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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28 21:45:05
  • 수정 2019-03-29 10: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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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로 제6대 대한바둑협회장.

 

슬슬 바둑의 계절이 다가오는 이즘, 새로운 수장을 맞아 힘찬 재도약을 다짐해야 할 대한바둑협회는 오히려 차가운 전운이 감돈다.

 

오는 30일 제2차 대의원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대의원총회는 주요 안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개최될 수 있으니 그 자체가 화제가 될 이유는 없을 테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다루어질 '뾰족한' 안건 하나때문에 매우 뜨거워질 공산이 크다. 바로 '일부 임원해임 건'이다.

 

'일부 임원해임 건' 전말은 이렇다.

 

지난 2월17일 소통과 혁신을 강조한 윤수로 (주)아비콘 회장이 제6대 대바협 회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3월9일 윤회장은 의욕적으로 2019 전국바둑인 연대회의를 열어 바둑인과 소통했다. 바로 그날 오전에 대바협은 1차 대의원총회를 소집했다.

 

당시 의결안건으로는 1.일부 임원 해임 2.임원 선임 3.감사 선임 등이 있었다. 어느 단체에서나 보궐선거로 인해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다면 황급히 의논하고 의결해야 할 사안들이 있기 마련. 다만, 몇몇 이사들에 대한 해임 안이 살짝 거슬리는 주제이긴 했지만.

 

대바협 임원(이사나 부회장)은 20명 남짓으로 전임 신상철 회장체제에서 선임되었다. ‘신상철 체제’나 ‘윤수로 체제’가 피차 이질적인 집단도 아니고, 더욱이 이들 이사는 2020년까지 임기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부 이사 해임 건이 '강제 해임' 논란까지 이어지는 등 파국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 대바협 집행부는 전국 바둑인 연대회의를 개최하는 등 소통을 강조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여타 조직에서도 수장이 바뀌면 흔히들 '일괄사표'를 제출하는 행태를 자주 봐 왔다. 따라서 대바협의 다수 이사들도 적당한 시기를 봐서 용퇴하려고 맘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대바협의 무리한 압력에 불만이 고조되기에 이른 것.

 

"안녕하세요! ooo임다.

다름이 아니고, 신임 회장에게 힘을 모아주기 위해 임원진들이 용단을 내려 주었으면 하는데 부회장님 생각은 어떤가요?”

 

대바협 모 부회장을 앞세워서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부 임원의 사직서 제출을 종용했고, 이후 불명예퇴진을 하느니 자진사퇴하는 형식이 낫다는 겁박성 회유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자메시지로 해임 독촉을 받았다는 이사A는 “윤회장이 임시이사회라도 열어서 취임 인사라도 나누면서 상황설명을 했다면 이해 못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점잖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마치 (우리가) 큰 잘못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가 영 마뜩찮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이사B는 “보궐선거로 당선되었으면 남은 임기동안 제대로 협회를 수습하는 것이 회장의 가장 큰 임무가 아니겠나. 임시이사회부터 소집하여 이사들과 호흡을 맞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사부터 먼저 내칠 생각을 한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또 발전기금 운운하며 퇴진을 종용하는 점도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 30일 대의원총회를 알리는 대바협의 공문.

 

9일 1차 대의원총회에서 해임이 거론된 이사는 총 6명. 회장부재시 대행을 맡아 대바협의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한 정OO. 한국기원과 분리된 현 대바협 체제를 만든 일등공신 강OO. 스포츠바둑시대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인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최OO. 바둑학박사이며 대바협 산하 K바둑연구소장을 맡아 한 푼 후원도 없이 고생만 했던 바둑지략가 김OO. 여성임원할당제에 따라 선임된 울산북구협회장 한OO. 시사저널 고문이며 인사위원장 박OO가 소위 ‘1차 살생부’에 오른 이들의 면면이다.

 

9일 1차 대의원총회에서 임원 해임 건은 찬반투표에 들어갔고 결국 1표차로 부결된다. 사그러들 줄 알았다. 그러자 이번엔 대의원 2/3 이상의 발의가 있으면 동일하거나 비슷한 안건도 올릴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재상정한 것이 30일 2차 대의원총회다. 결국 일부 임원을 찍어내기 위한 대의원총회를 거푸 여는 것이다.

