜를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한체육회에서도 '반드시 29일 이사회를 열고 결과보고를 하라'는 일종의 경고장이 당도한 마당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면, 임원의 불법사퇴 종용에 대한 이사회 석상 공식 사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책임자 처벌, 위법 행정에 관한 공식 사과와 이사회 원상복구 등 여러 문제가 하나도 진척이 안된 상황이다.
또 하나, 현 대바협에서 몇몇 새로운 이사를 모셨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사 추인절차를 없었기에 이사의 적법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특히 H L S 등 신규 이사는 현행 선수로 등록되어있기 때문에 체육회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이사로 등재될 수 없다는 점이다.
▲ 2019 내셔널바둑리그 정규리그 시상식 모습. 내셔널이 끝난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대바협은 내셔널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이 기사가 나간 이후 상금이 지급되었음을 전합니다.)
대바협 사무처장이 시도협회 전무직을 겸하고 있고, 지도부의 내분과 알력이 이미 밖으로 퍼져 나오고, 또 내셔널리그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가칭 ‘시도바둑리그’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등 ‘준비 안 된’ 정책으로 바둑인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대바협.
이번 이사회에서 바꾸겠다는 개정안이 앞서 거명한 것 이외에 20개가 넘는다. 아무리 바둑에 관한 식견이 풍부한 이사들이라고 해도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혹시 ‘우리가 다 알아서 알 테니 통과만 시켜주세요!’ 하는 무례한 발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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