 

1차 대의원총회를 앞둔 3월초 대바협 윤수로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총회를 소집한 것이고 나는 구체적으로 총회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일부 이사는) 전화도 안 받는다고 알고 있다.”며 이사해임 건에 대해 묵시적 동의를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또한 최근 복직된 대바협 사무처장은 “‘신상철 사태’에 책임 있는 분들이 (해임) 대상이다. 현 집행부는 일사분란하게 일해야 한다. (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잘하면 연임하는 것이고 못하면 낙마하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뜻이다.”며 이사의 해임 건이 상정되는 이유에 대해 일말의 단서가 되는 발언을 했다. 참고로 신상철 전임 회장은 개인사정으로 사퇴했다.

 

▲ 현 대바협의 주축임원들이 전국바둑인회의에 참석하여 바둑인들과 질의응답하고 있다. 송재수 상임부회장, 윤수로 회장, 김종택 서울시바둑협회장, 정봉수 경기도바둑협회장.

 

9일 1차 대의원총회에서 해임하려던 이사 6명이 이번 2차 총회에서는 강OO 최OO 김OO 등 3명으로 줄었다. 1차 때와는 달리, 이번에 지목된 당사자들에게 대바협은 친절하게도 ‘죄목’을 적시해주고 이후 반론을 제기하라는 공문을 발송한다. 모르긴 해도 대한체육회나 법률 전문가의의 조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바협 공문을 들여다보자. 김OO는 과거 인사위원회위원으로 사무처장의 면직을 최종 결정하는 단계에서 과중한 징계를 했다는 이유로, 강OO 최OO는 과거 ‘딴지일보 파동’을 타인 A와 공모하여 대바협의 이미지를 실추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강OO는 대바협 회장선거에서 특정후보에 관여했다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바협 공문에 적시된 ‘문제점’은 사실 여부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따라서 팩트 여부를 알 수 없는 대의원들이 ‘마녀사냥’으로 가타부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진실규명 여부에 따라서는 해임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

 

또 2018년 바둑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딴지일보 파동’의 경우도 역시,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음해인지에 대해 먼저 밝혀내야 하는 과제가 따른다.

 

▲ 30일 대의원총회 발의요청서를 대바협에서 일부 대의원에게 발송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러한 난제가 포함된 사항을 정보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대의원들에게 바른 판단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바로 이런 점에서 현 대바협의 ‘입김’이 대의원총회 발의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아울러 대바협이 대의원총회에 임하는 태도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의원회의 개최 발의에 관하여 전혀 정보가 없었던 일부 대의원을 대바협 문서에서 발의 대상자로 표기한 대목이나, 아까 밝혔듯 대바협 임원이 일부 이사들에게 퇴임을 종용한 사실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총회개최 발의안내문과 사인을 요구하는 공문을 대바협 직원이 직접 일부 대의원에게 건네주었다는 의혹도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다.

 

▲ 아마바둑의 대제전 2019 내셔널바둑리그가 곧 개시된다. 그러나 아직 메인스폰서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대회 운영위원회조차 소집되지 않았다. 사진은 작년 정규리그 시상식.

 

“차라리 나도 살생부에 올랐으면 좋겠다. 졸지에 우리는 쓴 소리도 할 줄 모르는 거수기로 전락해버린 것 같아 속이 상한다." 임원 해임 대상에서 제외된 이사C의 푸념이다.

 

편 가르기는 종당에는 ‘내 편이나 네 편이나’ 결국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고 불과 두 달 전까지 전국을 누비며 외쳤던 대바협이 뺄셈을 넘어 나눗셈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대바협의 당면한 과제는 2019 내셔널리그 타이틀스폰서 문제를 속히 해결하는 것이며, 대바협의 재정문제의 중장기적 해결 방안을 밝히며, 이사회를 소집하여 사무처 규정을 손질하고, 예산문제의 처리 배분에 한국기원과 속히 머리를 맞대는 일이다. 회장 당선 40일을 넘기면서까지 이런 기본적인 과제조차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안 그래도 바둑계가 점차 흉흉해지는 시절이다. 뜨거운 가슴보다 냉철한 머리가 우선하는 대바협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출발이 늦었으니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거듭 났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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